김아무개(35)씨는 지난해 직장과 집에서 거리가 먼 한 은행 지점을 찾아 전세자금을 대출받았다. 자신의 주거래은행도 아니었지만 더 낮은 이자율을 찾다보니 먼 곳까지 가야했다. 김씨는 “오랫동안 이용하던 은행을 찾아 상담했지만 생각보다 혜택이 많지 않아 다른 은행을 찾았다”고 말했다.
자신이 첫 통장을 만든 곳, 첫 월급계좌를 연 곳을 주거래은행으로 삼아 꾸준히 유지하는 것이 경제생활에 유리할까? 보통 금융소비자들은 자신의 주거래은행을 잘 바꾸지 않는 성향이 있다. 금융거래 기관을 간편하게 옮길 수 있는 ‘계좌이동 서비스’가 제2금융권까지 확대되고 있지만, 금융권에 주는 영향은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리서치회사인 나이스디앤알(D&R)이 지난해 조사한 금융시장 기획조사 결과를 보면, 주거래은행을 변경할 의향이 있는 금융소비자는 16.8%에 그쳤다. 변경 의향이 없다는 응답자가 39.6%로 많았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고객이 외우고 있던 계좌번호를 버리고 다른 은행계좌를 외우기가 쉽지 않다. 생각보다 충성도가 높다”고 말했다.
■ 은행별 우대고객 서비스 살펴보니
충성도가 높은 고객들이 혜택을 잘 받고 있는지 각 은행별 우대고객 서비스를 살펴봤다. 은행들은 금융 소비자들을 등급별로 나눠 수수료 면제와 환전 우대, 예금금리 우대 등의 혜택을 준다. 등급과 등급 선정기준은 은행별로 조금씩 다르다. 일반적으로 예적금과 대출 실적, 급여이체 여부, 거래하는 상품 숫자 등에 따른 점수를 받아 이를 합산해 등급을 산정한다. 예를 들어 예금은 10만원마다 10점, 대출은 10만원마다 10점이다. 카드결제나 아파트관리비 등을 자동이체하면 건당 20점을 받는다.
케이비(KB)국민은행의 고객우대제도는 ‘케이비스타클럽’이다. 케이비스타클럽은 엠브이피(MVP·1만점)-로얄(4000점)-골드(1600점)-프리미엄(800점) 등 4단계로 나뉜다. 예적금과 대출 실적 등 금융거래점수를 800점 이상 받으면 프리미엄 등급이 되고, 1600점 이상이면 골드 등급이 되는 식이다. 가장 최하등급인 프리미엄을 받으면 제증명서 발급·인터넷뱅킹 이체 수수료 등만 무료다. 골드 등급이 되면 통장 발급·에이티엠(ATM·자동화기기) 영업외시간 이용 수수료 무료 혜택을 받는다.
반면 거래실적이 많아 최고등급인 엠브이피가 되면 창구 송금과 에이티엠 타행이체, 타행 자동이체 등 낮은 등급에선 돈을 내야하는 서비스를 무료로 받는다. 예금금리를 올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장례용품지원 서비스까지 격차가 커진다.
케이비스타클럽의 특징은 케이비금융의 계열사 거래까지 점수로 환산하는 데 있다. 케이비증권의 주식평가금액(예수금)은 10만원당 2점이고, 케이비손해보험의 납입보험료도 10만원당 1점을 받는다. 이밖에 통신사 가족할인제도처럼 가족고객제도를 운영해 부모와 배우자 등의 실적을 합산한 등급을 받을 수 있다. 더 많이 케이비금융의 은행·증권·보험·카드 등에서 돈을 넣고 빌리고 투자할수록 혜택을 주는 방식이다.
신한은행은 은행 고객우대제도 ‘탑스 클럽’과 신한금융그룹을 묶어 우대하는 ‘신한플러스 멤버십’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탑스 클럽은 프리미어(1000점)-에이스(600점)-베스트(400점)-클래식(250점) 등 4단계로 나뉜다. 가계대출은 200만원당 4점을 받고, 정기예금은 20만원당 1점을 받는다. 급여통장 거래를 하면 100점을 받는다. 신한카드 결제 이체 때는 50점이 추가된다. 급여통장 점수가 커 보이지만 최하 클래식 등급을 받으려면 최소 5000만원 이상 대출을 추가해야 점수를 채울 수 있다. 클래식 등급은 인터넷뱅킹 타행 이체(월 10건) 수수료 무료, 베스트 등급은 에이티엠 현금출금(월 20건) 수수료 무료 등 혜택이 있다. 신한은행도 가족 실적 합산이 가능하다.
하나은행의 손님우대서비스는 하나 브이아이피(VIP·1만점)-브이아이피(3000점)-하나 패밀리(1000점)-패밀리(500점) 등 네 등급으로 나뉜다. 거래 실적이 적은 패밀리 등급에게는 인터넷뱅킹 이체 수수료 월 5회 면제와 에이티엠 이용 수수료 50% 감면 혜택을 준다. 하나은행 쪽은 지난 10일부터 월평균 잔액 1000만원 이상 등 주거래 요건을 삭제해 정기적인 거래가 있으면 점수가 적더라도 패밀리 등급으로 우대 혜택을 받게 했다고 밝혔다.
우리은행은 우리가족 우대서비스를 통해 프레스티지(7000점)-아너(4000점)-로얄(2000점)-패밀리(1200점) 등 4단계로 나눴다. 패밀리 등급은 인터넷뱅킹(월 5회)과 에이티엠 이용(월 10회) 수수료 면제 혜택이 있다.
엔에이치(NH)농협은행도 하나로 가족고객 제도를 통해 탑클래스(1만5000점)-골드(6000점)-로얄(3000점)-그린(1200점)-블루(900점)로 나눠 혜택을 준다. 농협은행은 지난 7일 은행권에선 처음으로 ‘내가 받은 혜택 한 눈에 보기’ 서비스도 출시했다. 애플리케이션(앱) 등을 통해 금리우대, 수수료면제 등을 얼마나 받는지 확인할 수 있다. 김한주 농협은행 마케팅전략부 과장은 “전체 고객이 2천만명이 넘지만 우수고객은 그리 많지 않다. 어떤 거래를 더하면 우대금리를 받을 수 있을지 고객에게 추천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 장기 거래보다는 거래 규모가 중요?
각 은행들이 등급별로 세세하게 나눠 일부만 수수료 무료 혜택을 주는 고객우대 제도는 충성도를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 나이스디앤알의 금융시장 기획조사를 보면, 지난해 주거래은행 변경 의향률 16.8%는 5년 전인 2014년(13.9%)보다 3%포인트 가깝게 오른 수치다. 신용대출을 받을 때 주거래은행이 아닌 곳을 선택했다는 응답(56.4%)도 절반을 넘는다. 비교 없이 주거래은행을 선택했거나(25.6%) 다른 금융기관을 상담·검색한 뒤 주거래은행을 선택했다(18%)는 응답을 앞지른다.
더구나 은행별 고객우대 등급 산정의 특징을 보면, 금융 소비자가 한 은행을 오랫동안 고집할 필요가 없다. 장기거래점수에는 큰 가중치가 없고, 예금과 대출 잔액은 클수록 손쉽게 점수를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국민은행은 거래기간 1년마다 10점(최고 300점)을 준다. 30년을 꾸준히 거래한다고 해도 거래기간 점수로는 최하등급인 프리미엄의 기준인 800점 이상에 한참을 못미친다. 대신 입출금예금에 300만원을 넣으면 바로 300점이 되고, 대출 평균잔액도 1000만원을 유지하면 바로 300점을 확보할 수 있다.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은 20년 이상 거래고객에게 각각 베스트 등급과 패밀리 등급을 제공한다. 하지만 신한은행의 경우 적금과 청약, 대출, 카드결제 등 금융거래를 3개 이상 해야 혜택을 줄 뿐만 아니라, 제공 혜택 역시 최하 등급이라 크지 않다. 적은 수수료 혜택을 받기 위해선 더 많은 자금을 금융사에서 굴려야 하는 방식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자산가가 아니어도 장기 거래를 한 고객의 신뢰에 대해 감사의 표시를 해야 하지만 은행은 실제로 수익이 우선이다. 예금을 많이 하거나 대출을 많이 해서 수익이 나오는 고객 위주로 혜택을 주고 있다”고 했다. 그는 “오랫동안 거래를 했던 고객이 대출을 받으러 오는 경우에도 ‘두군데 이상 알아보시라’고 말씀드린다. 최대한 금리 혜택을 드리려고 하지만, 금리 같은 경우 영업 드라이브가 세게 걸릴 경우에 유리한 조건이 나오지 주거래고객이라고 해서 유리하게 나오진 않는다”고 덧붙였다.
카카오뱅크 등 인터넷전문은행은 별도로 고객우대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 인터넷은행 관계자는 “국내 은행들은 급여이체·카드결제·적금 등 3가지만 옮기면 바로 금리우대 혜택을 준다. 서비스 차이가 없다”면서 “인터넷은행은 고객을 등급별로 나눠 우대하기보다 모든 혜택을 나눠 제공하는 쪽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