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 사태에 연루된 금융회사들에 대한 금융감독당국의 제재 절차가 지난해 10월 시작된 이후 6개월째 진행되고 있다. 환매연기 규모가 6조8천억원, 관련된 금융회사가 28곳에 이르는 대형 금융사건인데다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치면서 제재 절차가 길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진행된 과정을 보면, 금융상품 설계·출시 관여, 판매 과정의 고의성, 소비자보호 정도 등이 제재 수위를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는 변수로 파악된다.
금융업계는 기관 제재보다는 주로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제재 수위에 관심을 쏟고 있다. 최근 업계에서 가장 관심을 끈 사안은 디스커버리 펀드를 판매한 아이비케이(IBK)기업은행의 김도진 전 행장에 대한 제재였다. 김 전 행장은 금융감독원 검사국에서 애초 중징계에 해당하는 ‘문책경고’를 사전통보받았는데, 실제 제재심을 거치면서 경징계에 해당하는 ‘주의적 경고’로 낮춰졌다. 금융사 임원에 대한 제재에서 중징계(문책경고·직무정지·해임권고)와 경징계(주의·주의적 경고)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중징계를 받으면 3~5년간 금융사 임원에 선임될 수 없기 때문이다.
감독당국 안팎에서는 김 전 행장의 제재 수위가 경징계로 낮춰진 데는 김 전 행장이 해당 펀드의 출시 과정에 개입한 정도가 낮다는 점과 미국 현지 운용사가 상품을 설계한 점 등이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디스커버리자산운용의 경영진은 관리 부실 등을 이유로 중징계를 받았다.
감독당국 관계자는 제재 양정과 관련해 “2019년 발생한 국외금리연계 파생결합증권(DLF) 사건이 기준점이 된다”고 설명했다. 디엘에프 사건의 경우엔 판매사들이 수익률과 만기 등 상품구조의 설계에 관여하고, 경영진도 전사적인 판매를 독려한 것으로 드러난 바 있다. 윤석헌 금감원장도 지난 2월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라임 판매사 제재 기준과 관련해 “디엘에프 제재를 베이스로 놓고 그것보다 더 잘못한 게 있는지, 감경 사유가 있는지 따져서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펀드가 부실 상태임을 알고도 판매를 지속했는지 등 판매 과정에서 고의성 여부도 영향을 미치는 요소다. 자본시장법에선 금융회사가 투자권유를 할 때 거짓 내용을 알리거나 불확실한 사항에 대해 단정적 판단을 제공하는 행위 등을 부당권유로 규정하고 이를 금지하고 있다. 감독당국에선 라임 무역금융펀드를 판매한 신한금융투자의 경우 부실 발생 사실을 은폐하는 등 고의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소비자 피해보상 등 사후 수습 노력도 제재 수위에 영향을 미친다. 금감원은 중대한 소비자 피해를 야기한 금융회사에 대한 제재 때 금융소비자보호처와 사전에 협의하는 이른바 ‘제재 사전협의 제도’를 지난해 2월부터 운영 중이다. 이 제도의 적용을 받는 곳은 라임 펀드와 관련된 우리은행이 처음이다. 금융소비자보호처 쪽은 “최근 열린 제재심의위원회에 참석해 우리은행이 분쟁조정위원회 권고를 받아들이는 등 사후 수습 노력에 적극적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다만, 제재심 위원들이 이를 양정에 어느 정도 참작할지 여부는 미지수다.
제재 절차가 전반적으로 지연되는 데는 코로나19 여파도 있지만 윤석헌 금감원장이 임기를 얼마 남겨놓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금융회사들의 ‘지연 전략’도 한몫하는 것으로 보인다. 윤 원장이 연임하지 않고 오는 5월에 퇴임할 경우 제재의 강도가 한풀 꺾이지 않겠느냐는 기대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라임펀드 판매 증권사들의 경우 지난해 11월 금감원이 제재안을 확정해 금융위원회에 올렸는데, 아직 최종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다. 각 증권사는 금융위에 상당히 많은 반박자료를 제출하고 진술권을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위도 이번 제재가 앞으로 사모펀드 사태 관련 다른 금융회사 제재에 선례가 된다는 점에서 상당히 신중하게 살펴보는 분위기다. 금융회사 임원 제재는 금감원장 자문기구인 제재심의위원회 의결을 거쳐 ‘문책경고’까지는 금감원장이 결정을 하며, ‘직무정지’(증권사 임원은 문책경고) 이상은 금융위가 최종 결정한다.
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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