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개미’들의 자금이 투자적격 끄트머리에 놓인 BBB 등급 회사채 발행시장으로 몰리고 있다. 저금리 시대에 조금이나마 수익률을 높이려는 행보로, 기업들은 당초 목표보다 낮은 금리에 더 많은 금액을 조달하고 신용이 낮은 기업들에 유동성을 지원하는 금융당국의 부담도 줄었다.
3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를 보면, 두산은 신용등급 BBB 회사채(305회)를 31일 발행한다. 앞서 기관투자자의 수요예측에서 400억원 모집에 2070억원의 자금이 들어와 5.18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희망금리(4.1~5.1%)보다 훨씬 낮은 3.6%에 금리가 결정됐고 발행금액도 400억원에서 800억원으로 늘었다. 지난해 11월만 해도 두산 BBB 회사채는 미달됐고 금리는 5.3%나 됐다. 위축됐던 BBB 회사채 시장에 온기가 감도는 것이다. 올 들어 발행된 BBB 회사채 11건 중 중앙일보, 대한항공 등 10건의 모집금액이 증액됐다. 1~4월 기준으로 BBB 회사채 발행금액(1조원)은 지난해 같은 기간(4950억원)보다 102% 급증해, A등급 이상 회사채 발행액 증가율(40.5%)을 앞질렀다.
풍부한 여윳돈을 쥔 개인투자자들이 저금리 시대의 틈새시장으로 BBB 채권을 주목한 영향이 컸다. 증권사들은 피비(PB)를 통해 사전에 고객들의 희망금리를 조사한 뒤 수요예측에서 낙찰받은 물량을 10억원 단위로 개인에게 판매한다. 전문가들은 투입자금 대비 수익이 공모주보다 낫다고 말한다. 공모주의 경우, 주당 차익은 커도 경쟁률이 수천대 1이라 몇 주 받기 힘든데 반해, 채권은 물량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어서다.
개인들은 자산운용사의 하이일드펀드 가입을 통해서도 BBB 채권을 배정받을 수 있다. 하이일드펀드는 공모주 우선배정을 받기위해 BBB 이하 채권에 자산의 30%를 투자한다. 금융투자협회 자료를 보면 하이일드펀드 설정규모는 연초 6275억원에서 27일 기준 1조3240억원으로 2배 넘게 불어났다. 특히 투자자문사의 하이일드펀드는 사실상 수요예측에 참여하는 효과를 얻고 있다. 고객이 희망금리를 써내면 투자자문사가 수요예측을 대행해주기 때문이다. 김형호 한국채권투자자문 대표는 “예금금리가 0%대로 떨어진 지난해 하반기부터 개인들의 회사채 투자가 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개인 자금이 BBB 등급 회사채 발행시장으로 몰리는 흐름의 영향은 복합적이다.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낮은 기업들의 숨통은 다소 트이고 있다. 개인들의 참여로 BBB 채권이 시장에서 자연스레 소화되면서 저신용 기업의 유동성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가 설립한 회사채·기업어음매입기구(SPV)의 지원 부담이 줄어드는 효과도 거뒀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이 기구의 조성자금 5조원 가운데 현재 1조8천억원이 남아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지난해 코로나 사태 때는 산업은행이 이 기구를 통해 BBB 채권을 인수하지 않으면 죄다 매각되지 못했는데 지금은 산은이 가져갈 물량이 없다”고 말했다.
다만 대기업이 발행한 BBB 채권 중심으로 투자가 몰리고 발행만기도 3년 미만으로 짧아지고 있어 시장이 자생적인 정상화를 이루지 못했다는 평가도 있다. 시장 전반에 미칠 리스크도 그만큼 커졌다. 향후 기준금리 인상 등으로 신용위험이 다시 높아질 수도 있다. 정화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재무건전성이 낮아 사모 회사채나 기업어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한 기업들은 외부 충격에 취약하다”며 “경제상황 변화에 따라 유연한 정책지원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한광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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