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만에 쌓여 있는 수출 화물.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수출 실적 부진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1월 수출이 지난해 같은 달보다 16.6% 줄어든 데 이어 2월 들어서도 10일까지 하루 평균 수출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14.5%나 줄었다. 수출 침체는 무역적자 누적으로 이어지며 한국 경제의 최대 현안으로 떠올라 있다. 정부는 “최근의 수출 부진은 주요 수출국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현상”이라고 설명하지만, 우리나라의 수출 부진이 더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무역협회는 15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개최한 ‘최근 수출 부진 원인 진단과 대응 방향’ 설명회를 통해 “수출 감소 폭을 고려할 때 우리 수출이 상대적으로 크게 부진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수출 상위 6개국 중 한국·중국·독일의 수출이 지난해 4분기부터 감소세로 돌아섰으며, 그중 한국의 수출 낙폭이 가장 크다는 점에서다. 지난해 4분기 한국 수출은 전년 같은 기간에 견줘 9.9% 줄어든 데 비해 미국은 8.2%, 이탈리아는 3.3%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중국(-6.9%)도 감소세를 기록했지만, 한국보다는 폭이 작았다. 일본, 독일은 각각 -4.6%, -1.9%였다. 올해 1월 수출 실적에서도 한국은 일본(-15.8%, 1~20일 기준)보다 더 부진했다.
정만기 무협 부회장은 이날 설명회에서 “우리나라 수출 산업이 경기변동에 민감한 중간재 위주 품목군으로 구성된 측면에서 주로 기인한 것”으로 풀이했다. 무협 분석 결과, 지난해 4분기 총수출 감소액 175억달러 중 150억달러(85.7%)가 중간재 수출 감소에서 비롯됐다. 지역별로는 생산기지인 중국(-17.8%), 베트남(-10.7%)에 대한 수출이 크게 감소했다. 품목별로는 반도체 -44.5%, 디스플레이 -36.0%, 철강 -25.9%, 석유화학 -25.0% 등이다. 반도체 한 품목의 수출 감소가 총수출 감소액의 절반 이상(52.4%)을 차지했다. 반도체 수출 부진은 경기 위축 전망에 따른 투자 수요 감소에 비대면 수요 감소가 겹친 탓으로 풀이됐다.
지난해 10월 이후 수출 물량과 단가가 동시에 감소한 것도 수출 실적을 끌어내린 요인으로 꼽혔다. 수출 물량이 전년 같은 기간에 견줘 3개월 이상 연속 감소한 것은 코로나19 대유행 때인 2020년 4~8월 이후 처음일 정도로 이례적이다. 지난해 4분기 수출 감소(-9.9%)를 물량·단가 요인으로 분해하면, 물량 요인은 55%, 단가 요인은 45%에 이른다고 무협은 밝혔다. 반도체의 경우, 4분기 수출액은 25.8% 줄어든 반면 물량은 4.8% 늘어, 수출 감소액의 상당 부분이 단가 하락(약 30%)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됐다.
무협은 반도체 수출 회복 시기를 올해 하반기 이후로 내다봤다. 가트너 등 주요 시장조사기관에서 메모리반도체의 업황 개선 시기를 올해 4분기(D램), 내년 초(낸드플래시)로 잡고 있는데 바탕을 두고 있다. 무협은 “모바일 등 전방산업 수요 감소와 재고 누적 등을 고려할 때 단가 회복에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반도체 수출 물량 증가와 중국의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효과로 단가가 회복될 경우 반도체 수출이 탄력을 받을 전망”이라고 밝혔다.
무협은 수출 부진은 상반기 내내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상반기 중 세계 경기 하락세가 우세해 교역량 회복이 제한적일 것이란 전망에서다. 무협은 “중간재 위주인 우리 수출은 경제위기 때마다 세계교역의 흐름보다 큰 폭으로 등락해온 만큼 올해도 중국 경제 회복력,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사태 진정 여부 등 대외 여건 변화에 탄력적인 회복세를 나타낼 것”이라고 밝혔다.
정만기 부회장은 “단기적으로는 경기변동에서 수출 기업들이 무너지지 않도록 금융 여건 개선이 필요하고 중기적 시각에선 국내 투자확대로 수출 기반이 강화될 수 있도록 국내 기업 환경을 최소한 외국과 동등하게는 만들어주는 게 과제”라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수출 산업 기반 유지를 위한 출산율 제고”가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김영배 선임기자
kimyb@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