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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헤리리뷰

쩍 갈라진 미국…정치갈등 속 불평등에 ‘내 편 아니면 적’

등록 2023-10-04 09:00수정 2023-10-04 13:04

민주주의 위협하는 정치 양극화
트럼프 지지자 ‘1∙6 의사당 폭동’
2년여 지났지만 분열 더 심화
불평등 심화에 혐오가 파고들어
2021년 1월6일 대선 승리를 도둑맞았다면서 미국 워싱턴디시(DC) 국회 의사당을 점검한 트럼프 지지자들. AP 연합뉴스
2021년 1월6일 대선 승리를 도둑맞았다면서 미국 워싱턴디시(DC) 국회 의사당을 점검한 트럼프 지지자들. AP 연합뉴스

제1야당 대표 단식, 체포동의안 통과, 지지자들 시위, 구속영장 청구와 기각. 한국에서 벌어지는 극한 정치적 대립은 예외적 현상이 아니다. 민주주의 수호자를 자처해온 미국에서 3년 전 폭동으로 의사당이 점거됐고 전직 대통령마저 기소됐다. 상대편을 ‘적’으로 간주하는 적대정치가 팽배한다. 민주주의 위기는 패권경쟁, 전쟁과 인플레이션 등 다중위기와 겹쳐 삶의 불안을 키운다. 오는 11일 ‘다중위기 시대: 공존의 길을 찾아’를 주제로 한 ‘한겨레’ 아시아미래포럼에 맞춰 위기 원인을 짚고 대안을 모색하는 기사를 세 차례 싣는다.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다. 코로나로 재택근무 중인 아이샤에게 친구들의 문자가 날아왔다. “도대체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니?” “너는 괜찮니?” 폭도들이 워싱턴디시(DC) 국회의사당을 둘러싼 바리케이드를 무너뜨리고 경찰을 공격했다는 뉴스를 보고서야 비로소 실감이 났다. 의원들이 폭도를 피해 숨었다는 소식에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당 앞에 세워진 교수대에 달린 올가미 사진을 보고서는 끔찍했다.

의사당에서 차로 15분 떨어진 곳에 그의 집이 있다. 워싱턴에 사는 친구들이 피난을 떠나야 할지 물었지만 집을 나서면 더 위험한 상황에 맞닥뜨릴지 모른다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는 2021년 1월6일 있었던 사건은 ‘폭동’이 아니라 ‘반란’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에서 아이샤를 만난 지난달 6일 극우단체 프라우드 보이스(Proud Boys) 전 지도자 엔리케 타리오는 징역 22년을 선고받았다. 단체 회원을 조직 및 선동해 의사당을 점거하려 한 혐의가 인정됐다. 이제껏 그날 폭동에 참여해 기소된 1100여명 가운데 최고 형량이었다. 2016년 뉴욕에서 창설된 이 단체는 자신들을 트럼프의 보병으로 여겼다. 며칠 앞서 다른 조직원 도미닉 페졸라는 10년 형을 받고 법정을 나가면서 “트럼프가 승리했다”고 외쳤다.

이는 미국 민주주의 상징인 의사당이 공격받던 날 워싱턴을 뒤덮었던 함성이다. 그날은 두달 앞서 치러진 대선 결과를 좀체 인정하지 않는 트럼프와 그의 지지자들이 벌인 불복 시위가 폭력으로 얼룩진 날이었다. 선거로 권력을 선출하는 민주주의 원칙이 부정당했다. 민주주의 종주국으로 불리며 민주주의를 수출해온 미국에서 일어난 가장 수치스러운 날이었다.

지난 9월4일 미국 워싱턴디시(DC) 국회 의사당 앞에서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류이근 기자
지난 9월4일 미국 워싱턴디시(DC) 국회 의사당 앞에서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류이근 기자

더위가 가시지 않은 지난달 초 의사당은 한가로워 보였다. 드문드문 의사당을 지키는 경찰이 눈에 띄었지만 의사당 가까이 다가가 구경하고 사진 찍는데 누구도 막지 않았다. 한때 의사당을 둘러싼 2.4m 높이 검은색 철제 담과 바리케이드도 1·6 폭동 6개월 뒤 모두 철거돼 보이지 않았다.

2년9개월이나 지났지만 그날의 상흔은 아직 미국을 갈라놓고 있다. 1·6 폭동을 보는 시선은 두 쪽으로 나뉘었다. 폭동이 있은 지 8개월이 지나 실시한 퓨리서치센터의 조사 결과는 미국의 정치 양극화 지형을 그대로 드러낸다. 폭동 참가자의 처벌 수위가 적절했는지 묻자 민주당 지지자 10명 가운데 7명은 너무 가볍다고 답했다. 반면 공화당 지지자 10명 가운데 7명꼴로 과하거나 적절하다고 밝혔다.

버지니아 페어팩스에 사는 존도, 위스콘신 밀워키에 사는 에런도 폭동 참가자들에 대한 처벌이 너무 가혹하다는 쪽이었다. 둘 다 트럼프 지지자다. 보험사에서 일하는 에런은 위험한 선례가 될 수 있다며 “사법 제도를 이용해 크고 작은 정치적 반대자들을 쫓아내는 것을 반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를 기소한 것도 과잉 조처라고 했다.

트럼프는 지난 대선 관련 조지아주 등 두 곳에서 기소됐다. 이 때문에 8월24일 조지아주 풀턴 카운티 구치소에서 ‘머그샷’으로 불리는 수감자 사진을 찍었다. 인상을 찌푸린 그의 모습이 공개됐지만 정치적으로 전혀 상처 입지 않았다. 대부분의 공화당 지지자는 그가 정치적 동기에 의해 기소됐다고 생각한다.

지난달 초 월스트리트저널의 여론조사에서 내년 트럼프와 바이든이 맞붙는다면 누굴 찍을지 묻자 각각 46%를 얻어 동률을 보였다.

민주당 지지자로 다음 대선 때 바이든을 찍겠다고 밝힌 아이샤는 트럼프의 재출마를 불행한 현실이라면서 ‘무섭다’는 말을 다섯번이나 반복했다. 그의 두려움과 달리 미국의 반쪽은 트럼프를, 나머지 반쪽은 바이든을 거의 같은 힘으로 떠받치고 있다. 지난 대선이 조작됐다고 생각하는 맷은 내년에 다시 트럼프를 찍겠다고 말했다. 시카고 교외에 사는 그는 바이든이 ‘오바마의 조종을 받는 꼭두각시’라고 생각한다.

지난 4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기소인부절차가 진행된 뉴욕 맨해튼 형사법원 앞에서 그의 반대자들(왼쪽)과 지지자들이 경찰을 사이에 두고 거친 말을 주고받고 있다. 뉴욕/이본영 특파원 ebon@hani.co.kr
지난 4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기소인부절차가 진행된 뉴욕 맨해튼 형사법원 앞에서 그의 반대자들(왼쪽)과 지지자들이 경찰을 사이에 두고 거친 말을 주고받고 있다. 뉴욕/이본영 특파원 ebon@hani.co.kr

콜로라도주 덴버대에서 정치학을 가르치는 토니는 남동생과 만나더라도 정치를 소재로 얘기 나누지는 않는다. 동생은 지난 대선을 도둑맞았다고 생각한다. 1·6 폭동은 정당했으며 내년 대선에서 트럼프가 승리하지 못하면 내전도 정당화될 수 있다고 본다. 가족 가운데 예외적 식구는 동생이 아니라 토니다. 캐나다와 국경을 맞댄 북부 몬태나주 시골 출신 토니의 가족은 모두 동생과 정치적 견해가 비슷하다.

양극화된 정치는 가족보다 신뢰가 더 두터운 ‘정치적 부족’을 만들었다. 시비에스(CBS)가 지난 8월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공화당 지지자들은 트럼프가 가족과 친구, 보수 매체 인사들, 종교 지도자들보다 더 진실을 말한다고 느꼈다.

정치적 부족은 지역으로 묶이고 나뉜다.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빌 비숍이 ‘거대한 분리’(The Big Sort)에서 썼듯 미국은 도시와 시골, 첨단 산업 도시와 그렇지 않은 지역으로 크게 나뉜다. 이는 다시 정치 양극화를 강화하는 쪽으로 작용한다.

세계화와 맞물린 산업과 기술의 변화에 떠밀린 백인 노동자 계층의 쇠퇴에서 비롯한 문화적 요인을 정치 양극화의 원인으로 보기도 하지만 더욱 근본적으로 불평등에 주목해 설명하기도 한다. 제인 맨스브리지 하버드 케네디스쿨 명예교수는 시장의 확장과 자본주의 길들이기 목표의 후퇴가 공동체 의식을 약화해 양극화를 추동했다고 말한다. 비영리 공개 포럼이자 실천 공동체를 지향하는 ‘연대 워크숍’(solidarity workshop) 창립자 엘리아스 크림은 미 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졌다면서 “이민 혐오와 문화 전쟁같은 문화적 면만이 아니라 20년 넘게 미국 중산층의 쇠퇴라는 더 근본적인 문제가 가로놓여 있다”고 말했다. 80년대 이후 미 중산층은 되레 줄었다.

박상훈 국회미래연구원 초빙연구위원은 “미국의 두꺼운 중산층이 깨지고 불평등이 심해져 소수 인종과 이민자, 이슬람교도들에게 적대를 퍼붓게 되는 일종의 적대가 전이되는 문제가 나타났다”며 “지금 세계 정치가 맞닥뜨린 가장 큰 문제는 불평등이다. 불평등의 심화와 중산층의 몰락으로 민주주의가 위기를 겪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퓨리서치센터의 조사 대상 19개국 가운데 한국과 미국에서 상대 정당 지지자들과의 갈등이 가장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퓨리서치센터 누리집 갈무리
지난해 퓨리서치센터의 조사 대상 19개국 가운데 한국과 미국에서 상대 정당 지지자들과의 갈등이 가장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퓨리서치센터 누리집 갈무리

정치 양극화는 미국만이 아니라 많은 나라에서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 퓨리서치센터에서 선진국 중심 민주주의 19개국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다른 정당 지지자와의 갈등이 한국에서 가장 높게 나타났고 미국이 2위였다. 반면 북유럽의 스웨덴은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불평등이 크고 시장주의가 강하게 작동하며 상대적으로 복지가 약한 나라에서 양극화 현상이 도드라졌다.

내년 미 대선은 누가 승자가 되든지 갈등이 다시 폭발할 가능성이 작지 않다. 토니는 다소 비관적이다. “미국은 아직 1·6 의사당 폭동을 극복하지 못했다. 트럼프가 시동을 걸었던 힘이 우리 정치를 계속 지배하고 있다. 내년 선거는 4년 전과 많은 부분에서 되풀이될 것으로 보인다.”

시카고 워싱턴/류이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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