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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헤리리뷰

원주, 협동생태계 구축 앞장…금융기반 조성이 관건

등록 2012-03-06 10:39

헤리리뷰
사회적 경제 개막 앞둔 협동조합기본법 시대
생존력 원천은 협력·연대
웬만한 건 모두 자력해결
‘한국판 몬드라곤’ 부푼꿈
기업으로서의 협동조합은 자본조달에서 큰 약점을 안고 있다. 돈을 많이 벌어 주주들의 투자수익을 늘리는 게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은 조합원인 고객들에게 물건을 값싸게 공급하고, 농업협동조합은 농민 조합원이 생산한 농산물을 비싸게 구입해주는 것이 존재 이유이다. 당연히 이익을 많이 낼 수가 없고, 일반적인 기업 평가와 은행 대출 심사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주식 상장도 하지 않는다.

자본조달의 한계라는 결정적 약점을 안고도 협동조합 기업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의 원천은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조합원들의 존재, 바로 충성심 높은 다수 조합원의 공동행동(협동)이라 할 수 있다. 나아가 그런 조합원들이 참여한 협동조합 기업들끼리 또다시 뭉치는 것, 곧 적극적인 연대의 힘이다. 경쟁 관계의 협동조합끼리도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는 그런 생태계를 이뤄낼 때, 협동조합 기업들은 자금조달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재벌 기업 이상으로 탄탄해질 수 있다.

스페인의 몬드라곤, 이탈리아의 볼로냐가 협동조합의 ‘성지’로 추앙받는 것 또한 오랜 세월에 걸쳐 사업과 자금을 ‘호혜’하는 끈끈한 협동조합 생태계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협동조합 기업 운영의 역사가 짧은 우리나라에서 몬드라곤과 볼로냐를 기대하는 건 성급한 일이지만, 강원도의 원주 지역은 협동조합의 작은 메카로 벌써부터 주목을 받고 있다.

협동조합기본법 제정작업을 이끈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2일 원주의 한살림 생협 매장을 찾았다(사진 왼쪽). 오른쪽은 2007년에 박원순 서울시장(당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이 원주를 찾아 밝음신협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다.  기획재정부, 희망제작소 제공
협동조합기본법 제정작업을 이끈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2일 원주의 한살림 생협 매장을 찾았다(사진 왼쪽). 오른쪽은 2007년에 박원순 서울시장(당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이 원주를 찾아 밝음신협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다. 기획재정부, 희망제작소 제공

2009년 국내 첫 지역네트워크 결성

1970년대부터 협동조합의 싹을 틔운 원주 지역에서는 2009년에 19개의 협동조합과 사회적기업들이 모여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를 결성했다. 네트워크에 소속된 회원이 3만5000여명으로 원주 인구 32만명의 11%이고, 연간 총매출액 184억원에 고용인원이 388명에 이른다. 신용협동조합, 의료생협, 한살림생협, 공동육아협동조합, 교육협동조합, 영농조합법인 등 여러 협동조합들이 다양한 사업을 벌이고 있다. 조합원이 되면 먹을거리를 구입하고, 아플 때 치료받고, 아이들을 맡기고, 필요한 돈을 빌리는 정도는 그 안에서 모두 해결할 수 있다.

원주 협동조합의 불을 댕긴 맏형이자 1세대는 1971년에 32명의 주민 출자로 설립된 밝음신협이다. 서민들의 고리채 해결에 앞장섰던 밝음신협은 처음부터 단순한 금융기관이 아니라, 주민들과 함께하는 조직으로 출발했다. 1985년 한살림생협을 시작할 때는 홍보와 조합원 가입 유치를 주도해, ‘협동조합 간의 협동’을 원주의 기풍으로 정착시키는 큰일을 해냈다. 이때의 경험은 2002년에 밝음신협, 원주한살림, 원주생협 등 7개 단체가 공동으로 출자해 의료생협을 탄생시키는 소중한 결실로 이어졌다.


이후로는 먼저 생겨난 협동조합이 인큐베이팅과 분사 등의 방식으로 새로운 협동조합의 출범을 돕는가 하면 공동사업 또는 사업지원을 통해 설립 초기의 협동조합을 조기에 안착시키는 창조적인 ‘협동의 진화’ 사례가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났다. ‘협동조합 간 협동’의 실험이 문화와 전통으로 뿌리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먼저 생긴 조합이 새 조합 인큐베이팅

장애인과 고령자를 고용해 친환경 떡을 생산하는 행복한시루봉은 가톨릭농민회와 삼도생협에서 원재료를 저렴하게 공급받고 원주한살림이라는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한 덕에 출범 2년 만인 지난해에 손익분기점을 넘어섰다. 생태건축협동조합을 표방하는 노나메기는 시공매출의 80%를 네트워크 내부거래에서 올리고 있다. 행복한시루봉과 노나메기는 둘 다 원주지역자활센터에서 인큐베이팅했다.

2003년에 설립한 공동육아협동조합 소꿉마당은 원주생협과 원주한살림의 지원을 받아 친환경 급식체계를 짤 수 있었다. 누리협동조합과 갈거리협동조합은 빈곤층 또는 노숙인 등을 대상으로 대출사업을 벌이는 원주만의 독특한 금융기관으로 법인격이 없어 신용사업 추진이 어렵자, 밝음신협이 업무협약을 통해 사업의 길을 터주었다.

해마다 이윤 5%씩 떼내 기금 조성키로

김기태 한국협동조합연구소장은 “원주의 협동조합 생태계는 어렵게 이뤄낸 소중한 자산이지만, 아직까지 그 규모는 지역 총생산의 0.36% 창출에 그치고 있다”며 “그동안 기본법의 부재로 제조업 분야의 협동조합이 없었고 덩치 큰 농협이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최혁진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기반조성본부장은 원주 협동조합 생태계가 몬드라곤처럼 크게 뻗어나가지 못한 이유로 금융기반이 취약하다는 근본적 한계를 지적했다. 최 본부장은 “협동조합 생태계가 발전한 세계 각국의 사례를 살펴보면 협동조합의 창업을 인큐베이팅하고 사업자금을 지원하는 강력한 협동조합은행의 존재가 항상 뒤에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몬드라곤은 협동조합은행인 노동인민금고에 기업국을 설치한 1970년대 이후 눈부신 성장을 이뤄낼 수 있었다. 신규 협동조합의 창업 및 투자 자금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파산위기에 처한 협동조합을 지원하는 수호천사 노릇을 했던 것이다.

원주의 협동조합들은 올해부터 해마다 이윤의 5%씩을 걷어 ‘협동기금’을 조성하는, 작지만 소중한 첫걸음을 뗐다. 새로운 협동조합을 만들거나 사업 확장을 할 때, 그리고 어려운 협동조합이 생길 때 자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노동인민금고 같은 금융기반 구실을 하겠다는 것이다.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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