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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D는 나가라는 권고야”…IT·게임업계 성과평가 방식 도마 위에

등록 2021-10-05 17:00수정 2021-10-05 21:28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게임 회사 스마일게이트 그룹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는 ㄱ씨는 올해 초 이뤄진 지난해 업무평가에서 최하위인 ‘D’등급을 받았다. ㄱ씨는 평가 결과서에서 책정 근거를 찾아보려 했지만, 업무 성과 등에 대한 구체적인 예시 없이 항목마다 ‘연차·직급 대비 품질이 낮다’는 등의 문구만 적혀 있었다. 담당 임원과의 면담에서 등급 책정 이유를 물었지만 “(사직하라는) 권고의 의미도 있고, ‘이 사람들(평가권자들)이 너를 싫어해. 어떻게 할 거야?’라는 의미”라는 답이 돌아왔다. ㄱ씨는 업무평가 결과가 사실상 ‘퇴사 권고’였다고 생각한다.

최근 아이티(IT)·게임 업계에서 직원들의 ‘성과 평가’를 둘러싼 갈등이 잇달아 불거지고 있다. 평가 근거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다 평가권이 팀장 등 소수에 독점돼 권고 사직·괴롭힘의 구실이 되기도 한다. 평가 결과에 연동된 성과급(인센티브)이 급여 수준을 크게 좌우하는 IT업계의 보수 체계는 성과 평가를 둘러싼 사쪽과 직원 간 갈등을 키우는 배경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임종성 의원실 등의 말을 종합하면, 스마일게이트 자회사인 ‘스마일게이트 스토브’의 디자이너 ㄴ씨는 6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이 회사의 성과평가 관행에 대한 증언에 나선다. 지난 2011년 입사한 ㄴ씨는 올해 성과 평가에서 팀 동료 ㄱ씨와 함께 D등급을 받았다. D는 스마일게이트 그룹 2300여명 중 한 해 10명 미만의 인원에게만 부여되는 ‘드물게 낮은 점수’이지만 10여명이 일하는 ㄴ씨 팀에서만 두 명이 한꺼번에 D를 받았다.

최하 등급을 받으면 연봉은 동결되고 승진 등이 미뤄진다. 스마일게이트는 게임 로스트아크 등의 흥행으로 올해 직원 임금을 800만원 일괄 인상하기도 했지만, D등급자는 이런 보상에서도 제외됐다. ㄴ씨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D등급은 회사 품위를 훼손하거나 큰 손실을 입힌 직원에게만 부여되는 등급으로 알고 있었다. 지난해 평가권자인 팀장 등으로부터 업무 품질·일정지연 등에 대한 특별한 지적을 받은 적도 없었고 이전까지도 B, C 등의 평정을 받아 왔다”고 말했다.

스마일게이트 스토브
스마일게이트 스토브

평과 결과를 납득하지 못한 두 직원은 ‘재평가를 해달라’며 회사에 이의제기를 신청했다. 하지만 담당 본부장 등은 이의제기에 따른 면담에서 “(평가 결과는) 같이 일 못하겠다는 얘기”라며, 결과를 승복하거나 퇴사하라는 뜻을 비쳤다. ㄴ씨는 “회사가 전 직원 200명 정도의 작은 기업일 때부터 이곳에 몸담으면서 이곳의 서비스와 같이 성장해왔다는 자부심을 갖고 일해왔다”며 “이렇다 할 이유도 듣지 못한 채 회사로부터 ‘같이 일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고 나니 스스로의 경력이 모두 부정된 듯한 무력감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스마일게이트 노동조합인 SG길드의 차상준 지회장은 “임직원 280여명인 스마일게이트 스토브에서는 최근 2년 동안 60%인 170명이 퇴사하는 등 직원들의 ‘줄퇴사’가 일어나고 있다. 3년여 전 신임 대표가 부임한 뒤 회사가 성과평가를 빌미로 연차가 비교적 높은 직원들을 ‘물갈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스마일게이트 쪽은 “담당 임원은 D등급에 사직 권고의 의미도 있지만 ‘(해당 직원이) 일을 다시 시작할 수도 있다’고 면담에서 설명했던 것으로 안다”며 “회사는 절차에 따라 공정한 인사평가를 진행했고, 해당 직원들의 이의제기가 있어서 이를 수용해 재평가를 했다. 그 결과 두 사람의 등급은 지난달 C로 조정한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두 사람도 납득하고 이의제기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고 말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성과평가 방식과 결과를 둘러싼 논란은 IT 업계 전반에서 줄을 잇고 있다. 올해 초 카카오에서는 한 직원이 ‘함께 일하기 싫은 동료를 꼽으라’는 동료 평가 방식에 압박감을 호소하며 극단적 선택을 암시해 논란이 일었다. 5월 네이버 직원이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하며 사망한 사건에서도 가해자로 지목된 임원들이 ‘인센티브를 주지 않겠다’는 등의 발언으로 직원들을 압박해온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에 IT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회사가 성과 평가 근거·기준을 피평가자에 공개하고 평가와 연동되지 않는 복지제도 등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네이버 노조가 최근 회사와의 단체교섭에 이런 내용을 담은 요구안을 마련하는 등 대안 마련을 위한 구체적인 움직임도 나온다.

임종성 의원은 “주관적인 성과평가로 인해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노동자들이 증가하고 있다. 객관적 기준이 없는 성과평가의 경우 해고 사유를 제한하는 노동관계법을 회피해 노동자를 퇴사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성과평가의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한 기준을 마련하고, 평가결과를 구실로 한 사직 압박 등을 직장내 괴롭힘의 유형으로 포섭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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