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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리니지, 딸은 배그…‘탈RPG’ 파이 커지는 게임시장

등록 2021-11-01 09:05수정 2021-11-01 18:03

흔들리는 엔씨·넥슨·넷마블…날아오른 신흥 강호
엔씨 주가 연초대비 40% 하락 등 시장 의구심 커져
펄어비스가 개발 중인 오픈 월드 액션 어드밴처 장르 신작, ‘도깨비’ 플레이 장면. 펄어비스 제공
펄어비스가 개발 중인 오픈 월드 액션 어드밴처 장르 신작, ‘도깨비’ 플레이 장면. 펄어비스 제공

올해 한국 게임업계의 판도는 전통의 강자 ‘3엔’(3N, 엔씨소프트·넥슨·넷마블)의 뒷걸음질과 ‘신흥 강호’들의 급부상으로 요약된다. 주식시장에서 ‘대장주’ 엔씨 주가가 연초보다 40% 넘게 빠지는 사이 중견회사 펄어비스 주가는 2배로 뛰었다. 후발주자인 크래프톤 역시 이달 출시될 신작으로 역대 국내 게임 중 가장 많은 글로벌 사전 예약자를 끌어모았다.

희비를 가른 배경엔 ‘장르 다양성’이 숨어 있다. 3엔이 소위 ‘리니지류’로 대표되는 역할수행게임(RPG) 위주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고수하는 사이, 후발 주자들은 총을 쏘는 슈팅게임이나 자유로운 모험 위주의 오픈 월드 어드밴처 등에 도전했다. 엇비슷한 구성으로 ‘고인 물 게임’이라는 비판이 일던 케이(K)-게임이 ‘탈 RPG’로 돌파구를 만들어낼지 관심이 모아진다.

‘반토막’ 된 대형사, ‘갑절’로 뛴 중견사들

31일 <한겨레> 취재 내용을 종합하면, 29일 기준 3엔의 주가는 각각 올해 고점(종가 기준) 대비 최고 40% 넘게 빠졌다. 일본 도쿄 거래소에 상장된 넥슨의 경우 4월 한 때 주당 3700엔을 돌파했지만, 지금은 2000엔을 밑돈다. 엔씨 주가 역시 2월 한 때 최고 103만원을 찍었으나 이후 우하향 곡선을 그렸다. 넷마블은 지분을 보유한 연예기획사 ‘하이브’ 주가 급등 등의 호재로 다른 두 곳보다는 선방했지만, 연 고점보다는 15% 이상 떨어져 있다. 전망도 밝지 않다. 케이비(KB)증권은 올 3분기(7∼9월) 엔씨 영업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3% 줄어들 것으로 최근 전망했다. 넥슨·넷마블에도 목표 주가 ‘하향’ 리포트들이 이어지고 있다.

잘 나가던 이들 회사의 변곡점이 된 건 ‘블소2(블레이드앤소울2) 쇼크’였다. 엔씨는 지난 8월 말 게이머들의 기대 속에 모바일 RPG ‘블소2’를 출시했으나 성적이 기대에 한참 못 미쳤다. 블소2는 출시 첫날 구글 앱 마켓에서 일 매출 순위 4위, 애플에서는 6위에 그쳤다(‘모바일인덱스’ 집계치). 한 게임회사 관계자는 “원래 게임회사 주가 상승 모멘텀은 신작 출시다. 하지만 블소2가 이례적으로 박한 평가를 받으면서 비슷한 게임이 많은 다른 회사들에도 여파가 미치고 있다”고 전했다.

크래프톤의 신작 ‘배틀그라운드 뉴스테이트’. 크래프톤 누리집 갈무리
크래프톤의 신작 ‘배틀그라운드 뉴스테이트’. 크래프톤 누리집 갈무리

반대로 출시를 앞둔 ‘예정작’만으로 주가가 급등한 곳도 있다. 펄어비스의 경우 지난 8월 독일의 글로벌 게임 행사에서 공개한 신작 ‘도깨비’가 호평을 받았다. 이 작품에 대한 기대감 등으로 회사 주가는 1년 새 2배 넘게 뛰었다. 크래프톤 역시 다음달 출시될 ‘배틀그라운드 뉴스테이트’가 전세계에서 5000만명의 사전예약자를 모으며 신작 효과를 누리는 중이다.

이런 온도차는 다음달 열릴 국제게임전시회 ‘지스타’ 참가 라인업에서도 엿보인다. 국내 최대 규모 게임행사인 지스타는 게임사들이 경쟁적으로 신작을 뽐내는 쇼케이스다. 하지만 올해는 2005년 첫 행사 이후 처음으로 3엔이 동시 불참한다. 메인 스폰서는 신작 ‘오딘 발할라 라이징’으로 매출 순위 최상단을 차지한 카카오게임즈다.

‘탈 RPG’가 성패 갈라
게임업계에서는 ‘3엔의 위기는 RPG 장르의 위기’라는 말이 심심찮게 나온다. 엔씨와 넥슨은 1990년대 후반부터 RPG를 중심으로 성장한 회사였다. ‘리니지(엔씨)’, ‘바람의나라(넥슨)’ 등 한국 컴퓨터 게임의 선조 격인 RPG들이 이들 작품이었다. 엔씨는 지금도 매출 70% 이상을 리니지에서 내고 있고, 넥슨 역시 RPG인 ‘던전앤파이터’·‘메이플스토리’ 두 게임에서만 매출 절반 이상을 얻는다.

RPG는 다른 게임에 비해 공력이 많이 드는 장르로 꼽힌다. 캐릭터가 ‘레벨업’을 하려면 몬스터를 많이 잡아 경험치를 쌓아야 한다. 좋은 무기를 득템(아이템 획득)하기 위해선 어려운 임무에 반복 도전해야 한다. 게이머의 게임 실력으로 승패가 결정되는 단판제 게임과 달리, 시간을 많이 들일수록 유리해지는 구조다.

RPG는 다양한 사업 모델(BM)을 집어 넣기에도 적합한 게임으로 꼽혔다. 여러 날 매달려야 가질 고급 아이템을 ‘현질’(현금 결제) 한 번으로 얻는 데에 기꺼이 지갑을 여는 게이머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게임업계의 한 관계자는 “RPG는 ‘페이 투 윈’(pay-to-win, 이기기 위해 돈을 쓰는) 방식이 작동하는 대표적인 장르다. 큰 돈을 결제하는 ‘핵과금러’를 모으는 데는 RPG만한 게임이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황금알을 낳던 RPG들이 올 들어 역풍을 맞고 있다. 올 초 게이머들이 과도한 과금 유도에 반발해 벌인 ‘트럭 시위’가 대표적이다. 1월 넥슨 유저들이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정보를 공개하라며 판교에서 트럭을 동원해 시위를 벌인 데 이어, 2월 리니지M 유저들이 집단행동을 취했다. 이는 RPG의 사행성 논란 등으로 번져 블소2 등의 흥행 부진을 낳기도 했다.

반면 RPG 이외의 신작들을 준비해온 신진 게임사들은 이런 ‘민심 이반’ 충격을 피해 갔다. 크래프톤의 주력 작품 배틀그라운드와 그 후속작은 슈팅 게임(FPS)이다. 펄어비스가 개발 중인 ‘붉은 사막’과 도깨비는 오픈 월드 액션 어드밴처 장르다. RPG와 달리 캐릭터가 특정 직업을 고르지 않은 채 성장해, 자유도가 높은 편이다.

특히 붉은 사막은 RPG로 기획했지만 개발 도중 과감하게 장르를 튼 사례다. 펄어비스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오픈 월드’는 RPG처럼 레벨을 올리며 캐릭터를 키우지 않고, 맵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문제들를 풀어내는 방식이다. 중세풍 대륙을 누비는 모험이라는 시나리오에 오픈 월드가 적합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장르 다양화는 앞으로 K-게임의 ‘세계화’에도 필수 조건 중 하나로 꼽힌다. 북미·유럽 등 서구권에서는 RPG의 인기가 한국에서만 못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앱 분석 서비스 센서타워가 집계한 9월 전세계 모바일 게임 매출 순위를 보면, 오픈 월드·실시간 전략 게임·FPS 장르가 각각 1·2·3위를 차지했다. 10위권에서 RPG는 10위 ‘페이트 그랜드 오더’ 하나 뿐이었다.

엔씨소프트는 지난달 29일 신작 ‘리니지W’의 플레이 영상을 공개했다. 엔씨 제공
엔씨소프트는 지난달 29일 신작 ‘리니지W’의 플레이 영상을 공개했다. 엔씨 제공

‘리니지W’ 흥행 여부에 쏠리는 시선

다만 대형사들이 당장에 ‘비RPG’로 사업 방향을 돌리기는 무리가 따른다. 대형작 하나를 개발하는 데 대개 5년 이상이 걸리는 데다, 지금은 개발자·디자이너 전문 분야도 RPG에 치중돼 있기 때문이다. 최근 블록체인 기술로 게임머니를 가상화폐로 환전할 수 있게 한 위메이드의 RPG '미르4'가 전세계 동시접속자 100만명을 달성하는 등, 신기술을 접목하면 RPG가 '잭팟'이 될 여지도 여전히 있다.

이 때문에 3엔은 일단 출시가 임박한 RPG들을 흥행시키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다. 엔씨는 다음달 4일 ‘리니지더블유(W)’ 서비스를 시작하고, 넷마블도 ‘세븐나이츠2’를 연내 출시할 예정이다. 특히 엔씨는 리니지W 외에 한동안 내놓을 대형작이 없어, ‘리니지W에 회사의 명운이 걸렸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만약 블소2에 이어 리니지W의 흥행도 기대를 밑돈다면 엔씨는 물론 업계 전반이 RPG 위주 사업 구조의 개편을 고민하게 될 수도 있다.

엔씨 관계자는 “리니지W는 전작의 문제로 제기된 과금 시스템 등을 덜어내 초창기 게임의 향수를 기억하는 올드 게이머들과 새 유저들이 모두 즐길 수 있게 했다”며 “한국·대만·중동 등 전세계 동시 출시하는 만큼 글로벌 진출에도 발판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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