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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IT

돈 버는 게임? 재밌는 게임?…‘P2E’ 열풍에 엇갈린 생존 게임

등록 2022-01-11 04:59수정 2022-01-11 08:20

게임업계 새해 전략, 승자는 누구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글로벌 피시(PC) 게임 플랫폼 ‘스팀’(Steam)에서는 지난 연말부터 2개의 국산 게임이 실시간 동시 접속자 수 10위권을 달리고 있다. 크래프톤의 간판 슈팅게임 ‘배틀그라운드’가 4위(10일 오후 기준), 위메이드의 다중접속 역할수행게임(MMORPG) ‘미르4’가 8위다. 이 중 미르4는 지난해 8월 국외 출시 이전까지만 해도 국내 게이머들에게도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었다. 전작 ‘미르의 전설’ 시리즈가 2000년대 초반부터 서비스됐지만, ‘리니지’(엔씨소프트)나 ‘바람의나라’(넥슨)처럼 전국 피시방을 휘어잡는 수준의 인기작은 아니었다.

미르4가 글로벌 톱10에 드는 게임으로 급성장한 건 ‘피투이’(P2E·Play to Earn·돈 버는 게임) 기능으로 입소문을 타면서였다. 이 게임은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게임 내 재화를 가상화폐로 환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 게이머들이 비트코인 채굴하듯 게임머니 모으기에 열을 올리면서 전세계 동시 접속자가 최대 130만명에 달하고 있다.

위메이드의 다중접속 역할수행게임(MMORPG) ‘미르4’ 화면. ‘P2E’ 게임으로 글로벌 팬들의 입소문을 타며 최대 동시 접속자 130만명을 넘겼다. 위메이드 제공
위메이드의 다중접속 역할수행게임(MMORPG) ‘미르4’ 화면. ‘P2E’ 게임으로 글로벌 팬들의 입소문을 타며 최대 동시 접속자 130만명을 넘겼다. 위메이드 제공

미르4 흥행은 새해 케이(K)-게임(국산 게임) 업계 전체에 피투이 개발 열풍을 몰고 왔다. 컴투스·웹젠 등 업력 20년 이상의 중견 게임업체들은 물론이고 엔씨소프트와 넷마블 같은 대기업까지도 올해 피투이 신작을 발표하겠다고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일부 회사는 게임 계정을 대체불가토큰(NFT)으로 만들어 사고팔게 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반면 ‘대세’가 된 피투이와 일부러 거리를 두는 게임사들도 있다. “게임 본질인 ‘재미’를 놓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피투이 대전’ 참전 여부로 새해 국내 게임사들의 사업 방향이 갈리는 모습이다.

“게임하고 돈도 번다”
블록체인 기반으로 게임머니 환전
위메이드 ‘미르4’ 동시접속 130만명
엔씨·넷마블 등도 올해 신작 계획
일부 회사는 계정 NFT 거래하기도

‘게임머니’ 벌어 현실에서 쓴다

피투이 게임의 핵심은 게임머니 환전이다. 게임 내 재화를 가상화폐 거래소에 상장된 코인으로 바꾸고, 이를 다시 거래소에서 현금으로 바꾸는 시스템이 뒷받침돼야 한다.

10일 <한겨레> 취재 내용을 종합하면, 미르4는 ‘게임 내 재화→미르4 전용 가상화폐→위믹스 코인→현금’ 등 크게 4단계를 거쳐 게임 내 재화가 현금화된다. 먼저 게이머는 게임 안에서 희소한 광석 ‘흑철’을 모아야 한다. 광산에서 직접 캐거나 퀘스트(임무)를 깨면서 흑철을 수집한다. 흑철 10만개는 미르4의 전용 가상화폐 ‘드레이코’ 1개로 교환된다. 드레이코는 위메이드가 발행한 가상화폐 ‘위믹스’로 다시 환전된다. 게이머는 빗썸·게이트아이오·멕스시(MEXC) 등의 국내외 거래소에서 위믹스를 최종적으로 현금화할 수 있다.

드레이코-위믹스, 위믹스-현실 화폐의 환율은 수급 상황에 따라 실시간으로 바뀐다. 10일 오후 2시 기준, 1드레이코는 약 0.14위믹스다. 1위믹스는 빗썸에서 약 7200원에 거래됐다. 흑철 10만개(1드레이코)가 1000원 정도의 가치를 갖는 셈이다. 단, 게임머니 현금화가 금지된 한국판 미르4에는 흑철 환전 기능이 없다. 일부 게이머들이 가상사설망(VPN)으로 아이피(IP)를 우회해 글로벌 버전에 ‘편법’ 접속하고 있지만, 게임 속도가 느려지는 등 제약이 따른다. 현금화가 허용되고 물가가 비교적 낮은 중남미·동남아시아 등지에서 환전이 활발히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르4의 게임 내 재화 ‘흑철(Dark steel)’의 현금 환전 방식. 흑철을 미르4 전용 암호화폐인 ‘드레이코’로 바꾼 뒤, 이를 ‘위믹스’ 코인으로 다시 환전한다. 위메이드 제공
미르4의 게임 내 재화 ‘흑철(Dark steel)’의 현금 환전 방식. 흑철을 미르4 전용 암호화폐인 ‘드레이코’로 바꾼 뒤, 이를 ‘위믹스’ 코인으로 다시 환전한다. 위메이드 제공

위메이드는 위믹스를 축으로 하는 경제시스템에 다른 게임들까지 참여시킬 계획이다. 미르4의 드레이코처럼 게임마다 ‘매개 통화’ 역할을 하는 가상화폐를 두고, 이들을 위믹스라는 ‘기축 통화’로 교환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 경우, 게이머는 각 게임 내 재화를 위믹스를 거쳐 다시 다른 게임 재화로 바꿀 수 있다. 한 게임을 즐기다 싫증이 나면 게임 내 재화를 다른 게임으로 그대로 옮겨 새 게임을 시작할 수 있다. 게임사 입장에서도 게임머니를 가상화폐로 옮길 때의 수수료를 챙길 수 있어 이득이다. 올해 말까지 100개 게임을 위믹스 플랫폼에 참여시키는 게 위메이드의 목표다. 이미 ‘뮤 오리진’ 시리즈를 개발한 웹젠과 ‘열혈강호’를 만든 룽투코리아를 비롯한 개발사 10여곳과 위믹스 생태계 편입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맺은 상태다.

게임 캐릭터와 한정판 아이템 등에 고유한 일련번호를 부여해 대체불가토큰으로 만드는 사업도 시작됐다. 미르4 국외판에서는 지난달 게임 캐릭터 대체불가토큰이 최고 1만3000위믹스(당시 위믹스 시세로 약 1억7000만원)에 팔리는 등 이용자 간 거래가 활발하다.

대형 게임사들도 “올해 안에 첫 피투이 게임을 발표하겠다”고 공언하며 판을 키우고 있다. 엔씨소프트는 지난해 11월 열린 3분기 실적발표회에서 피투이 게임 개발 계획을 처음 공개했다. 당시 홍원준 최고재무책임자(CFO)는 “대체불가토큰·블록체인과 게임의 결합이 엄청난 기회를 만들어줄 수 있다고 믿고 준비하고 있다”며 “내년(2022년) 중 대체불가토큰과 블록체인이 결합된 서비스를 선보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넷마블은 북미 자회사를 통해 올해 피투이 게임 ‘챔피언스:어센션’을 출시할 예정이다.

“게임 본질은 재미다”

스마일게이트·펄어비스는 신중론

‘매력적인 콘텐츠’ 우선 전략

“수익성도 결국 재미로 승부” 중론

“게임 본질은 재미”…선긋는 회사들도

하지만 모든 게임사가 피투이·대체불가토큰 열풍에 뛰어드는 건 아니다. 게임 신작 개발 등에만 매진하며 ‘마이웨이’를 가는 회사도 있다. 다중접속 역할수행게임 ‘로스트아크’ 개발사 스마일게이트와 ‘검은사막’ 개발사 펄어비스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회사에는 피투이·대체불가토큰 기반 기술인 블록체인 관련 조직이 없다. 피투이에 대해 기초적인 수준의 전략 검토는 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는 게 이들 회사 쪽의 입장이다.

이런 ‘신중론’에는 피투이가 게임의 근간인 ‘재미’와 충돌할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있다. 게임이 오락이 아닌 돈벌이 수단으로 인식되면 게임 내 재미 요소들이 가려진다는 것이다. 수익성은 안겨주지 않더라도, 게임 본연의 즐거움을 높여 게이머들을 모으겠다는 게 이들 회사 방향이다.

지난달 스마일게이트가 ‘로스트아크’ 게이머들과의 비대면 소통행사 ‘로아온 윈터’를 하고 있다. 이 게임은 게이머들과의 잦은 소통으로 불편·건의사항 등을 해결해 호평받았다. 이날 행사 최대 동시 시청자는 31만명에 달했다. 스마일게이트 제공
지난달 스마일게이트가 ‘로스트아크’ 게이머들과의 비대면 소통행사 ‘로아온 윈터’를 하고 있다. 이 게임은 게이머들과의 잦은 소통으로 불편·건의사항 등을 해결해 호평받았다. 이날 행사 최대 동시 시청자는 31만명에 달했다. 스마일게이트 제공

최근 권혁빈 스마일게이트 창업자가 내부망에 올린 신년사에서는 블록체인·피투이·대체불가토큰 같은 단어가 한차례도 언급되지 않았다. 대신 “매력적인 콘텐츠” 키워드를 내세웠다. “성공적 업데이트와 유저(이용자) 친화적 소통이 자리를 잡으면서 로스트아크는 동시 접속자 수 24만명, 유저 수 100만명이라는 성과를 이뤘다”며 “경쟁력 있고 감동을 주는 아이피(IP·지식재산)가 유저(게임 이용자)의 사랑으로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배틀그라운드를 기반으로 글로벌 게임사로 성장한 크래프톤 역시 ‘블록체인보다 재미가 먼저’라는 시각이다. 배동근 크래프톤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지난해 3분기 실적발표회에서 대체불가토큰 진출 계획에 대한 질문을 받고 “대체불가토큰을 붙인 게임을 출시한다고 선언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이를 통해 게임의 재미와 생태계를 확장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밝혔다. 이어 “지속적으로 플레이할만큼 (게임이) 매력적이거나 유저 풀이 확대되지 않으면, 게임 재화나 대체불가토큰의 가치가 영원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블록체인 열풍에 견제구를 던졌다. 마침 같은 날 오전 국내 게임업계 ‘맏이’ 격인 엔씨소프트가 대체불가토큰·블록체인 진출을 선언한 것과 대비되며 ‘소신 발언’으로 주목을 받았다.

피투이에 적극적인 회사들도 ‘재미를 놓친 게임’이라는 평가는 피하고 싶어 한다. 위메이드는 자사 게임들에 대해 피투이가 아닌 ‘피앤이(P&E·Play and Earn)’, 즉 ‘게임도 하고 돈도 번다’는 목표를 내건다. 돈벌이‘만’을 위한 게임이 아니라고 강조하는 것이다.

앞으로 돈 버는 게임들 간의 이용자 쟁탈전도 재미에서 승부가 날 것이라는 게 게임업계의 중론이다. 사용처가 제한적인 게임사 가상화폐는 현금화를 위한 공급이 수요를 앞지르기가 쉽다. 화폐 가치가 떨어지는 만큼 수익성 측면의 게임 매력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 게임업체 개발자는 <한겨레>에 “수익성만을 좇아 게임을 시작한 이들이 빠져나간 뒤에도 이용자 수를 유지할 수 있는지가 피투이 게임의 성공을 좌우할 것”이라며 “결국 게임 본질인 게임성이 높아야 한다”고 말했다.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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