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아이씨티(ICT) 사내망에 공개돼 있는 인사명령지. ‘근무성적 불량’으로 분류된 직원들의 이름·소속·사번 등 신상정보가 명시됐다. 독자 제공
포스코 계열 정보기술(IT) 기업 포스코아이씨티(ICT) 직원 ㄱ씨는 지난해 4월 사내망 게시판에 올라온 인사 명령지를 보고 눈앞이 하얘졌다. 자신이 최근 인사평가에서 ‘성적 불량’으로 분류됐다는 점이 이름·근무지·직급 등 구체적인 신상과 함께 공개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개인정보인 근무 평정 등을 가려달라”고 회사에 요구했지만, 이 게시물은 10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모든 직원들이 볼 수 있는 상태로 노출돼 있다.
ㄱ씨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한때 A등급이었던 평가가 갑자기 ‘불량’으로 떨어진 점도 이해할 수 없지만, 조직 구성원 전체가 보는 앞에서 저성과자라는 낙인이 찍힌 것 같아 더욱 고통스럽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포스코아이씨티가 업무성과 평가가 안좋은 직원들의 명단을 공개해 논란이 일고 있다. 회사가 개인정보에 해당하는 근무 평정을 본인 동의 없이 노출한 것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과 명예훼손이라는 지적이 인다. 일부 직원들은 대규모 희망퇴직을 추진하던 회사가 ‘퇴직 압박용 망신주기’에 나선 것이라며 “노동권 침해”라고 반발하고 있다. 포스코아이씨티는 시스템통합(SI)과 제철 설비 엔지니어링 등을 주력으로 하는 포스코 계열사로, 직원 수는 1900명이다.
9일 <한겨레> 취재 내용을 종합하면, 지난해 4월23일 포스코아이씨티 인사노무그룹은 사내망의 인사동정 게시판에 ‘보직해임(미출근 및 사업소 대기)’이라는 제목의 게시물을 올렸다. 회사가 최근 2년 동안 업무평가에서 2차례 이상 C·D 등급을 받은 직원들을 보직해임시키고, 해당자 명단을 공개한 것이었다. 게시물에는 ‘장기 근무성적 불량’이라는 보직해임 사유와 함께, 대상자들의 이름·사번·직급·근무지 등이 드러나 있다.
이를 본 직원들은 “개인정보에 해당하는 근무 성적이 노출됐으니 게시물을 고쳐달라”고 회사에 요구했다. 그러나 이 게시물은 이날 현재까지 처음 내용 그대로 모든 임직원들에게 노출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명단에 오른 이들은 정신적인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일부 직원들은 우울감 등의 증세로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거나 퇴직한 것으로 알려졌다. 명단에 포함된 직원 ㄴ씨는 <한겨레>에 “20년 이상 이 회사에 다니며 특정 직원의 근무 평정을 공개하는 것은 처음 봤다”며 “자부심을 갖고 다녀온 회사가 ‘나가라’는 압박을 하는 것 같아 몹시 괴로웠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개인정보’에 해당하는 인사평가 결과를 정보 주체의 동의 없이 공개하는 것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지적한다. 개인정보보호법(제59조 제3호 등)은 “정당한 권한 없이, 또는 허용된 권한을 초과해 다른 사람의 개인정보를 훼손·멸실·변경·위조 또는 유출하는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를 어기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법무법인 ‘여는’의 이수열 변호사는 “개인정보 중에서도 민감한 내용인 개인 인사평가 결과를 전 직원이 보는 게시판에 공지한 것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자 노동권 침해에 해당할 소지가 크다”며 “회사가 인사발령을 하는 경우에도 (근무 성적 등) 그 사유까지 전 직원에 공개할 의무는 없다. 당사자들을 망신 주려는 의도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개인정보 분쟁조정을 담당하는 공공기관인 한국인터넷진흥원(KISA)도 같은 의견을 냈다. ㄱ씨 등의 상담 요청으로 이 게시물을 검토한 인터넷진흥원은 ‘형사처벌 될 수 있는 사안이다. 경찰서 등 수사기관에 신고하라’는 내용의 답신을 보냈다. 이에 직원들은 회사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과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경찰에 신고할 예정이다.
회사 안팎에서는 사쪽이 ‘퇴직 압박용’으로 무리수를 둔 것이라는 뒷말이 나온다. 명단이 올라오기 한 달 전인 지난해 3월부터 포스코아이씨티는 임직원들에게 명예·희망퇴직 신청을 받으며 인원 감축에 나서고 있었다. 회사의 퇴직 권고를 받고도 버틴 직원들에게 낮은 업무 평정을 준 뒤 ‘본보기’로 이를 공개했다고 일부 직원들은 주장한다. 박종현 포스코아이씨티 노동조합 지회장은 <한겨레>에 “‘회사에 남으면 저렇게 망신을 당할 수 있다’고 느낀 직원들이 퇴직 권고를 받아들이면서 실제로 지난해 7월까지 170여명이 희망퇴직을 했다. 명단에 공개된 직원들도 실장·그룹장 등으로부터 여러 차례 희망퇴직을 권하는 연락과 면담을 받았다”고 밝혔다.
회사 홍보실 관계자는 근무 평가 결과를 실명과 함께 공개한 이유에 대해 “인사발령 시 원칙적으로 업무 담당자의 변경·휴직·복직 등의 변동사항과 그 사유를 전체 직원에 공지하고 있다. 효율적인 업무 수행을 돕기 위한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다만, 개인정보 보호가 강화되는 추세에 맞춰 구성원들이 불편함이 없도록 앞으로는 (공지 방식 등에서) 보다 유연하게 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희망퇴직 유도 목적으로 근무성적을 공개했다’는 일각의 주장은 부인했다. 이 관계자는 “희망 및 명예퇴직은 지난해 5월까지 한시적으로 시행해 종료했다. 이후 인위적인 (인력) 조정은 없었다”고 밝혔다.
천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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