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틱톡은 전쟁위해 설계된 도구”
짧은 동영상 순식간 세계 전파
우크라이나 지지 여론 확산 기여
콘텐츠 승리로 현실 해결 못해
2011년 ‘아랍의 봄’ 무위로 끝나
빅테크 기업 ‘이미지 쇄신’ 기회
중립 위치·책임 회피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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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지지 여론 확산 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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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전쟁’ 달라지는 모습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가 보편화한 시대에서 달라지고 있는 전쟁의 양상을 드러내고 있다. 군사적 대결 못지않게 각종 정보화 기술을 동원한 첨단 ‘정보 전쟁’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일반 시민과 기업은 물론 글로벌 정보기술 기업 등 지난 시절 국가간 전쟁에 직접 개입하는 경우가 적었던 개인과 조직들도 침공에 항의하며 다양한 형태로 ‘참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쟁은 대개 급습으로 시작하지만 지난달 24일 러시아의 우크라니아 침공은 일찌감치 공개되고 예고된 게 특징이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11일 러시아가 2월16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가능성이 높다며 ‘침공 예정일’을 공개했고, 미 당국은 자국민들에게 13일까지 우크라이나를 떠나라고 요구했다. 언론엔 우크라이나 국경 주변으로 몰려든 러시아 군대와 전투기, 장갑차 배치 현황과 사진이 상세하게 보도됐다. 미국의 상업용 인공위성기업 맥사가 공개한 사진은 고해상도(30㎝ 물체 식별)로 러시아군이 침공을 위해 병력을 이동하는 장면을 확인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상업용 위성과 소셜미디어로 인해 투명한 전쟁의 시대가 열렸다”고 보도했다.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가 보편화된 2010년 이후 각종 사건 현장에서 개인들이 찍어 올리는 영상과 메시지의 힘이 막강해졌는데 우크라이나 사태에선 틱톡의 역할이 두드러졌다. 소셜미디어에 공유되는 영상 대부분에 ‘틱톡’ 워터마크가 달려 있다. 틱톡에서 ‘#우크라이나’ 태그를 단 영상의 조회수는 지난달 20일 64억회에서 8일뒤 171억회로 급증했다. 15초 안팎의 짧은 동영상을 손쉽게 편집하고 공유할 수 있는 ‘쇼트 폼’ 소셜미디어 틱톡에 대해 미국의 정보기술 전문지 <와이어드>는 지난 1일 “전쟁을 위해 설계된 도구”라고 평했다. <와이어드>는 “틱톡의 알고리즘은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는 영상을 제공하는데 지금은 전쟁 영상에 관한 욕구가 넘쳐난다”고 보도했다.
“탄환을 보내달라”며 결사항전을 선언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인기 ‘밈’이 되어 소셜미디어에서 확산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가상화폐 기부가 이어지고 있다. 정보기술 전문가들의 ‘아이티(IT) 민병대’도 새로운 모습이다. 지난달 27일 미하일로 페도로우 우크라이나 부총리 겸 디지털혁신부 장관이 트위터에서 “정보기술 부대(IT 아미)를 조직하는데 디지털 인재가 필요하다”고 요청해 만들어진 정부 주도의 민병대다. ‘우크라이나 아이티 아미’ 텔레그램 채널 가입자는 26만명이 넘는데, 러시아 주요 웹사이트에 디도스 공격을 해 피해를 입히는 등의 사이버공격을 수행하고 있다.
유무선 인터넷망이 구축되지 않은 전세계 오지를 대상으로 한 위성인터넷 서비스도 참전했다. 지난달 26일 페도로우 부총리는 트위터를 통해 일론 머스크에게 “당신이 화성을 점유하려는 동안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점령하려 한다. 당신 로켓이 우주로 발사되는 동안 러시아 로켓은 우크라이나 민간인을 공격한다”며 “우크라이나에 스타링크를 제공해달라”고 요청했다. 스타링크는 일론 머스크의 우주개발기업 스페이스엑스(X)가 운용하는 저궤도 위성 인터넷망 구축 프로젝트로, 2019년 5월 60기 위성 발사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2000여기가 발사됐다. 며칠 뒤 스타링크 단말기가 우크라이나에 도착했고 200Mbps 속도로 접속중이라는 실제 사용기가 올라왔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마이크로소프트(MS)의 위협정보센터(TIC)는 러시아 침공 몇시간 전에 ‘폭스블레이드(FoxBlade)’라는 악성코드가 우크라이나 정부·금융기관에 대해 사이버 공격을 시도한 것을 탐지해 미국과 우크라이나 당국에 통보하는 등 우크라이나 지원 활동을 해오고 있다.
구글은 구글지도에 우크라이나 현지 교통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기능을 차단했다. 우크라이나 군이나 민간인의 움직임이 노출될 우려에서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는 메타는 지난달 28일 러시아 국영 방송사 <러시아 투데이(RT)>와 통신사 <스푸트니크>에 대한 접속을 차단했다. 두 매체는 러시아의 선전과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데에 이용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구글과 애플도 이들 언론사에 대한 검색 제외와 스마트폰 앱 내려받기 차단에 나섰다. 트위터는 사용자들이 출처를 확인할 수 있도록 러시아 국영 언론사 링크가 포함된 모든 트윗에 딱지를 붙이기 시작했다.
엔터테인먼트 업계도 참전에 나섰다. 넷플릭스는 러시아에서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원작으로 한 시리즈물 제작 계획을 무기한 보류했다. 디즈니와 워너브러더스는 러시아에서 영화를 개봉하지 않기로 했다. 세계적 스포츠게임업체인 이에이(EA)스포츠는 3일 “국제축구연맹(FIFA), 유럽축구연맹(UEFA)과 보조를 맞춰 피파22 등에서 러시아 축구대표팀과 클럽팀을 배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가장 적극적인 기업은 애플이다. 애플은 지난 1일 “러시아 침공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지지한다”며 러시아 침공으로 발생한 우크라이나 난민 위기에 필요한 원조를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동시에 러시아에서 아이폰, 맥북을 비롯한 애플의 모든 제품 판매를 중단하기로 했다. 하드웨어만이 아니라 결제 서비스인 애플페이도 중단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달 28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가 거대 기술기업(빅테크)들의 힘을 테스트하는 무대라고 보도했다. 사생활 침해, 시장 지배력, 유해하고 분열적인 콘텐츠 확산에 대해 비판받아온 페이스북·구글·트위터 등 빅테크 기업들에게 이번 사태는 명성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로 여겨지고 있다. 소셜미디어가 민주주의를 위한 도구로 높은 평가를 받았던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새로운 방식으로 정보기술이 인도적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줄 기회다.
하지만 기술기업들로선 국제적 기대에 부응하며 신뢰를 쌓아가려면 기존 사업관행 등 포기해야 할 게 많은 위험한 길이다. “기술기업들은 지정학에 휩쓸려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책임없이 전세계의 소통을 독점하면서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는데 이런 국제적 위기 속에서 승산없는 상황이 됐다.” 페이스북에서 선거 중립 프로젝트를 이끌다가 현재 로스앤젤레스 베르그루엔 연구소 연구원인 야엘 아이젠스테트가 <뉴욕타임스>에 밝힌 내용이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유사한 정책과 내용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며 책임을 피해왔던 빅테크 기업들의 사업 관행이 도전받는 상황이다.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제재에 정보기술업계가 동참해달라는 요구가 항상 관철되는 것도 아니다. 가상자산(암호화폐) 세계 1·2위의 거래소인 바이낸스와 코인베이스는 최근 러시아인 계정을 차단해달라는 우크라이나 정부의 요청을 거부했다. 국제사회의 제재 대상인 러시아 재벌 등 일부 개인 계좌는 차단하지만 러시아 이용자 전체를 막는 것은 지나치다는 이유에서다.
정보기술 매체 <레지스터>의 지난달 28일 보도에 따르면, 페도로우 부총리는 러시아가 인터넷을 전쟁 선전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며 국제인터넷주소관리기구(ICANN)에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요청했지만 기각당했다. 인터넷 주소를 관리하는 국제기구인 아이칸은 인터넷 트래픽이 각국으로 연결되도록 하는 주소 관리 권한을 갖고 있어, 러시아의 최상위 도메인(.ru, .su, .рф 등)을 비활성할 경우 러시아 인터넷이 전면 중단될 수 있다. 아이칸 관계자는 “유럽연합은 우크라이나의 어렵고 위험한 상황을 알고 있으며 지지한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러시아를 제거하는 것은 민주적 변화를 위한 러시아의 시민사회를 지지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인터넷주소관리기구는 중립적인 플랫폼이다”라고 밝혔다.
현대전에서 정보기술은 사이버전의 무기를 넘어 국제적 연대와 지원, 반전 여론 등 평화의 도구로도 기능하고 있다. 나아가 거대 기술기업들은 거대한 영향력에 걸맞은 사회적 책임을 요구받으며, 과거와 같은 ‘단순 서비스 중개자’의 역할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틱톡과 같은 플랫폼은 전쟁의 참상을 빠르게 알리며 세계 여론을 우크라이나 편으로 결집시켰지만 허위정보의 위험성 또한 증대시켰다. 온라인과 콘텐츠의 승리가 현실과 전쟁의 해결 수단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 아랍의 봄 운동에서 이미 확인됐다. 관심 높은 플랫폼에 이용자가 몰리면 이를 돈벌이와 정치적 목적에 악용하려는 시도도 생겨난다. 초연결세상에서의 전쟁은 거대한 영향력을 지닌 정보기술에 대한 국가적·군사적·사회적 차원에서의 새로운 과제를 던진다.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starry9@hani.co.kr
민간 위성기업 맥사(Maxar)의 최근 위성사진은 러시아 군대가 키이우(키예프)를 향해 북쪽에서부터 이동하고 있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맥사 제공
SNS·고해상도 위성사진 전황 생중계
지난달 24일 러시아의 침공 당일 우크라이나 하르키우(하리코프)주 추후이우 비행장을 민간 위성기업 맥사(Maxar)가 촬영한 사진. 계류중인 항공기들과 러시아의 폭격으로 파괴된 항공기 잔해를 확인할 수 있다. 맥사 제공
정보기술 기업들 속속 ‘참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 침공 사흘째인 지난달 26일 자신은 물러서지 않고 국민들과 함께 조국을 수호하기 위해서 끝까지 싸우겠다고 키이우(키예프) 거리에서 말하는 동영상을 올렸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개된 영상은 우크라이나 지지 여론을 확산시켰다. 우크라이나대통령실 제공
시험대에 오른 거대 기술기업
일론 머스크는 지난달 27일 미하일로 페도로우 우크라이나 부총리의 요청에 댓글로 스타링크 서비스 제공을 밝혔다. 트위터 제공
미하일로 페도로우 우크라이나 부총리 겸 디지털혁신부 장관이 지난달 28일 일론 머스크로부터 스타링크 단말기를 받았다고 트위터에 올린 사진. 트위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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