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내밀한 욕망을 건드리는 기술들이 있다. 이를테면 ‘투명’과 ‘투시’가 그렇다. 남으로부터 나를 숨기는 것과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들여다보는 것. 그 순간부터 나는 모든 행동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충동과 본능의 지배를 받는다. ‘책임없는 자유’란 권력을 쥐는 순간, 대개 일탈과 부도덕의 유혹에 빠지곤 한다. 시각 정보의 비대칭은 곧 권력이다.
사라짐의 욕망은 영화에선 익숙하게 변주돼 왔다. 영화 <할로우맨>의 케인 박사는 투명인간이 된 뒤, 그 자유로운 기분을 이렇게 말한다. “거울 속의 자신을 안 봐도 된다는 게 얼마나 근사한 일인지 알아?” 케인 박사는 직접 만든 혈청으로 자신을 숨겼지만, 영화 <인비저블 맨>의 투명 수트나 <007> 시리즈의 투명 자동차는 기술의 산물이다. 이들은 사방을 비추는 카메라 속에 자신을 숨기는 시각적 착시로 투명 효과를 냈다. 영화적 상상력으론 받아들일 수 있지만, 현실은 아직 이런 어설픔을 허용하진 않는다.
그렇지만 과학은 투명함의 욕망에 다가서려는 시도를 포기하지 않았다. 물체가 색을 띠는 까닭은 빛의 가시광선 중 해당 색을 반사하기 때문이다. 빛을 굴절시키지 않고 모두 투과하면 해당 물체는 무색, 즉 투명하게 된다. 빛을 투과하는 물질을 개발하면 영화 ‘해리포터’의 투명망토가 실현되는 셈이다.
2006년 미국 듀크대학의 데이비드 스미스 교수가 레이더를 피하는 ‘메타물질’을 처음 선보였지만, 사람의 눈이 아닌 마이크로파로부터 물체를 감추는 기술이었다. 2008년에는 미국 버클리대학 연구팀이 물체 위에 덮어씌우는 형태의 투명 카펫을 발표했다. 2019년엔 캐나다 하이퍼스텔스가 반투명 플라스틱 패널 형태의 ‘퀀텀 스텔스’란 기술을 적용한 반투명 플라스틱 패널을 공개했다. 동영상을 보면 불투명한 형태의 플라스틱 패널이 등장하는데, 겉으론 아무 것도 안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숨어 있던 물체가 보인다. 그렇지만 우리가 상상하는 온전한 ‘투명’이라고 부르기엔 부족한 모습이다. 국내에선 2017년 기초과학연구원과 과학기술원 공동 연구진이 빛의 방향을 제어해 투명 효과를 내는 메타 표면 기술을 선보이기도 했다.
잊을 만하면 되살아나던 이 욕망의 기술이 2022년 다시 등장했다. 영국 아웃도어 기업 볼레백은 맨체스터대학 코스쿤 코카바스 교수와 협력해 ‘열 위장 재킷’ 시제품을 내놓았다. 이 재킷은 벌집 격자 모양의 2차원 탄소 소재인 ‘그래핀’을 활용했다. 재킷 앞면엔 42개의 그래핀 패치가 부착돼 있다. 각 패치는 100개 이상의 그래핀 층으로 만들어졌는데, 재킷 표면의 열 복사를 제어해 적외선 카메라로부터 재킷을 입은 사물을 숨겨준다. 볼레백은 이번 시제품은 적외선 스펙트럼에서만 동작하지만 전하 밀도를 변경하면 가시광선, 즉 사람 눈으로 보는 색깔도 숨길 수 있다고 밝혔다. 아직은 시제품 형태이지만 궁극적으로 그래핀 소재를 활용한 투명망토를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볼레백은 이전에도 독특한 의류를 선보여 왔다. 강철보다 15배 강한 원단을 써서 칼로 그어도 찢어지지 않는 재킷부터 ‘화성에서 입어도 편안히 잠들 수 있는’ 후드 티셔츠 등이 그렇다. 어두운 곳에서 스스로 빛을 내고 영하 40도까지 체온을 유지해주는 ‘태양광 충전 재킷’은 2017년 <타임>이 선정한 최고의 발명품에 올랐다. 전자 폐기물을 재활용해 만든 시계도 올해 공개를 목표로 제작 중이다. 지금껏 불투명한 시도에 그쳤던 인간의 욕망을 투명하게 완성하려는 괴짜 기업의 도전이 호기롭고 흥미롭다.
이희욱 미디어전략팀장 asada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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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을 소재로 한 영화 ‘할로우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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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도어 기업 볼레백은 그래핀 소재를 활용해 적외선 카메라에 감지되지 않는 위장 재킷 시제품을 선보였다. 볼레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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