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씨소프트가 팬덤 플랫폼 ‘유니버스’에 대한 매각 협상을 진행 중이다. 사진은 유니버스의 연예인 아바타. 엔씨소프트 제공
국내 아이돌 팬 플랫폼 산업의 벽은 높았다. 20년 넘는 업력으로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을 축적한 엔씨소프트가 팬 플랫폼 ‘유니버스'를 출시한 뒤 2년 동안 잦은 논란에 휩싸인 끝에 결국 사업철수 수순을 밟고 있다. 국내 팬덤 문화의 특수성을 이해 못한 채 첨단 플랫폼 기술로만 승부를 건 엔씨소프트의 패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1일 정보통신(IT) 업계 설명을 종합하면, 엔씨소프트는 출시 2년을 맞은 팬 플랫폼 유니버스 매각을 추진 중이다. 주요 협상 대상자로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산하 스타쉽엔터테인먼트가 거론되고 있다. 매각가는 1천억원 안팎으로 전망된다.
시작은 야심찼다. 엔씨소프트가 2021년 1월 말 자사의 기술을 총 동원한 케이(K)팝 엔터테인먼트 플랫폼을 출시한다는 소식에 앱 출시 전부터 사전예약자 수가 400만명에 달할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강다니엘, (여자)아이들, 아스트로 등 인기가수들도 유니버스에 합류하며 위버스(하이브 운영), 버블(SM 운영)과 팬 플랫폼 3강을 형성했다. 당시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대면 공연과 팬미팅이 불가능해 가수와 팬의 소통을 위한 팬 플랫폼 수요가 컸고, 관련 산업이 성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대가 혹평으로 바뀌기까지 채 한달이 걸리지 않았다. 인공지능 기술로 아티스트 목소리를 흉내내 가상통화를 할 수 있는 유료 서비스 ‘프라이빗 콜’ 기능이 논란의 출발점이었다. 목소리는 연예인과 비슷하지만 대화 과정에서 어색한 말투들이 나오면서 “기괴하다”는 반응이 나오기 시작했다. 급기야 진짜 가수와 소통을 원하는 팬심을 악용했다는 지적과 함께 가수를 상품화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가상인간 기술을 활용한 ‘아이돌 아바타’는 실물과 다소 다른 생김새뿐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다는 이유로 외면 받았다.
유니버스 이용 경험이 있는 양아무개씨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좋아하는 연예인을 흉내낸 가상인물과 연애를 하는 것처럼 대화하는 썸 콘셉트의 기능에선 불쾌함까지 느꼈다”며 “연예인과 팬의 긴밀한 소통을 원하는 팬덤의 성격을 모르고 지극히 게임적인 사고로 접근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좋아하는 스타가 유니버스와 계약이 종료되는 과정에서 미리 연간구독권 등을 결제한 팬들의 항의가 쏟아지는 등 논란이 이어졌다. 익명을 요청한 플랫폼 업계 관계자는 “연예기획사가 아닌 외부 기업이 팬 플랫폼을 운영할 경우, 인기가수 기획사들이 구독 수익보다 높은 계약금을 요구해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기술 수준을 떠나 팬덤 문화를 잘 이해하는 연예기획사가 팬 플랫폼을 운영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카카오엔터 쪽에서 팬 플랫폼은 구미가 당기는 사업이다. 산하 기획사들이 아이유, 아이브, 몬스타엑스 등 많은 인기 연예인들을 보유하고 있어 국내뿐 아니라 해외 팬 플랫폼 사업의 확장을 기대할 수 있다. 유니버스 별도 매출액은 공개되지 않지만, 연예인 계약금 지출액이 커 구독료만으로 수익이 나지 않는 상황이다. 다만 기획사가 소속 연예인을 활용하면 실적 개선을 할 수 있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사우디 국부펀드 퍼블릭인베스트먼트(PIF)가 카카오엔터에 8천억원 규모의 투자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유니버스의 이 업체 매각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옥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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