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동문공설시장 청년 상인과 중·장년 상인들이 네트워킹 행사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카카오 제공
“저희 놀기만 하는 줄 아셨죠? 2교대로 과자 굽느라 하루 네 시간도 못 자는 사람도 있어요.”
“그렇다고 가게 문 닫고 그러는 거 아니야, 손님 끊긴다고.”
지난 8일 오후 제주도 제주시 동문공설시장에서 만난 변승현(30)씨와 김명곤(64)씨가 격 없이 이야기를 나눴다. 제주도 토박이인 변씨는 지난해 3월 이 시장 지하 1층 청년몰에 입점해 수제 뱅쇼(허브·과일 등을 넣어 끓인 와인) 키트 가게를 운영하고, 경북 출신인 김씨는 20여년 전 제주도로 내려와 시장 1층에서 횟집을 운영한다.
제주시는 지난해 25억원의 예산을 들여 동문공설시장에 청년몰을 조성했다. 제주도에서 4명, 전국에서 16명의 청년 상인을 모집·선발해 파격적인 조건으로 입점시켰다. ‘전통시장 활성화’와 ‘청년 일자리 창출’이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다는 목표가 무색하게 청년 상인 유치가 쉽지 않았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1층 기존 상점들과 달리, 청년몰은 지하 외딴 곳에 위치해 있는 탓이 적지 않았다. 처음 입점한 20명 청년 상인 가운데 절반 가까운 9명이 다른 곳으로 옮기거나 폐업하고 현재는 11명만 남았다.
지난 8일 제주도 제주시 동문공설시장 청년몰 입구에 카카오 ‘우리동네 단골시장’ 프로그램을 알리는 장식물이 걸려 있다. 카카오 제공
지난 8일 제주도 제주시 동문공설시장 청년몰 입구에 ‘우리동네 단골시장’ 프로그램을 알리는 장식물이 걸려 있다. 카카오 제공
카카오와 카카오임팩트는 지난 7∼9월 석달간
서울 양천구 신영시장에서 시범 사업을 벌인 데 이어, 지난달 동문공설시장을 포함한 전국 전통시장 10곳(수도권 5곳, 그 외 지역 5곳)을 정식 선발해 지원을 시작했다. 시범 사업에선 온라인 지식교육 플랫폼 엠케이와이유(MKYU)의 전문 교육을 받은 디지털 튜터들을 시장 안에 상주시키며 ‘카카오톡 채널’을 활용한 단골 고객 관리와 홍보 노하우를 전수했지만, 수도권과 거리가 먼 지역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사업을 펼치기엔 한계가 있었다.
홍진아 카카오임팩트 매니저는 “튜터들이 철수한 뒤에도 상인들이 교육 내용을 내재화해 톡채널 활용을 이어가게 하려면 어떤 장치가 필요할지 고민하던 중에, 동문공설시장에 실사를 나왔다가 한 청년 상인이 ‘최종 선정된다면 저희가 직접 배워 시니어(중·장년)들께 가르쳐드리고 싶다’고 말한 걸 듣고 사업 방향을 수정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달 총 네 차례에 걸쳐 제주 기반 사회적 경제 기업 ‘일로와제주’로부터 톡채널을 활용법을 배운 청년 상인들은, 이달 5일부터 18일까지 직접 튜터가 돼 시니어 상인들을 ‘일대일 마크’ 하며 돕고 있다.
신수준 일로와제주 매니저가 제주동문공설시장 상인들에게 우리동네 단골시장 프로그램을 설명하고 있다. 카카오 제공
신수준 일로와제주 매니저는 “수산물 가게를 운영하는 한 시니어 상인의 경우 ‘내 정보가 어디로 빠져나가는 것 아니냐’며 맨 첫 순서인 카카오 계정 만들기조차 꺼려 했다. 하지만 사업자등록증 인증부터 톡채널 개설, 홍보물 작성까지 매 단계마다 청년 상인의 도움을 받아 차근차근 다시 시도해 기본 교육과정을 마친 뒤에는 ‘덕분에 의지가 생겨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고 해 청년 튜터들이 모두 뿌듯해했다”고 말했다.
청년 상인들과 시니어 상인들은 “디지털 전환 교육 사업을 매개로 처음 얼굴을 마주하고 앉은 덕에 서로에 대한 오해를 풀 수도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김명곤씨는 “영업일이 들쭉날쭉해선 안 된다고 조언을 해 주고 싶어도 요즘 사람들이 달가워하지 않을까봐 조심스러웠는데 막상 대화해보니 내가 모르던 사정이 있었다”고 말했다. 변승현씨는 “시니어 상인들이 우리를 괜히 견제한다고 여겨 쉽게 다가가지 못했는데, 이렇게 걱정해주고 계신 줄 몰랐다”고 말했다.
청년 상인들은 시니어 상인들의 조언을 받아들여, 기존에는 가게마다 제각각이던 휴무일을 지난달 초부터 매주 화요일로 통일해 운영하기 시작했다. 청년 상인과 시니어 상인이 한 자리에 모여 대화하는 ‘반상회’도 월 2회 운영하며 소통을 이어가기로 했다. 변승현 씨는 “정식 교육 기간 뒤에도 두 번에 한 번은 시니어 상인들 채널을 살피며 계속 돕겠다”고 말했다. 홍진아 매니저는 “향후 사업 참여 시장을 넓혀갈 때 다른 지역에도 동문공설시장식 모델을 도입해 지속성을 높일 수 있을지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정인선 기자
ren@hani.co.kr, 사진 카카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