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사기인 게, 사람들은 100GB에 6만9천원이니까 50GB면 4만원 정도면 출시가 가능하지 않냐고 중간 요금제 내달라 요구한 거였는데, 갑자기 30GB에 6만3천원이라는 하한선을 딱 그어버리고 그 사이를 나누기 시작하는데, 사기나 다름없음. 기본 제공 데이터 다 쓰면 1Mbps속도로 추가 과금 없이 계속 쓰는 기능 넣어둔 게 그 반증임. 중간 요금제 자체가 겨우 몇천원 덜어낸 수준인데, 혹시라도 초과하면 잔뜩 불편한 경험 하게 하고, 그 것 봐? 불편하지?? 그러니까 불평하지 말고 고가요금제 계속 써. 이거임.”
‘kinm****’이란 사용자이름(ID)을 쓰는 누리꾼이 네이버에서 <한겨레> ‘눈이 핑핑 도는 복잡한 ‘5G 요금제’…“값 싸진 게 맞나요?”’(
4월18일치 18면) 기사를 본 뒤 단 글이다. 꽤 많은 누리꾼들이 공감 버튼을 눌러, 순공감순 기준으로 맨 앞에 뜬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월 비상민생경제회의에서
가계통신비 부담 경감 방안을 주문한 뒤 에스케이텔레콤(SKT)과 엘지유플러스(LGU+)가 앞다퉈 ‘5G 중간 요금제’를 내놨다. <한겨레> 기사는 이용자 눈높이로 두 사업자의 새 5세대(5G) 요금제 구조를 분석한 것이었다. 5G 중간 요금제는 케이티(KT)도 준비 중으로, 곧 내놓을 예정이다.
‘중간요금제’란 이름으로 이동통신사들이 내놓고 있는 새 요금제를 ‘사기’라고 평가하는 댓글은 이밖에도 많다. ‘ysja****’는 “눈가리고 아웅이다. SKT나 LGU+나. 땅 파서 장사하는 거 아니라지만, 13GB 6만2천원, 75GB 6만8천원이면 기만 아닌가? 13GB는 3만원, 75GB는 10만원 정도로 하고, 중간은 선형으로 해라. 이공계 눈에는 조삼모사와 눈속임이 너무 심해 욕을 해주고 싶을 정도다”라고 달았다. ‘ssan****’은 “말장난만 하고있는 요금제”라고 적었다.
이통사들이 새 요금제를 내놓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까지 나서서 “가계통신비 부담 완화” 생색을 내면, 보통은 ‘찔끔’ 내지 ‘시늉’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이번에는 윤 대통령의 주문에 따라 과기정통부가 독려해 내놓은 것인데도, 유독 ‘사기’라는 평가가 많다. ‘이공계 눈’(수학적 관점)으로 볼 때 ‘조삼모사’와 ‘눈속임’이 너무 심하다는 등의 표현까지 등장했다. 에스케이텔레콤과 엘지유플러스가 중간 요금제를 내놓을 때마다 보도자료를 내어 통신요금 경감방안이라고 띄워줘온 과기정통부가 머쓱해지게 됐다.
왜 그럴까. 기사에 달린 누리꾼들의 반응과 평가를 잣대로 이통사들의 5G 중간 요금제를 좀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봤다.
먼저 에스케이텔레콤 5G 요금제를 보면, 월 6만9천원짜리의 기본 제공 데이터량은 110GB이고, 6만8천원짜리는 99GB, 6만6천원짜리는 74GB, 6만4천원짜리는 54GB, 6만2천원짜리는 37GB, 5만9천원짜리는 24GB다. 음성통화·문자메시지 무료와 기본 제공 데이터 소진 뒤에는 1Mbps(6만9천원짜리는 5Mbps)로 속도를 제한하는 등 다른 조건은 같다. 월 정액요금을 기본 제공 데이터량으로 나누는 방식으로 ‘기가바이트(GB)당 데이터 이용료’를 뽑아보면, 월 6만9천원짜리 가입자는 기가바이트당 63원, 6만8천원짜리는 69원, 6만6천원짜리는 89원, 6만4천원짜리는 119원, 6만2천원짜리는 168원, 5만9천원짜리는 246원을 무는 꼴이다.
장사 현장에는 ‘에누리’ 내지 ‘덤’이라는 게 있다. 많이 사면 값을 깎아주거나 한움큼 정도를 더 주는 것을 말한다. 이런 관행을 에스케이텔레콤 5G 요금제에 적용하면, 에누리가 물건 값보다 많고, 덤이 기본 판매량보다 많은 꼴이다. 5G 이동통신 서비스를 5만9천원어치 사는 손님에게 주는 기가바이트당 데이터 값이 6만9천원어치 사는 손님에게 주는 값보다 4배 가량 비싸다. 5만9천원짜리의 기가바이트당 데이터 요금(246원)과 6만2천원짜리(168원) 사이에도 46%의 격차가 있다. 5만9천원짜리 요금제 가입자 쪽에서 보면, 6만9천원짜리 가입자한테 에누리나 덤을 준 게 아니라 자신이 차별당했거나 바가지를 썼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월 정액요금 차이 기준 기본 제공 데이터량 격차도 들쑥날쑥이다. 5만9천원짜리와 6만2천원짜리 사이의 월 정액요금 차이는 3천원인데, 기본 제공 데이터량 격차는 13GB다. 6만2천원짜리와 6만4천원짜리 사이의 요금 간격은 2천원이지만 데이터량 격차는 17GB다. 6만4천원짜리와 6만6천원짜리 사이(2천원 차이) 격차는 20GB, 6만6천원짜리와 6만8천원 사이(2천원) 격차는 26GB로 커진다. 엿장수 마음이라고 표현해도 될 정도로 주먹구구식이다.
어떤 기준과 원칙으로 5G 중간요금제를 설계했는지도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이동통신사들은 엘티이(LTE) 요금제부터는 음성통화와 문자메시지 등은 무제한 기본 제공하고, 데이터량을 기준으로 월 정액요금을 책정한다. 이런 잣대대로 월 6만9천원짜리 요금제의 기가바이트당 데이터 요금(63원)을 기준으로 하위 요금제를 설계하면, 54GB짜리는 3만4천원, 37GB짜리는 2만3천원이면 돼야 공정해진다. 다른 요금제와 형평성도 맞지 않다. 월 3만3천원에 데이터 15GB를 기본 제공하는 에스케이텔레콤 엘티이 요금제 ‘티플랜세이브’의 경우, 추가 사용 데이터에 대해 1MB당 22.5원(1GB에 225원)씩의 요금을 추가로 물리고 있다. 6만원대 요금제의 데이터값과 또 차이가 있다.
누리꾼들이 ‘‘이공계 눈’으로 볼 때 조삼모사 내지 눈속임’이라고 하는 이유이다. 엘지유플러스 5G 요금제도 월 정액요금과 기본 제공 데이터량 차이가 약간 있을 뿐 기본 구조는 에스케이텔레콤 요금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한 이동통신사 관계자는 “소비자들은 가장 비싼 요금제를 기준으로 데이터 1GB당 단가를 정해 중·저가 요금제 월 요금을 정해 내려가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설비 투자에 막대한 비용을 들인 기업 입장에서는 투자금 회수가 가능한지를 기준으로 가장 저렴한 요금제 가격을 정한 것이다 보니 이를 기준으로 상위 요금제 가격을 정해 올라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동통신 소비자들은 5G 통신망이 아직도 제구실을 못하고 있는 것도 불만이다. 스마트폰 화면 상단에는 어떤 통신망으로 연결됐는지를 보여주는 표시가 뜨는데, ‘5G’보다 ‘엘티이(LTE)’ 표시가 뜰 때가 더 많다. 한 에스케이텔레콤 가입자는 <한겨레>에 “오늘(19일) 아침 8시를 전후해 서울 여의도 공원을 1시간 가량 산책하며 10분 정도 간격으로 스마트폰 상단을 살펴봤더니 내내 엘티이 표시가 떴다”고 말했다. 5G 스마트폰을 쓰고, 비싼 5G 요금을 내고 있는데, 통신망은 엘티이로 연결되는 것이다. 이용자 쪽에서는 5G 이동통신 서비스가 아닌 엘티이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비싼 5G 요금을 내고 있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엘티이 통신망은 이미 감가상각이 거의 끝나, 장부상으로는 원가가 거의 없다.
소비자·시민단체 쪽은 초기 투자비 때문에 5G 요금을 높게 책정해야 한다면, 감가상각이 거의 끝난 엘티이 요금은 낮춰야 한다고 요구해왔다. 하지만 이동통신 사업자들은 ‘탈통신’을 외치며 요금인하 요구를 거의 묵살해왔다. 과기정통부 장관이 가계통신비 부담 경감을 주문하기 위해 이동통신 사업자 대표 간담회 자리를 만들었는데, 사업자 대표가 간담회 참석하러 가는 길에 기자들을 만나 요금인하 생각이 없다고 선수를 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무리 대통령의 주문이 있었다고 하지만, 이동통신 3사가 앞다퉈 새 요금제를 내놓고 과기정통부가 앞장서 추임새를 넣어, 낯설다는 반응도 많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요금인하 요구가 또 불거질텐데, 이번에 5G 중간요금제를 내놓는 것으로 퉁칠 수 있게 됐다.” 한 이동통신 회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새 요금제에 대해 소비자들이 사기라고 한다고? 소비자들은 늘 그렇잖아. 그러다 말겠지 뭐.” 이어진 설명이다.
김재섭 선임기자
js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