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어버이 날을 앞두고 차를 운전해 어머니를 뵈러가던 길이다. 고속도로서 빠져나갈 지점이 가까워진 것 같아 대시보드 위에 거치해둔 스마트폰의 티맵 길 안내 화면을 슬쩍 슬쩍 보고 있는데, 갑자기 ‘업데이트하시겠습니까?’라고 묻는 돌출(팝업) 창이 떠 길 안내 화면을 가렸다. 순간 당황해 브레이크를 밟으며 속도를 줄였고, 돌출 창을 닫기 위해 손을 뻗어 스마트폰 버튼을 누르느라 잠시지만 전방 주시에 소홀했다. 다행히 사고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식겁한 순간이었다.
업데이트를 권하는 돌출 창이 갑자기 또 뜨지 않을까 불안했다. 결국 다음 휴게소에 들러 티맵을 끄고, 네이버지도 앱을 켜 길 안내를 받았다. 그런데 길 안내 화면이 낯설다. 습관대로 길 안내 화면을 슬쩍 슬쩍 보고 있는데, 왼쪽 하단에서 보여지던 내 차 주행 속도 표시가 없다. 고속도로에서 시속 100㎞ 안팎 속도로 달리던 중이었는데, 내 차 주행 속도 표시를 찾느라 화면을 응시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만큼 전방 주시를 소홀히 한 셈이다.
10일 모바일 길안내(내비) 서비스 사업자들과 주위 운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요즘은 거의 모든 운전자들이 운전 때 내비 도움을 받는다. 길 안내는 물론이고 과속 단속 카메라 설치 지점을 알려주는 기능 등이 유용해서다. 또한 대다수 운전자가 스마트폰에 내비 앱을 한두개 이상 깔아두고 있다. 각 내비 이용자 수를 합치면, 우리나라 전체 인구 수보다 많다. 현재 내비 시장에는 티맵모빌리티, 카카오모빌리티, 네이버, 케이티(KT) 등 주요 빅테크 기업들이 뛰어들어 경쟁 중이다.
시장 개척과 대중화 단계에선 지도 데이터 실시간 업데이트, 최신 도로 상황을 반영한 빠른 길 안내, 과속 단속 카메라 지점의 정확성 등이 핵심 경쟁 포인트였다. 하지만 거의 모든 운전자가 습관처럼 내비를 이용 중인 요즘은 목적지 근처 맛집·여행 정보 안내와 대리운전 호출 기능 등 부가서비스 경쟁도 치열하다. 앱 업데이트 목적 역시 이전에는 지도 데이터와 과속 단속 카메라 위치 정보 등을 최신 상태로 유지하려는 의도가 컸으나, 요즘은 부가서비스 기능을 추가하기 위한 것도 많다. 실제로 귀경 뒤 티맵 앱을 업데이트했는데, 대리운전·킥보드·전기차충전·주차·렌터카와 현재 위치 주변 주요 상가·호텔·식당 안내 등 부가서비스 메뉴들이 줄줄이 추가돼 있다.
모바일 앱 사업자들도 기업이고, 서비스 제공 목적 역시 궁극적으로는 수익 창출에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수익 창출에 도움이 되는 부가서비스를 추가한 뒤, 이용 활성화를 위해 앱을 업데이트하라고 권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뭐라 하기 어렵다. 화면 디자인(UI)를 차별화해 이용자 눈길을 끌려는 노력 역시 칭찬받아야 할 일이다.
다만, 내비는 다른 잣대가 필요하다. 내비는 낯선 도로를 운전할 때 활용되는 서비스다. 모든 게 안전 운전과 직결된다. 내비 보급 초기, ‘내비를 켜고 고속도로를 주행하고 있는데 갑자기 유턴을 하라고 해서 황당했다’는 식의 경험담들이 쏟아진 적이 있었다. 황당했지만, 다들 그냥 웃어넘겼다. 누가 봐도 기술적 오류가 분명하니까.
반면, 이번처럼 내비의 길 안내를 받으며 운전 중인 걸 뻔히 알면서도 앱 업데이트 권유 돌출 창을 띄워 길 안내 화면을 가린 행위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 기술적 오류가 아닌, 이용자를 수익 창출 대상으로 여기는 공급자의 태도가 엿보여서다. “아무리 수익 창출이 급해도 그렇지, 내비 앱을 켜 길 안내를 받고 있었으니 운전 중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텐데, 굳이 그 시점에 앱 업데이트를 권하는 돌출 창을 띄워 운전자를 당황스럽게 만들어야 했을까.” “초보 운전자한테는 커다란 운전 방해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는데, 혹시 사고로 이어졌으면 내비 책임도 있다는 것을 인정할까.” “내비 앱 가운데 길 안내 화면 속 주요 정보 위치 정도는 통일해서 운전자가 내비를 바꿔도 낯설어하지 않게 하면 안될까.” 괘씸한 생각이 앞선다.
내비업체들도 “길 안내 때는 안전 운전이 최우선 목표가 돼야 하고, 그런 측면에서 운전 중에 앱 업데이트 권유 창을 띄운 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으로, 절대 있어서도, 용납돼서도 안된다고 본다”고 입을 모았다. 길 안내 화면 배치를 통일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에도 공감했다. 한 업체 임원은 “충분히 공감한다. 정부나 교통안전공단 같은 곳에서 가이드라인이나 권고사항을 만들어주면 무조건 따르겠다”고 말했다.
디지털을 ‘돼지털’이라고 해도 웃어넘겨주던 시절에는 사업자들이 기술 개발에 집중한 나머지 이용자 눈높이에 소홀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연령대와 상관없이 디지털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으면 일상생활 자체가 불가능하게 된 요즘은, 이용자 눈높이에서 서비스를 설계하고 유지하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용자’ 중에는 환갑 넘은 고령자와 장애인들도 많다.
김재섭 선임기자
js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