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에이아이가 미국 지역 언론사를 대상으로 인공지능 기술을 뉴스룸에 도입하도록 돕는 프로그램을 내놓았다. AJP.
2023년 가장 뜨거운 기술은 인공지능이다. 언론계도 다르지 않다. 챗지피티가 불러온 혁신을 어떻게 뉴스룸에 흡수할 것인가. 저마다 머리를 싸매고 실험을 이어가고 있지만, 여정은 만만찮다. 사내 개발 조직은 잔업을 쳐내는 것만으로도 일손이 턱없이 부족하다. 생성형 인공지능 열풍을 들여다보고 실험하는 언론사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개발자 한 명 없이 플랫폼 혁신을 오롯이 외부에 기대는 언론사가 대다수니까.
언론사에 똬리튼 기술 혁신의 열망을 ‘챗지피티의 아버지’가 다시 불지필 기세다. 챗지피티를 만든 오픈에이아이가 언론사 후원 프로그램을
내놓았다. 우선은 미국 내 지역 언론사를 대상으로 한다. 프로그램 운영은 언론 지원 비영리단체
미국저널리즘프로젝트(AJP)가 맡는다. 오픈에이아이는 500만 달러, 우리돈 650억원을 이 프로젝트에 지원한다. 미국저널리즘프로젝트는 이 기금으로 2년 동안 지역 언론사가 인공지능을 도입·활용할 수 있도록 교육과 조언을 보태고, 기사 생산이나 팩트체크 등을 돕는 기업과 연결시켜주는 역할도 한다. 10여곳 언론사엔 직접 기금도 지원한다. 오픈에이아이는 이 금액과 별개로 500만달러의 에이피아이(API) 크레딧을 지원한다. 이 크레딧을 받은 언론사는 오픈에이아이의 각종 인공지능 에이피아이를 결제·사용할 수 있다. 재정과 기술, 인력난에 시달려온 언론엔 귀가 번쩍 뜨일 소식이다.
어려움에 빠진 지역 언론사를 돕겠다는 오픈에이아이의 선의를 십분 이해하더라도, 이를 받아들이는 언론사의 생각은 저마다 다를 테다. 이참에 인공지능의 도움으로 기사 발행 수를 극적으로 끌어올려 트래픽과 수익을 도모할까. 더 나은 기사 작성을 위한 자료 조사나 분석을 인공지능에 맡길 수도 있겠다. 공개된 자료를 재가공하고, 독자 요청에 자동 응대하고, 기사와 관련된 이미지를 자동 생성하는 방법도 있다. 뭘 해야 할지 몰라도 상관없다. 우리 언론사에 인공지능을 효율적으로 도입하는 방법도 알려줄 테니까.
열쇳말 몇 개만 넣어도 인공지능이 그럴듯한 기사 하나를 뚝딱 만들어내는 시대다. 누군가 이런 시스템을 만들어준다면, 손쉽게 기사를 발행하고픈 욕심이 생긴다. 챗지피티는 불평도, 파업도, 변덕도, 편견도 없는 기자다. 일손이 부족한 동시에 일손이 부담스러운 소규모 언론사엔 챗지피티가 매력 있는 인재로 보인다.
생성형 인공지능을 성급히 도입하는 건 그만큼 위험도 크게 감수하는 일이다. <기즈모도>는 7월부터 인공지능이 작성한 기사를 싣기 시작했지만, 잘못된 정보를 담은 기사로
입길에 올랐다. <시넷>도 인공지능이 작성한 기사의 절반 가까이에서
오류가 드러났다.
생성형 인공지능 사용 지침을 마련한 전세계
언론사 21곳의 사례를 보면 한결같이 조심스러움이 묻어난다. 이들은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하는 게 아니라 대우하는 방향으로 사용하고, 인간의 감독 아래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공지능이 만든 콘텐츠는 반드시 그 사실을 표기하며, 대다수 언론은 저작권 문제가 정리되지 않은 기술의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기술이, 돈이,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언론의 평판과 품격을 유지하기 위해 인공지능에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모습이다.
<에이피(AP)>는 인공지능을 뉴스룸에 두루 활용하는 언론사 가운데 하나다. 이미 10여년 전부터 기업 수익 보고서 분석에 인공지능을 활용했고, 일부 정형화된 기사의 요약도 인공지능에 맡긴다. 실시간 중계되는 행사에 자막을 달고 음성에서 스크립트를 뽑아내는 것도 인공지능이 맡는다. 에이피는 최근
오픈에이아이와 협약을 맺고, 자사 콘텐츠를 오픈에이아이의 인공지능 훈련 데이터로 제공하는 대신 오픈에이아이의 최신 기술을 저널리즘 향상에 활용하기로 했다. 기사 생산을 인공지능 기자에 맡기는 대신 ‘에이피 저널리즘’의 품질을 높이는 데 인공지능을 도구로 활용한다.
인공지능은 저널리즘을 바꾸지 않는다. 사람이 저널리즘을 바꾼다. 눈높이에 차지 않는 언론에 환멸을 느낀 독자들에겐 인공지능이 다시없는 대안으로 보일 수 있지만,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인공지능도 허수아비다. 챗지피티를 보도자료 처리하는 풀타임 무급 기자 정도로 받아들이는 한, 언론사엔 혁신도 저널리즘도 없다.
이희욱 미디어랩부장
asada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