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호출 서비스 시장 놓고 SK플래닛-카카오 격돌
SK플래닛, ‘데이터 무단 사용’ 손해배상소송 제기에
록앤올, 긴급 기자간담회 열어 “대기업의 횡포” 비난
SK플래닛, ‘데이터 무단 사용’ 손해배상소송 제기에
록앤올, 긴급 기자간담회 열어 “대기업의 횡포” 비난
법적 다툼으로까지 간 내비게이션 ‘T맵’과 ‘김기사’의 사정을 취재하러 가는 길에 택시를 탔다. 카카오택시, T맵 택시, 김기사, T맵, 안심 문자…. 택시 안은 SK플래닛과 카카오의 전쟁터였다. 택시 안에 앉아 두 회사의 다툼을 정리해봤다.
어제는 SK플래닛이 T맵의 지도 데이터를 도용당했다며 김기사를 상대로 소송에 나선다고 보도자료를 내더니 오늘은 김기사를 만든 ‘록앤올’이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3일 기자간담회를 위해 오전 10시까지 서울 강남 테헤란로에 있는 록앤롤 사무실에 가야 했다.
스마트폰에서 ‘다음 맵’을 열어 ‘길찾기’를 실행해보니 테헤란로까지 대중 교통으로 가자면 여러 번 갈아타야 했다. 길찾기 하단의 김기사 경로 안내를 보니 예상 택시비가 그리 비싸지 않다. 선택은 택시. 다음 맵을 닫고 카카오택시 애플리케이션을 열어 현재 위치와 목적지를 입력하고 ‘호출하기’를 눌렀다. 좀처럼 택시가 다니지 않는 지역이었는데도 4분만에 서 있는 곳으로 택시가 왔다.
지난 5월 카카오가 626억원에 인수한 록앤올 사무실을 향해 카카오택시가 달렸다. 록앤올이 개발한 내비게이션 김기사는 카카오택시 서비스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다. 김기사와 연동한 덕분에 카카오택시의 승객은 택시 기사가 어디쯤에서 오고 있는지, 예상 소요 시간은 얼마나 되는 지 알 수 있다. 기사는 승객이 타자마자 카카오택시 앱에서 ‘김기사로 길안내’ 버튼만 누르면 길안내를 받는다.
택시 안은 최첨단 정보기술(IT)의 현장이었다. 개인택시를 운전하는 이아무개 기사의 운전석 주위에는 4개의 콜택시 서비스가 돌아가고 있었다. 카카오택시와 티맵택시, 그리고 별도의 단말기를 필요로 하는 기존 콜택시 업체 두 곳이었다. 두 개의 스마트폰에서 김기사와 티맵 애플리케이션이 구동했고 매립형 내비게이션도 켜져 있었다.
“요즘은 뭐 카카오택시죠. 카카오택시 생기고는 다른 건 다 별 소용 없어요. 콜이 워낙 많이 들어오고 수수료도 없고 편리하니까요. 단말기가 따로 있는 콜택시는 수수료가 있고, T맵택시는 켜놓긴 하는데 쓸만한 콜이 별로 안들어와요.” 택시 기사는 카카오택시 자랑을 늘어놨다. 이런 택시 기사들의 호응 아래 카카오택시는 출시 7개월만에 기사 회원 16만명, 누적 호출 수 3000만건을 기록했다.
택시에 매립된 내비게이션이 작동하고 있는데도 택시 기사는 그보다 작은 스마트폰 화면을 흘긋거리며 김기사의 안내를 받았다. “손님을 태우고 카카오택시 기사 버전에만 있는 ‘탑승 완료’ 버튼을 누르면 ‘김기사로 길안내’를 선택할 수 있고 그러면 곧장 손님이 설정해 둔 목적지로 김기사가 안내를 시작해요. 예전에는 택시에 손님 태운 뒤 목적지를 내비게이션에 입력하자면 자꾸 틀려서 출발도 늦고 손님도 답답해하고 그랬는데…. 카카오택시는 김기사로 바로 연결되니까 그럴 걱정이 없죠.”
기사의 말을 듣다가 앞좌석 시트에 붙은 광고물을 보니 SK플래닛이란 이름이 눈에 띈다. ‘택시 안심 서비스’를 홍보하는 내용이다. 스마트폰 ‘설정’에서 ‘NFC(10cm 이내의 거리에서 무선 데이터를 주고받는 통신 기술)’ 기능을 켜고 광고물에 스마트폰을 닿게 하면 지인에게 택시 정보가 담긴 문자를 발송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카카오택시 승객에겐 이 광고가 필요없다. 탑승 직후 카카오택시 앱 안에서 카카오톡으로 지인에게 택시 정보를 보내도록 안심 문자 알림창이 뜨기 때문이다.
카카오는 KT와 업무협약을 맺어 택시 기사들이 카카오택시 애플리케이션을 하루종일 켜놓아도 데이터 이용료를 내지 않도록 지원하고 있다. 때문에 카카오택시와 T맵 택시를 둘 다 이용하는 이 택시 기사는 두 통신사의 스마트폰을 모두 갖고 있었다. KT 가입 스마트폰은 김기사와 카카오택시를, SK텔레콤 가입 스마트폰으로는 T맵과 T맵택시를 사용했다.
이밖에도 카카오와 SK플래닛은 간편 결제 서비스인 카카오페이와 시럽페이, 모바일 상품권인 카카오톡 선물하기와 기프티콘으로 맞붙고 있다. 록앤올의 기자간담회가 열린 3일 운행을 시작한 고급 택시 서비스 ‘카카오택시 블랙’은 카카오페이를 통해서만 결제가 가능하다. 아직까지 내비게이션 이용자 수는 SK플래닛이 앞서고 있지만 택시와 모바일 상품권에서는 카카오가 앞서고 있다.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박종환 록앤올 공동대표는 SK플래닛의 소송을 ‘대기업의 횡포’로 규정했다. 박 대표는 “T맵 전자지도를 무단 도용하지 않았다. 김기사가 급속도로 성장하니까 견제하려는 목적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2011년 T맵의 지도정보를 바탕으로 1분마다 교통 상황을 반영해 가장 빠른 길을 안내하는 김기사를 개발한 그는 “사용자가 늘어난 뒤 SK플래닛이 지도 데이터 공급 계약을 끊겠다고 하거나 계약금을 올려 마음고생을 해왔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SK플래닛이 내놓은 ‘도용 증거 자료’에 대해서는 명확한 대응을 하지 못했다. SK플래닛은 계약기간과 유예기간까지 만료된 9월 이후에도 김기사를 실행하면 T맵이 데이터 도용을 막기 위해 지명을 슬쩍 바꾸는 방식으로 곳곳에 심어둔 ‘디지털 워터마크’가 다수 발견돼 법원에 증거로 제출했다고 밝혔다. 박 대표는 증거 자료가 수집된 시점이 계약 유예기간 종료 이전일 수 있고 지명 표기 오타가 워터마크라는 주장은 믿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는 또 “지명 오타는 수작업 과정에서 우연히 발생한 것일 수 있으며 구글, 네이버, 다음 등 공개된 지도 서비스를 참고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일 수도 있다”고 해명했다.
박 대표는 “세상에 완벽한 지도가 있겠냐”며 “일반적인 내비게이션 서비스 업체들이 다 공개된 지도 자료를 활용해 시스템을 구축한다”고 밝혔다.
다른 회사의 지도를 참고한 사실에 대해 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 SK플래닛이 얼마나 많은 증거 자료를 확보했는지에 따라 소송의 향방이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SK플래닛은 록앤올의 기자간담회가 끝나기도 전에 반박 보도자료를 내며 대응에 나섰다. ‘2015년 11월3일 오전 10시 현재 김기사의 T맵 전자지도 무단 사용 사례’를 추가로 제시하며 “SK플래닛은 그간의 벤처 지원 노력들이 폄하되고 지식재산권 보호 요청이 대기업의 횡포로 왜곡되는 것에 대해 대단히 유감”이라고 밝혔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또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길. 택시 안에는 역시 카카오택시와 T맵택시가 돌아가고 있다. 별도의 내비게이션 기기는 목적지 없이 켜져만 있고 김기사가 길을 안내했다. 택시 안은 빠르게 변해왔고,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한 경쟁은 갈수록 더 치열해지고 있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SK플래닛이 ‘김기사’의 무단 도용 증거로 내놓은 ‘워터마크(고유 서명)’ 노출 화면. SK플래닛 쪽은 “T맵 지도 정보의 무단 도용을 막기 위해 지명인 ‘황룡’을 ‘황룔’로, 나주를 ‘나두’로 일부러 오기하는 방식으로 이른바 ‘워터마크’를 설정해두었는데, 카카오 김기사 서비스에서 이런 내용이 고스란히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SK플래닛은 카카오 김기사 쪽이 공개적으로 지적받은 워터마크 부분을 모두 삭제했지만 이밖에도 무단 도용 증거를 여러 개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진 SK플래닛 제공.
카카오택시 블랙. 사진 카카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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