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1일 오전 서울 광화문 거리에서 참여연대 활동가와 회원 등이 5G 요금 인하를 촉구하는 출근길 동시다발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서비스 초기라서 그렇다. 이동통신이란 게 원래 그렇다.” 이렇게만 해도 먹혔다. 그래도 계속 불만을 제기하면 ‘불량 가입자’로 간주해 대응했다. 디지털 방식 첫 이동전화 서비스인 시디엠에이(CDMA) 상용화 때도 그랬고, 엘티이(LTE) 때도 그랬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당시는 정보통신부)와 언론이 앞장서 ‘총대’를 메주기도 했다.
“퇴근 때 사무실을 나가면서 왜 쓸데없이 전화를 걸어대는지 모르겠어요. 이동전화 쓴다고 자랑하는 것도 아니고. 퇴근 때 전화 좀 하지 말라고 기사 좀 써주세요.” 1990년대 중반, 한국이동통신(현 에스케이텔레콤) 사장이 기자들을 만나면 우스개 소리로 자주 하던 말이다. 통신망 용량이 부족해 통화량을 수용하지 못하면 설비투자를 늘려 통신망 성능을 높이는 게 맞지만, 거꾸로 많이 쓴다고 호통을 쳤다. 그때는 그래도 통했다.
5세대 이동통신(5G) 서비스 시대에는 이게 통하지 않는 것 같다. 곳곳에서 5G 품질에 대한 불만이 쏟아진다. “반쪽짜리도 안되는 서비스를 하면서 비싼 요금을 받는 게 말이 되냐”, “불완전 판매 아니냐”, “누구를 위한 세계 최초 상용화냐” 등이 난무한다. 이동통신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와 5G 관련기사 댓글난뿐만 아니라 언론 보도에도 그대로 인용되고 있다.
과기정통부와 이통사들 모두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이전 같으면, 이른바 ‘업계지’ 기자들을 불러 ‘언론 플레이’에 나섰겠지만, 이번에는 역풍을 더 신경쓰는 모양새다. “요즘은 그런 방법 못써요. 큰일 나요” 한 이통사 홍보팀장 말이다.
과거에는 통했는데, 이번에는 왜 안통할까.
이용자들이 달라졌다. 우선 “처음에는 원래 그렇다”거나 “처음이라서 그렇다”는 주장이 안 통한다. 완성되지 않은 것을 내놓고 왜 비싼 요금까지 받냐고 들이댄다. “국가 이익을 위해 참아달라”는 주장도 안먹힌다. 이른바 ‘Z세대’가 가세해서일까. 과기정통부와 이통사 쪽에서 보면 ‘당돌하게’ 불만을 제기하고, 자신들의 논리를 일축한다. 5G 관련 기사 댓글에선 요즘 말 “헐~ 뭐래!”를 흔히 볼 수 있다. 재밌는 사실은, 이동통신망 자체가 이용자들이 불만을 제기하는 물리적 토대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언론의 태도도 예전 같지 않다. 예전에는, 특히 ‘업계지’를 표방하는 쪽은 무조건 이통사 편을 들었는데, 이번에는 부실한 서비스를 제공하며 비싼 요금을 받는다는 지적에 동참하는 모습이 뚜렷하다.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던 “국가 산업의 발전을 위해 이용자들이 참아줄 필요가 있다”는 논조도 이번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시민단체들이 5G가 상용화되기도 전부터 요금과 서비스 품질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것도 주목된다. 이통사 쪽에서는 무척 낯설 수 있다.
반면, 과기정통부와 이통사들은 이전과 비교해 크게 달라진 점이 보이지 않는다. ‘세계 최초’ 기록에 섣불리 상용화를 단행하고, 눈 하나 깜짝 안하고 비싼 요금을 책정하는 게 그렇다. “처음에는 다 그렇다”며 되레 큰소리 치고, 말이 막히면 “저쪽 문제이니 저쪽에 가서 물어보라”며 이통사·정부·제조사가 남탓만 하는 것이 그렇다.
‘대리점 리베이트’(유치 수수료)와 ‘단말기 지원금’ 등을 높여 5G 서비스가 안 되는 지역에 살거나 엘티이(LTE) 서비스만으로두 충분한 사람들까지 가입자로 유치하고, 5G 서비스의 한계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가입자를 유치하는 ‘불완전 판매’ 행위를 계속하고 있는 것도 엘티이 때와 똑같다. 이통사 쪽에서는 기존 가입자 한 명을 5G 가입자로 전환시킬 때마다 월 몇만원, 1년이면 수십만원의 추가 매출이 생긴다. 이미 이동통신 3사가 ‘집토끼’(기존 가입자)를 전환 가입시켜 만든 5G 가입자만도 15만명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급기야 과기정통부 장관은 공식 석상에서 이통사 최고경영자들에게 5G 품질을 서둘러 개선하고 요금제도 손봐달라고 주문하고, 이통사 최고경영자가 임직원들에게 “5G 가입자들의 품질·요금 불만에 대해 깊이 고민하라”고 지시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를 전하는 기사에는 ‘헐리우드 액션’이란 댓글까지 붙었다. 진정성이 없다는 댓글은 다음과 같다.
“이통사들이 말만 그럴듯하게 할 뿐 아직 올해 설비투자(케펙스) 가이던스조차 못 정하고 있다. 지난해에 견줘 최소 1조~2조원 이상 늘린 가이던스를 서둘러 내놔야 한다.”
“골프장도 일부 코스가 공사중일 때는 요금을 깎아준다. 5G도 서비스 반경이나 품질이 일정 수준을 넘을 때까지는 요금을 대폭 할인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 처음이니까. 국가 산업을 위해 참으라고 하는데, 지금이 개발독재 시절도 아니고.”
그동안 한국은 정보통신 강국을 자처해왔다. 하지만 산업 육성과 사업자 이익이 앞세워지면서 이용자 권익은 뒤로 돌려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용자들은 산업·사업자를 위해 늘 참고 이용할 것을 사실상 강요당해왔고, ‘호갱’(호구+고객을 합친 말)이란 말까지 등장했다. 5G 이용자들이 서비스 품질과 요금에 불만을 제기하는 모습을 두고, 비로소 우리나라의 이용자들의 의식도 정보통신 강국 수준으로 높아지는 것 같다는 분석이 나온다. 덩달아 “우리나라 5G의 앞날이 밝아 보인다”는 전망도.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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