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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해 달라. (이후) 데이터를 의도적으로 유출하거나 해킹 방지 노력을 게을리하는 기업에는 영업이익의 몇배 수준의 강력한 범칙금을 부과하면 된다.”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주요 인터넷기업 대표들과 간담회에서 여민수 카카오 공동대표가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한테 한 말이다. 인터넷기업 대표가 주무 부처 장관에게 빅데이터 기법 활용을 허용해 달라고 ‘건의’하는 방식이었지만, 업계에선 이른바 ‘금기’를 건드렸다는 점에서 ‘작심 발언’이라는 풀이도 나온다. 한 업체 임원은 “정부 행태가 오죽 답답했으면 그런 말까지 했겠느냐”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가 앞세우는 ‘규제혁신’과 ‘규제 샌드박스’ 역시 속을 들여다보면 이전 정부가 강조해온 ‘규제 완화’나 ‘규제개선’ 구호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한마디로 사전규제를 푸는 ‘당근’으로 기업들의 투자를 끌어내 성장동력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최 장관도 이날 간담회 들머리에서 “많이 투자하고 연구개발을 해서 훌륭한 글로벌기업 되겠다는 말 듣고 싶다. 최소한의 규제, 네거티브 중심의 우선 허용, 사후규제, 민간 업계의 자율규제, 국내외 기업 간 동등규제 등과 같은 규제혁신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고 과기정통부는 전했다. 이날 간담회는 비공개로 이뤄졌다.

규제혁신이란 기업이 새로운 사업을 벌이거나 서비스에 나설 때 환경·정보인권과 경쟁 질서 및 이용자 권익 등에 미칠 영향을 미리 심사·심의·측정받게 하던 것을 없애주는 것이다. 물론 효용성도 없이 관행적으로 이뤄지고 있거나 규제기관의 남용 등으로 기업의 신사업 추진 발목을 잡는 것들은 과감히 찾아 없애거나 정비하는 게 맞다. 개발 독재 시절을 거치는 과정에서 적은 자원과 시장을 특정 기업에 몰아줘 효용성을 극대화하려다 보니 환경·인권과 상관없이 관행적으로 만들어져 적용돼온 규제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기득권 보호에 치중돼 불공정 시비를 낳고 있는 것들도 많다.

반면 ‘자본’의 무자비한 자기 증식 욕구로부터 ‘사람’과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을 지키기 위해, 또한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안전장치로 만들어졌거나 준비되고 있는 규제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오히려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개인정보 보호, 정보 접근권 보장, 표현의 자유 보장 등으로 대표되는 정보인권 보호가 대표적이다. 규제혁신도 옥석을 가려 해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 사람 쪽에서 보면 절대 풀면 안될 것일수록 자본 쪽에서는 꼭 없애야 할 것들이 많다. 개인정보 보호 규제가 대표적이다. 기업들은 개인정보를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원유’로 꼽아, 빅데이터 기법을 통해 활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한다. 규제를 풀어 맘껏 이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정부에 조른다. 서둘러 풀어주지 않으면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신성장 기회를 잃을 수 있다고 정부에 으름장을 놓기까지 한다. 정부가 끌려가는 모습도 보인다.

문재인 정부에 ‘기대’를 가져온 사람들 쪽에서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규제는 사전규제와 사후규제로 나눠볼 수 있다. 사후규제란 사전규제를 없애거나 낮춰주는 대신, 이를 악용해 사람들의 권익을 고의로 침해하거나 침해 방지 노력을 게을리할 때는 책임을 묻는 것이다. 비용절감을 통한 이익 극대화 목적으로 이를 게을리한 경우도 여기에 포함된다. 미필적 고의다.

사전규제를 풀거나 낮추는 시도를 할 때는 그에 상응해 사후규제가 강화돼야 한다. 사후규제는 악용한 기업에 대한 처벌 강화가 핵심이다. 징벌적 과징금·손해배상제 및 집단소송제 도입과 최고경영자의 처벌 강화 등이다. 예를 들어, 개인정보 활용 길을 터주려면, 무단 내지 동의받은 범위를 넘어 수집·활용·제공한 게 드러난 기업의 최고경영자는 감옥에 보내고, 매출액 내지 영업이익의 수십 배에 달하는 과징금과 손해배상이 이뤄질 수 있게 해야 한다.

하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도 그랬고 문재인 정부에서도 사전규제를 없애자는 주장만 난무할 뿐, 그에 맞춰 사후규제를 강화하려는 노력은 찾아보기 어렵다. 과징금·과태료의 상·하한선을 조정하고 기업 형사처벌 조항이 추가되는 경우도 있지만, 이 정도로는 안전장치가 될 수 없다. 그나마도 실제 적용 때는 기업경영을 어렵게 할 수 있다, 이미 벌어진 일 어쩌겠느냐는 이유로 감경하거나 면제하는 경우도 많다. “사후규제를 강화하면 사전규제 혁신 효과(기업 설득)가 반감되거나 논란을 부를 수 있다”는 이유를 댄다.

문제는 ‘촛불’ 경험을 축적한 우리나라 국민과 누리꾼들이 이를 용납할 것이냐다. 정부가 꼽고 있는 규제혁신 대상의 상당 부분이 새로운 산업에 적용되는 과정에서 논란이 일고 있거나, 완전히 새로운 영역이거나, 산업간 경계가 허물어지는 쪽에 존재한다. 이 때문에 부동산 규제 완화 등 누구나 피부로 느끼며 민감해하는 것들을 빼고는, 전문가들은 물론이고 언론과 해당 상임위 소속 국회의원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들이 많다. 이른바 우리 자신은 물론이고 아들과 손자 세대의 삶의 질을 크게 좌우할 것으로 보이는 ‘데이터 3법’이 별로 민감하지 않은 법으로 간주돼 국회에서 깊이 있는 토론도 없이 합의 처리 대상으로 꼽힌 게 대표적이다.

정보인권 보호 활동을 펴는 시민·사회단체들은 “개인정보 보호 규제는 절대 타협 대상이 아니다”라고 못 박는다. 어떤 전문가들은 “기업이 사람들의 개인정보를 쉽게 수집·이용·제공할 수 있게 열어주는 게 인류의 멸망을 부를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한 미래 전문가는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페이스북과 구글이 인류를 멸망을 부를 수 있다. 이들이 사람들의 개인정보를 활용해 지금 인류의 종말을 부를 수 있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여민수 대표의 발언은 기업의 빅데이터 기법 활용을 빨리 허용해 달라는 요구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하지만 사후규제 강화, 그중에서도 ‘영업이익의 몇배 수준의 범칙금’ 부분은 규제혁신을 주도하는 정부 관계자들이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 아닐까 싶다. 카카오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기업의 빅데이터 기법 활용 길을 트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개인정보 보호 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걸 강조한 게 아니겠냐. 사후규제 강화가 병행되지 않는 사전규제 완화는 있을 수 없다. 이익 추구가 우선인 기업에 선의를 기대할 수만은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때부터 ‘사람이 먼저다’를 강조해왔다. 맥락이 맞으려면 규제혁신과 더불어 사후규제 강화 방안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사실 여 대표의 발언은 최기영 장관의 발언에 포함돼야 했다. 성장도 좋지만, 그렇다고 자식의 미래를 자본에 갖다 바칠 수는 없는 것 아닐까. 하지만 이날 최 장관의 이 날 발언은 “규제를 적극 풀겠다”, “데이터 3법이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에서 멈췄다.

김재섭 선임기자 js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