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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IT

코로나19 대응 잘해 올린 국격을 깎아먹지 않으려면

등록 2020-04-21 11:46수정 2020-04-21 15:16

Weconomy | 김재섭의 뒤집어보기

마무리 때 “정보인권 훼손 복구 잘해야”
이동통신 위치정보·신용카드 사용내역
활용 후 말끔한 삭제·남용 여지 점검하고
‘손목밴드 채우기’ 발상은 깔끔히 봉인해야
유럽연합 등 “비민주적 행태” 뒷담화
코로나19 마무리 때 투명하게 정리 필요
그래픽_고윤결
그래픽_고윤결

<한겨레> 4월 16일치 21면 ‘네이버 “댓글 실명제 계속 시행”…표현의 자유 위축’ 기사에는 네이버 포털에서만 21일 현재까지 850여개의 댓글이 달렸다. 네이버가 댓글 작성자들을분석해놓은 것을 보면, 성별로는 남·여가 각각 65%와 35%이고, 나이별로는 40대 작성자가 37%로 가장 많다. 그다음으로는 30대 36%, 20대와 50대 각각 11%, 60대 이상 3%, 10대 1% 순이다.

댓글 작성자 열 명 가운데 일곱 명 이상이 30~40대라는 점과 함께 댓글 내용도 눈길을 끈다. 굳이 수치로 표현하면, 99.9%가 네이버의 댓글 실명제 유지 결정을 지지·응원·찬성한다고 밝혔다. “댓글 작성자의 국적도 표시해야 한다”, “사용자 이름(ID) 대신 실명을 표시해야 한다” 등 좀 더 ‘과격한’ 주문을 하는 글도 상당수다. 네이버의 포털 지배력으로 볼 때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고 짚은 부분에 대해서는 “표현의 자유는 자기가 쓴 글에 책임을 질 수 있을 때 쓰는 용어입니다”, “이름 석 자 걸고 못할 소리는 애초에 하지를 말아야 한다”라고 반박한다.

카카오의 다음 포털에선 이 기사에 댓글 4개가 달렸는데, 역시 댓글 실명제를 환영하는 글 일변도다. 표현의 자유 위축을 우려하는 글은 없다.

댓글 실명제는 댓글을 쓰기 전 본인 확인 절차를 거치게 하는 것이다. 익명 뒤에 숨어 욕이나 가짜뉴스를 전파하는 행위를 줄이는 수단으로 꼽혀왔고, 네이버와 카카오 등 포털 사업자들이 공직선거법에 따라 지난 총선 기간 운용해 일부 효과를 보기도 했다. 참고로, 네이버는 사용자 이름과 자연인 본인의 일치 여부를 국가기관을 통해 확인하는 것일 뿐, 실명이 아닌 사용자 이름(ID)으로 댓글을 쓰게 하고, 그나마 사용자 이름의 절반은 가린다는 이유로 댓글 실명제 대신 ‘본인 확인’ 용어를 고집한다.

그동안 댓글의 폐해가 너무 컸다. 댓글을 통해 여론도 조작됐다. ‘드루킹’ 사건이 대표적이다. 또한 가짜뉴스와 명예훼손 글이 난무했다. 이에 고통받던 연예인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례도 있다. 주제와 상관없이 욕을 쏟아내는 이들도 많았다. 이 때문에 댓글 무용론·폐지론이 불거지기도 했다. 댓글 실명제를 지지·응원·찬성하는 게 당연할 수 있다.

다만, 850여개에 이르는 댓글 가운데 99.9%의 내용이 ‘같은 쪽’이라는 게 좀 이상하다. 이렇게 여론이 일방적인 사안이라면 댓글이 850여개나 달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누리꾼들은 실명제란 말을 ‘인터넷 실명제’를 통해 처음 접했다. 인터넷 실명제는 2007년 ‘정보통신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이하 망법)을 통해 도입됐다가 시민·사회단체들과 누리꾼들의 반발과 위헌 판결을 받아 2012년 망법에서는 폐지됐다.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게 판결 취지였다. 이후에는 공직선거법(82조 6항)에서만 살아남아 선거 기간에만 시행됐는데, 보수 정당·언론을 중심으로 망법에 이를 다시 담아야 한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2018년에도 장제원 자유한국당 의원이 망법 개정을 통해 ‘인터넷 댓글 실명제’를 도입하는 법안을 발의했고, 진보네트워크센터와 오픈넷 등 시민단체들은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 취지에 어긋나고, 표현의 자유와 개인정보 자기 결정권 등을 침해할 수 있다”고 반발했다.

일반적으로 여론도 서서히 쪼그라드는 과정을 거쳐 소멸한다. 댓글 실명제에 대한 반대·반발 여론 역시 지지·찬성 여론에 밀려났다고 해도 차츰 줄어들다 소멸하는 게 정상적이다. 하지만 댓글 실명제에 대한 반대·반발과 표현의 자유 위축 우려 여론은 이런 과정 없이 꼬리 자른 것처럼 사라진 모습이다. 시민단체 관계자도 “네이버의 시장지배력으로 볼 때 표현의 자유 수위에 악영향이 예상된다”면서, “하지만 네이버가 개인정보 정책과 포털 운용 철학에 따라 도입하겠다고 하면 반대할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더욱이 네이버는 21대 국회의원 선거 운동이 시작된 2일 0시부터 본인 확인을 거쳐야 댓글 작성과 공감 표시를 할 수 있게 하면서 “공직선거법에 따른 것이다. 선거가 끝나는 15일 오후 6시 원래(본인 확인 절차 없이도 댓글 작성과 공감 표시를 할 수 있는) 상태로 되돌릴 것”이라고 밝혔다가, 선거 마감 이틀 전 갑자기 “총선 뒤에도 본인 확인제를 유지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카카오는 애초 밝혔던 대로 투표 마감 직후 원래 상태로 되돌렸다.

네이버는 갑작스러운 정책 변경의 배경과 관련해 “지난 13일 기준으로 이용자의 96%가 본인 확인을 받았다. 유지해도 대상이 남은 4% 뿐이어서 역효과가 크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 법과 상관없는 결정”이라고 밝혔다. 네이버 관계자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책임감을 갖고 댓글을 쓰도록 해야 한다’는 사회 요구를 외면할 수 없어 본인 확인 절차를 유지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헌법은 표현의 자유를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로 본다. 여기에는 익명 표현도 포함된다. 댓글 실명제는 구조상 표현의 자유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네이버는 포털 시장의 지배적 사업자다. 네이버의 댓글 실명제 유지 결정이 일방적으로 지지·응원·환영을 받는 것과 어울리지 않는다.

‘선례’로 활용될 수도 있다. 코로나19 유행 사태로 시민단체들이 그동안 정보인권 보호를 위해 금이야 옥이야 했던 것들 가운데 상당수가 바람 앞의 등불 처지로 몰렸다. 코로나19 확진자의 위치정보와 신용카드 사용 명세 등 개인정보가 마구잡이로 활용됐다. 확진자의 동선과 만남 상대를 파악해 추가 감염을 막는다는 취지가 있고 법이 정한 절차를 거쳤다고 하지만, 엄격한 절차가 운영됐는지, 사후 관리는 제대로 했는지 등이 명쾌하지 않다. 실제로 동선 공개 범위를 놓고 사생활 침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자가 격리자 관리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 손목에 위치확인용 밴드를 채우는 ‘초유의 발상’이 동원되기도 했다. 이 발상은 여전히 ‘검토 대상’에 올라 있다.

모두 코로나19 대유행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말도 꺼내지 못할 사안들이다. 하지만 지금은 효과·효율을 이유로 “필요하면 활용할 수도 있지” 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앞선 정보통신기술(ICT)을 성공적으로 활용한 사례라고 치켜세워지기까지 한다. 손목밴드 채우기 반대 성명을 낸 시민단체 활동가는 “코로나19에 버금가는 사태가 또 발생하면, 모든 국민과 입국자에게 체온을 측정해 송신하는 기능을 가진 칩을 박자는 말도 나올 수 있다”는 ‘농담’을 건넸다.

작가 유발 하라리도 ‘코로나 바이러스 이후의 세계’란 제목으로 <파이낸셜타임즈>에 기고한 글에 비슷한 ‘상상’을 했다. 그는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시민들은 전체주의적인 감시체제와 시민적 역량강화 사이에서의 선택을 강요받게 될 것”이라 전망했다. 그의 경고를 들어보자. “모든 시민에게 생체정보를 감시하는 팔찌를 착용하도록 강제하는 정부가 있다고 치자. 이렇게 수집한 정보는 다시 정부의 알고리즘을 통해 다시 처리된다. 알고리즘은 당신이 알아차리기도 전에 당신이 아프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당신에 어디에 있었는지, 누구를 만났는지도 알고 있다. 그러한 알고리즘은 전염병의 확산을 획기적으로 막을 수 있을 것이며, 어쩌면 아예 확산조차 하지 못하도록 할 수 있다. 멋지지 않은가? 물론 가장 뻔한 단점은 이러한 방식이 아주 무서운 감시체제를 정당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진자가 제로로 감소하여도, 데이터 수집에 굶주려 있는 정부들은 2차 확산을 막기 위해 생체감시가 필요하다고, 또는 에볼라를 막기 위해서, 또는 그 이유가 무엇이든지 간에 어떤 이유를 만들어내서 계속 주장할 지도 모른다. 최근 몇년 동안 우리의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전쟁이 지속되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이 전쟁의 티핑포인트가 될지도 모른다. 사람들에게 건강과 개인정보 중 양자택일하라고 한다면, 대부분 건강을 택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내다봤다.

정부와 전문가들의 노력, 의료진의 헌신,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에 힘입어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코로나19 사태가 빠르게 안정화하는 모습이다. 머지 않아 종료가 선언될 수 있다는 기대도 가져본다. 그런 날이 왔을 때, 감염 확산을 막는 게 우선이라 어쩔 수 없었던 정보인권 훼손 부분을 원상으로 복구하는 노력을 함께해주길 기대한다. 활용한 확진자 개인정보와 동선 정보는 깔끔히 삭제했는지, 다른 기관이 악용할 길을 남겨두지는 않았는지 등을 점검하고, 손목밴드 채우기 발상 등은 다시 꺼내 들지 못하도록 깊이 묻어주길 기대한다.

우리나라가 코로나19 사태 대응 차원에서 확진자의 이동통신 위치정보를 마구잡이로 활용한 것을 두고, 유럽연합 등에서는 “인권 침해이고, 비민주적인 행태”라고 뒷담화를 한다고 한다. 정보인권 관련 사안의 뒷마무리가 깔끔해야 하는 이유가 될 수도 있다. 이를 소홀히 하면, 코로나19 대유행 사태에 잘 대응해 높인 국격을 깎아 먹는 결과를 부를 수도 있다.

김재섭 선임기자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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