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을 을지로 SKT 사옥(T타워) 모습. SKT 제공
모르는 누군가가 나와 아이의 개인정보를 활용해 아이 엄마를 사칭하며 아이 이름으로 휴대전화 개통 신청을 했다면? 더군다나 내 이름으로 된 가입신청서에 버젓이 가짜 서명까지 돼 있다면? 1위 이동통신 사업자 에스케이텔레콤(SKT)이 고객을 상대로 실제로 벌인 일이다.
14일 에스케이텔레콤 관계자들과 피해자의 말을 종합하면, 어린 자녀를 둔 아빠(피해자가 가족 이름을 모두 숨겨줄 것을 요청해 상황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가족관계 용어를 사용)는 며칠 전 알뜰폰 사업자(직원)로부터 “엄마가 자녀 이름으로 휴대전화 개통을 신청한 것과 관련해 확인할 게 있다”며 아이 엄마를 바꿔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건 직원은 “엄마와 통화가 안돼, 또다른 법적대리인 연락처로 전화를 했다”고 말했다. “내가 아이 아빠인데, 아이 이름으로 알뜰폰 업체에 휴대전화 개통 신청을 한 사실이 없다”고 하자, 가입신청서에 적혀 있는 전화번호를 불러주며 “엄마 휴대전화 번호가 아니냐”고 되물었다. 아이 엄마의 번호였다.
이후 아이 엄마가 나서서 자초지종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에스케이텔레콤 직원이 아이 엄마를 사칭해 아이 이름으로 알뜰폰 업체에 휴대전화 개통 신청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팩스로 보낸 가입신청서에는 엄마의 가짜 서명까지 들어 있었다. <한겨레>에 그동안 벌어진 사실을 제보한 아이 엄마는 “1위 이통사인 에스케이텔레콤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냐. 명백한 개인정보 도용이자 사문서 위조다”라며 “이런 일이 또 벌어져 나나 우리 가족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당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변호사를 선임해 형사고발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사건의 배경엔 에스케이텔레콤의 개인정보 관리 부실과 문제의식 부족이 놓여 있다. 앞서 엄마는 2주 전쯤 에스케이텔레콤 본사 티(T)다이렉트샵 고객센터에 아이 휴대전화를 번호이동시켜 달라고 신청한 바 있다. 이후 에스케이텔레콤이 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전산 입력을 잘못하는 실수를 저질렀는데, 이를 바로잡으려면 앞서 개통한 것을 취소한 뒤 다시 개통하는 절차를 거쳐야 했다. 문제는 재개통을 위해서는 앞 개통으로 해지된 아이 이름의 이전 통신사 휴대전화를 되살려야 한다는 점이다. 원칙대로라면 에스케이텔레콤이 엄마에게 전산 입력 실수 사실을 설명하고, 아이 이름의 알뜰폰 이동전화를 되살린 뒤 다시 번호이동을 해야 하니 협조해달라고 요청해야 했다.
하지만 에스케이텔레콤은 갖고 있던 엄마와 아이 개인정보를 이용해 알뜰폰 업체에 해지된 아이 이름 휴대전화 복구를 직접 신청했고, 가입신청서를 위조해 팩스로 보내기까지 했다. 고객 개인정보의 중요성에 대한 문제의식이 얼마나 낮은 수준인지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아이 엄마는 “에스케이텔레콤은 나와 아이의 개인정보를 다 갖고 있다. 바꿔 말하면, 에스케이텔레콤이 고객 개인정보를 이용해 당사자도 모르게 수십, 수백개의 이동전화를 개통했다가 해지했다가를 마음대로 반복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되는 거 아니냐. 무섭다”고 말했다.
에스케이텔레콤 측은 직원의 개인적 실수 탓으로만 돌렸다. 이 업체 관계자는 “일 처리를 비정상적으로 한 게 맞다. 해당 직원을 업무에서 배제시킨 뒤 징계 절차를 밟고 있다. 고객에게 사과하고 재방 방지를 약속했다”고 밝혔다.
김재섭 선임기자
js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