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가 ‘이용자 권익 보호’를 명분으로 도입한 통신분쟁조정위원회(이하 분쟁조정위) 제도가 제대로 효과를 내지 못한다고 평가되고 있는 가운데, 방통위가 제도 설계와 운영을 통신사 이익단체에 맡긴 것으로 드러났다. 처음부터 제도가 부실 설계된 탓에 도입 효과가 반감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방통위가 국회 과학기술방송정보통신위원회 조정식 의원(더불어민주당)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 가운데 분쟁조정위 가동 효과를 떨어트리는 요인으로 꼽히는 ‘조정결과 비공개 원칙’ 조항(제40조의 10)은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KAIT·카이트)의 제안에 따라 만들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카이트는 에스케이텔레콤(SKT)·케이티(KT)·엘지유플러스(LGU+) 같은 통신사와 삼성전자·엘지(LG)전자 등 단말기 제조업체들이 꾸린 이익단체이다. 현재 박정호 에스케이텔레콤 사장이 회장을, 양환정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정보통신정책실장이 상근부회장을 맡고 있다.
방통위는 2019년 6월 분쟁조정위 개설에 앞서 2018년 4월 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 개정안 설계 용역을 3천만원에 카이트에 맡겼다. 그해 12월 카이트는 ‘통신이용자 보호를 위한 분쟁조정위 설립설계 연구용역’ 보고서를 방통위에 제출하면서 ‘조정결과 비공개’ 안을 제시했고, 이는 시행령에 그대로 담겨 지금도 시행되고 있다.
이어 방통위는 2019년 4월 분쟁조정위의 효율적 운영을 위한 운영세칙 개정안 설계 용역을 다시 5천만원에 발주했는데, 이번에도 카이트가 수주했다. 카이트는 ‘통신분쟁조정제도 활성화를 위한 시행방안 연구’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분쟁조정위의 결정을 근거로 특정 정책의 수립이나 폐지의 목소리가 가해질 수 있고, 특히 통신 분쟁은 유형이 다양할 뿐만 아니라 그 수도 많다는 점에서 사업자 또는 고용된 자의 과실을 전체 사업자 또는 해당 사업자의 과실로 간주할 수 없다고 할 것인데, 조정 결과가 공개될 경우 사업자의 과실만 두드러질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분쟁조정위 운영세칙 개정 때 ‘회의도 비공개로 해야 한다’는 조항을 추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가 2019년 방송통신위원회에 제출한 ‘통신분쟁조정제도 활성화를 위한 시행방안 연구’ 용역보고서 발췌
카이트가 분쟁조정위의 밑그림을 그린 사실은 이번에 처음 공개됐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그동안 분쟁조정위 조정결과를 공표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통신 이용자들이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어느 정도의 피해보상을 받을 수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지난 1일 기준 통신분쟁접수센터에 접수된 조정신청은 총 504건이며, 이동통신 3사를 상대로 한 조정신청이 428건으로 85.5%에 달했다.
조 의원은 “분쟁조정위 조정결과 비공개가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는데, 통신사 이익단체인 카이트가 제도를 설계했기 때문이라는 게 이번에 밝혀졌다”며 “조정결과를 공개하는 쪽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명진 방통위 통신분쟁조정팀장은 “카이트는 이용자 편익 보호 활동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법적 기관이고, 조정결과 비공개는 다른 법의 사례를 참고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김재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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