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 콘텐츠 플랫폼 스푼라디오 최혁재 대표가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스푼라디오 사옥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기 전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안테나를 뽑고 주파수를 맞춰 듣는 ‘라디오’는 이제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스마트폰과 만난 라디오’는 엠제트(MZ) 세대가 즐기는 콘텐츠로 다시 태어났다.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건너뛰고 스마트폰이 가장 익숙한 엠제트 세대에게 라디오는 새로운 미디어로 다가온다. 이런 흐름의 중심에 ‘스푼 라디오’가 자리 잡고 있다. 부모님 세대가 아날로그 라디오를 들으면서 받았던 위로와 공감을, 엠제트 세대는 스마트폰 오디오 콘텐츠를 통해 받는다.
‘따뜻한 서비스’ 스푼은 창업자 최혁재(42) 대표가 ‘악으로 깡으로’ 만든 사업이다. 첫 사업에 실패하고 빚더미에 앉아 좌절했던 최 대표가 실패를 거름 삼아 ‘스푼’을 만들고 키워가는 이야기를 지난달 28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만나 들었다.
오디오 콘텐츠 플랫폼 스푼라디오 최혁재 대표가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스푼라디오 사옥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기 전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MZ세대의 라디오 ‘스푼’…‘오디오계의 유튜브’를 꿈꿉니다
2016년 3월 출시된 ‘스푼’은 라디오와 팟캐스트의 특징이 섞여 있는 오디오 서비스다. 모바일 오디오 콘텐츠라는 점에서는 팟캐스트와 비슷하지만, 녹음 파일이 아닌 실시간 생방송 위주라는 점이 다르다. 정치나 시사가 아닌 공감, 위로 콘텐츠가 주를 이루는 부분은 라디오를 닮았다.
스푼은 첫 사업이었던 스마트폰 배터리 공유 서비스 ‘만땅’이 실패하고 좌절하던 때, 한 직원이 제시한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첫 사업이 생각보다 빠르고 아프게 실패했습니다. 저와 팀원들은 정말 힘들고 괴로웠는데, 인스타그램 속 사람들은 다들 행복해 보였죠. 하지만 사람들의 일상은 화려한 모습보단, 일과 학업에 찌들어 보내는 게 보통이잖아요. 평범한 사람들이 고민거리를 털어놓을 공간을 만들어보고자 했습니다. 글이나 사진, 영상 플랫폼은 이미 있으니, 목소리를 활용하는 일종의 ‘오디오 대나무 숲’을 만들어보려 했죠.”
정식 출시 6개월 전, 말하듯 녹음한 짧은 음성 파일을 공유하는 시범 서비스를 내놓자 18~24세 이용자가 가장 많이 모였다. 오디오 콘텐츠에 익숙하지 않은 엠제트 세대가 의외로 반응을 보인 것이다. “목소리를 활용한 콘텐츠를 이용하고 싶은데 그럴만한 공간이 없다고 했어요. 라디오를 들어본 적이 없는 이용자들인데, 오디오로 소통하는 게 좋다고 하더군요. 이들에게는 스푼이 첫 번째 라디오 같았어요. 이런 피드백을 듣고 스푼을 라디오로 발전시켜보자고 방향을 다듬었습니다.”
지난 5년, 스푼 앱을 다운받은 전 세계 이용자는 3천만명이 넘는다. 이 중 70~80%가 1020세대다. 이들을 타깃으로 한 ‘오디오계의 유튜브’가 스푼의 지향점이다. 이에 콘텐츠 강화 차원에서 ‘유명 유튜버’처럼 스푼에서 인기를 얻는 크리에이터인 ‘초이스 디제이’를 발굴하고, 배우 김보라, 방송인 황광희와 함께 오리지널 콘텐츠도 제작했다.
서비스 시작 1년 만인 2017년,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을 시작으로 해외 시장에 진출한 점도 눈에 띈다. 오디오 콘텐츠 시장의 규모가 작은 한국의 한계를 넘어서 보려는 시도다. 최 대표는 “지상파 3사 에프엠(FM) 라디오 광고시장 규모가 (연간) 2천억원이 안 된다. 스푼이 지상파 라디오만큼 성장하더라도 매출 한계가 500억원, 시장을 독점해도 2천억원이 끝이란 얘기”라며 “성장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해외 시장에도 일찍 눈을 돌렸다”고 말했다. 현재 스푼은 한국어, 일본어, 영어, 아랍어 등 4개 언어로 서비스 중이다. 직원 150여명 중 3분의1이 외국인이기도 하다.
오디오 콘텐츠 플랫폼 스푼라디오 최혁재 대표가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스푼라디오 사옥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실패로 돌아간 첫 사업, 스마트폰 배터리 공유 서비스 ‘만땅’
최 대표는 창업 전 엘지전자에서 안드로이드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했다. “돈을 벌고 싶어서” 안정적인 직장을 버리고 창업에 뛰어들었단다. 벤처기업부터 피엠피(PMP)를 만들던 중소기업 아이스테이션, 대기업까지 모두 다녀봤지만 회사에 다녀서는 집 한 채 장만하기 어렵다는 계산이 나와서다.
“몸이 편찮은 어머니의 병원비가 감당이 안 되어서 주변 도움을 받은 적이 있어요. 가족을 잘 지키려면 경제적 뒷받침이 무엇보다 중요하구나 절감했죠. 한 아이티 대기업의 초기 멤버로 일했던 이모부가 회사의 성공과 함께 집안을 일으키는 모습을 본 것도 자극이 됐습니다.”
첫 사업은 2013년 출시한 스마트폰 배터리 대여 서비스 ‘만땅’이었다. 당시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은 배터리를 교체해서 쓰는 방식이었다. 배터리가 떨어졌을 때 빌릴 수 있는 곳을 확보하고 배달도 해주는 서비스를 만들었다. 유료 사용자 10만명을 확보하며 성장하던 사업은 2015년 신형 갤럭시 스마트폰이 ‘배터리 일체형’으로 나오면서 실패했다.
“편의점 등 배터리를 빌릴 수 있는 거점을 1천개까지 늘렸고 수억원어치의 배터리를 확보했는데 모두 무용지물이 됐죠. 사업을 확장하면서 회사가 진 빚을 떠안으며 2∼3개월 만에 빚더미에 앉았습니다. 최근에서야 이용자가 늘고 있는 보조배터리 공유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었지만, 새 사업이 안착할 때까지 버틸 시간과 자금의 여유가 없었어요. 시대를 앞서간 생각은 결코 자랑이 아니더군요. 시장이 원할 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중요한 능력이더라고요.”
오디오 콘텐츠 플랫폼 스푼라디오 최혁재 대표가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스푼라디오 사옥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기 전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새로운 일에 도전하면 실패도 당연, 기죽지 말고 마음껏 재도전 하세요
첫 사업에서 실패하고 받았던 사람들에게서 무시와 손가락질이 가장 힘들었다고 최 대표는 털어놨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면 당연히 실패할 수 있지만, 재도전을 돕기보단 ‘낙오자’라는 낙인부터 찍으려는 분위기가 힘들었다고 했다. 때문에 창업을 포함해 새로운 일을 하다 실패를 경험한 이들에게 “기죽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게 중요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위로받고 싶어서 만난 친한 사람들도 ‘대기업 그만두고 잘난척하더니 그럴 줄 알았다’고 말했거든요. 이런 가시가 돋친 말들이 재도전과 성장의 동력이었던 것 같아요. 물론 재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비디오가 대세인데, 또 망하려고 오디오를 하냐’는 말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실패를 장담하는 사람들에게 보란 듯이 결과물을 보여주고자 이를 갈고 버텼습니다. 실패는 그 자체로 교훈을 주고, 나중에 같은 실패를 안 할 수 있는 거름이 됩니다. 길게 보면 실패를 해본 사람들은 더 잘할 수 있는 역량이 생긴 것이죠. 그러니 실패했을 때 손가락질을 받더라도 의기소침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실패를 통해 성장해본 사람들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말들이거든요.”
그렇게 다시 일어선 결과물인 ‘스푼’은 주요 고객인 엠제트 세대에게 인지도를 쌓으며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매일 전쟁 치르듯 일하고 있다고 한다. 올해 초 클럽하우스가 큰 인기를 끌었던 것에 발맞추어서 여러 사람이 동시에 이야기하는 ‘다자간 콜’ 서비스 출시도 준비 중이다. “규모만 커졌지 여전히 안정적이지 않거든요. 아직 영업적자를 보고 있고요. 매일 끊임없이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대표의 일인데, 제가 잘못된 결정을 하면 사용자건 임직원이건 누군가는 피해를 봅니다. 서비스가 커질수록 더 큰 부담을 안고 매일 의사결정을 하는 게 쉽지는 않죠. 또 플랫폼은 승자가 독식하는 시장이다 보니, 점점 치열해지는 오디오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긴장을 늦출 수도 없습니다. 그 과정에서 또 실패할 수도 있을 거고요. 하지만 끊임없이 다시 도전하면서 치열하게 스푼을 키워보려 합니다.”
최민영 기자
mym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