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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빈집 재생 스타트업…‘다자요’ 남성준이 겪은 기쁨과 슬픔

등록 2021-06-14 04:59수정 2021-06-14 09:13

[최민영의 혁신 탐구생활]
빈집 재생 스타트업 ‘다자요’를 창업한 남성준 다자요 대표를 7일 제주 제주시 연동에 위치한 공유오피스 ‘다자요 데스크’에서 만났다. 최민영 기자
빈집 재생 스타트업 ‘다자요’를 창업한 남성준 다자요 대표를 7일 제주 제주시 연동에 위치한 공유오피스 ‘다자요 데스크’에서 만났다. 최민영 기자

지난 7일 낮, 제주 제주시 연동에 위치한 공유오피스 ‘다자요 데스크’. 남성준(47) 다자요 대표는 이 공간을 “아주 슬픈 곳”이라고 말했다. 다자요의 빈집 재생 사업이 첫발을 떼자마자 규제 이슈가 불거졌을 때, 회사의 생존을 위해 눈물을 머금고 직원들을 내보내며 만든 공간이어서다. 지난해 9월 정부의 ‘한걸음 모델’로 선정돼 규제 문제가 해소되기까지 1년 3개월 동안 남 대표는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스타트업이 변화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기존의 규제, 사업자와 부딪히며 갈등이 불거지는 사례는 다양한 영역에서 비슷한 구조로 되풀이되고 있다. 대표적인 갈등사례였던 ‘타다’는 ‘타다 베이직’이 영업을 중단하며 원만한 갈등 조정에 실패했다. 리걸테크 서비스 ‘로톡’과 미용·의료정보 플랫폼 ‘강남언니’는 각각 대한변호사협회, 대한의사협회와 현재 마찰을 빚고 있다. 다자요도 비슷했다. 이들도 현행 법 제도, 기존 민박 사업자들과 첨예하게 대립하며 규제 샌드박스 등 논의가 공회전을 거듭하기도 했다. 하지만 남 대표는 결국 성공적으로 사업을 재개했다. 그는 어떻게 ‘갈등의 지옥’을 지나왔을까. 지난 6년 그가 ‘다자요’를 운영하며 겪은 기쁨과 슬픔에 대해 들어봤다.

2018년 4월 다자요가 처음 영업을 시작한 서귀포시 도순동에 위치한 빈집 재생 숙소 ‘도순 돌담집’. 다자요 제공
2018년 4월 다자요가 처음 영업을 시작한 서귀포시 도순동에 위치한 빈집 재생 숙소 ‘도순 돌담집’. 다자요 제공

■ 제주 토박이가 15년 서울살이 접고 고향으로 돌아와 만든 ‘다자요’

남 대표는 제주 토박이다. 제주에서 태어나 대학까지 졸업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지방 청년들처럼, 첫 직장은 2000년 서울에서 잡았다. “지방에는 청년들이 갈만한 좋은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해서”다. 은행 근무 2년, 자격증 시험 공부 3년, 이자카야 운영 10년, 총 15년의 서울살이를 마치고 2015년 마흔 한 살에 귀향했다. 마흔이 넘어 취업을 하긴 어려울듯해 창업을 생각하던 그의 머리 속에는 서울에서 사용했던 우버, 에어비앤비와 같은 플랫폼이 떠올랐다. 당시 제주도에서는 낯설었던 플랫폼 사업을 남들보다 먼저 시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방은 서울과 비교하면 여전히 많은 부분에서 늦어요. 대표적인 국내 여행지인 제주에서 숙박중개 서비스를 출시해 제주도의 플랫폼 사업을 선점하고 싶었어요. 고향 동네니까 영업도 자신있었죠. 내려오기로 결심했던 때는 이자카야를 운영하며 밤낮이 뒤바뀐 생활을 수년간 이어오느라 지쳤던 시기였어요. 또 저는 청소년기에 부모님이 두 분 다 돌아가셨고 결혼하지 않은 싱글이다 보니, 적지 않은 나이에 새로운 시도를 하는데 남들처럼 복잡한 고민을 하진 않았던 것 같아요.”

2015년 10월, 다자요는 숙박 중개 플랫폼으로 첫 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1년 만에 실패로 돌아갔다. 제주도에서는 플랫폼의 성장에 필요한 자금과 인력을 제때 확보하기가 어려워서였다. 지방 스타트업의 한계를 몸소 겪었다. “제주도에는 김봉진, 김슬아 같은 사업가를 롤모델로 삼는 젊은이들이 많지 않았거든요. 공무원이 된 삼촌, 관광공사에 들어간 이모, 한라봉 농장으로 큰 돈을 번 작은아버지가 본이 되는 경우가 여전히 많습니다. 플랫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성장의 토대도 약하다보니 생각했던 것처럼 사업을 키우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실패의 경험은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발판이 됐다. 플랫폼을 운영하면서 숙박 시장의 트렌드를 파악할 수 있어서다. “시설이 좋고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독채형 숙소, 그러면서도 특색이 있는 공간. 이런 숙소를 직접 만들어보자 싶었습니다. 직접 건물을 짓거나 사들이기엔 자금이 부족해서 빈집을 활용하자는 아이디어도 떠올렸죠. 전통 가옥을 활용한 숙소나 카페가 유행하는 흐름과도 맞을 것 같았어요.”

다자요의 두 번째 빈집 재생 프로젝트인 제주 애월읍에 위치한 ‘봉성 돌담집’. 다자요 제공
다자요의 두 번째 빈집 재생 프로젝트인 제주 애월읍에 위치한 ‘봉성 돌담집’. 다자요 제공

■ 빈집 재생 숙박사업으로 변신…“내 집도 고쳐달라는 사람들이 줄을 섰죠”

2017년 다자요는 빈집 재생 스타트업으로 변신했다. 집주인에게 빈집을 무상으로 빌려서 실내 인테리어 공사를 무료로 해주고, 다자요가 10년 동안 숙박업소로 영업을 한 뒤 집을 돌려주는 방식이었다. “자식들은 서울로, 고향에 계신 어르신도 불편한 옛집보단 시내의 아파트로 가면서 지방의 빈집이 생겨납니다. 돈을 들여 고치자니 부담되고, 고쳐도 임대가 될지 모르고, 고향 집이니 남에게 팔긴 망설여지고…. 그렇게 치안과 위생 문제가 우려되는 빈집이 늘면, 동네에 들어오려는 사람들이 줄어들면서 점점 죽은마을이 되는 악순환에 빠집니다. 그래서 빈집은 보통 철거의 대상으로 보지만, 다자요는 ‘자원’으로 봤습니다.”

첫 숙소는 남 대표의 고향 후배의 부모님이 가지고 있던 서귀포시 도순동의 100년 된 빈집 두 채였다. 공사에 필요한 돈은 와디즈의 크라우드펀딩으로 마련했다. 다자요는 2017년부터 총 세 차례 크라우드 펀딩으로 일반인 투자자 350명에게서 총 8억여원을 투자 받았다. 이 돈으로 빈집 4채를 고쳤다. 일반인 투자자들은 한국벤처투자(5억원),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3천만원) 등 기관투자자들보다 비중이 큰 다자요의 최대 주주다.

2018년 4월, ‘도순 돌담집’이 새로 태어나자 빈집 문제를 사실상 방치하고 있던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 협력 문의가 줄을 이었다. “내 집도 고쳐달라”며 다자요를 찾아오는 빈집 주인도 100명이 넘었다. 한국관광공사의 관광벤처사업 공모전에서 상도 받았고, 삼성 C-lab, IBK창공 등 민간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에도 선정됐다. 그렇게 다자요는 빈집 문제의 유의미한 해법으로 꼽히는듯 했다.

하지만 두 번째 숙소인 봉성리 돌담집 두 채를 오픈하려던 2019년 6월, 모든 영업이 중단됐다. 다자요가 현행법을 어겼다는 민원이 접수되면서다. 농어촌 민박은 주인이 거주하는 집에서만 가능한데, 집주인이 없는 빈집에서 다자요가 영업을 했으니 불법이라는 취지였다. 기존 숙박업자들의 반발도 이어졌다. “객실 예약률이 75% 이상으로 상승하고 있던 때였어요. 막 성장을 시작하려던 시기에 갑자기 ‘불법 회사’ 딱지가 붙었죠. ‘수많은 독채 민박이 모두 불법인데 왜 우리만’이란 생각도 들었던 게 사실입니다. 투자, 협업 논의가 전부 중단되면서 모두가 등을 돌린 것만 같았어요.”

봉성 돌담집 내부 모습. 다자요 제공
봉성 돌담집 내부 모습. 다자요 제공

■ 규제로 사업 막혔던 1년3개월…“다같이 잘되는 방법을 고민하는 게 중요”

다시 한 번 다른 사업으로 전환하거나 다자요를 아예 접을 수도 있었지만, 남 대표는 버티기를 택했다. 제도가 상식을 못 따라오는 상황에서, 상식을 바탕으로 다자요의 사업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공감해주는 이들이 많아 승산이 있다고 봤던 것이다. “빈집 개조 숙박업은 ‘이것도 못하게 하면 어떡해?’라고 할만한 일 같았어요.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나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등 문제 의식에 공감해주는 기관도 많았죠. 무엇보다 소액 주주들이 힘을 내라며 3억원 가까이 추가로 투자금을 모아줬던 것이 힘이 됐습니다.”

버티기에 들어간 다자요는 허리띠를 졸라맸다. 영업 중단으로 매출이 끊기면서 직원들의 월급부터 문제였다. 직원 10명 중 절반을 내보내고 남는 공간을 공유 오피스로 전환해 새로운 수익을 냈다. 숙소는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했던 소액 주주 350명을 상대로 제한된 영업을 했다. 지난해 코로나19가 전세계를 뒤덮으며 해외여행이 막힌 상황은 다자요에겐 더 없이 좋은 사업 확장의 발판이었지만 이 기회도 통째로 날렸다.

제주시 연동에 위치한 다자요의 공유오피스 ‘다자요 데스크’. 최민영 기자
제주시 연동에 위치한 다자요의 공유오피스 ‘다자요 데스크’. 최민영 기자

규제나 기존 사업자와의 충돌은 다자요 말고도 많은 스타트업이 겪는 문제다. 이 과정을 먼저 지나본 남 대표는 이런 소회를 밝혔다. “2020년대에 스타트업이 사업을 하면 기존 제도와 충돌이 불가피해요. 모든 법은 20세기에 만들어졌으니까요. 이때 중요한 질문은 ‘아니 이런 것도 못하게 해?’와 ‘이런 것까지 풀어줘야해?’의 차이입니다. 스타트업의 사업이 이 시대에 도움이 되는가? 고민해봐야죠. 동시에 그 사업으로 피해입는 사람이 생기면 어떤 보상을 줄 수 있지도 생각해야 합니다. 다자요는 매출의 1.5%를 마을에 기부금으로 내기로 했습니다. 영업이익이 아닌 매출을 기준으로 해서 꽤 큰 출혈이지만, 마을의 정취는 다자요가 만든 게 아니니 저희도 뭔가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변화하는 기술, 산업 상황에 맞게 제도를 합리적으로 고치려는 공무원들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야할 필요도 절감했다. “규제를 합리적으로 개선한 공무원에게는 보상을 줘야하지만, 현실에선 개선 이후에 누군가가 민원을 제기하면 왜 바꿨냐며 공무원에게 책임을 묻더군요. 현행 법을 지키도록 소극적으로 법을 해석할 수밖에 없죠.”

도순 돌담집 입구. 다자요 제공
도순 돌담집 입구. 다자요 제공

■ “마을과 함께 성장하는 여행 고민…지방에도 더 많은 스타트업 나와야죠”

지금 다자요는 다시 달릴 준비에 한창이다. 지난해 9월 정부의 신산업 갈등 조정 매커니즘인 ‘한걸음 모델’의 첫 사례로 선정되면서 2022년까지 5개 지자체에서 50곳 빈집을 활용해 사업을 할 길이 열렸다. 협업 대상을 선정하는 논의가 진행 중이다. 오는 9월부터는 예전처럼 일반인의 숙박 예약도 다시 시작된다. 빈집 수리를 논의했던 집주인들과의 신뢰 회복도 중요한 과제다. 다자요의 사업이 막힌 동안 빈집 수리를 논의했던 이들 중 상당수가 다른 사업자를 찾아가거나 집을 팔았다고 한다. 이들과의 약속을 못 지킨 것이 마음에 무겁게 남아있다고 남 대표는 말했다.

“규제에 묶였던 1년3개월 동안 성장하는 방법을 잊어버렸단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국엔 상식이 이긴다는 걸 배웠고, 세상엔 안 될 일이 없다는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앞으로는 국내 마을 여행 활성화에 기여하고 싶어요. 다자요 숙소에는 마을에서 생산되는 농산물과 동네 가게의 상품을 갖다두고 있죠. 마을 사람들과 잘 지내면서 사업을 하고 싶습니다.”

서울이 아닌 제주에도 더 많은 스타트업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말했다. “스타트업은 기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사업이 시작됩니다. 지역에도 서울 못지 않게 다양한 사회 문제가 있어요. 지금까지 해결이 안 된 문제들은 그동안의 기업, 제도, 관이 해결하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다자요 같은 스타트업들이 많아져야 지방 도시들이 갖고 있는 여러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려면 서울에 있는 다양한 스타트업 인프라가 지방으로도 확산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도 사업 논의를 위해서 일주일에 3일 가량 서울에 가요. ‘서울의 창업지원 공간, 자금, 인재가 제주에도 있다면…’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지방에서도 스타트업 창업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사회 전체의 인식의 전환이 무엇보다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제주/최민영 기자 my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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