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메이저 원양 해운사 한 곳이 높은 급여를 내걸며 국내 해운업체 직원을 상대로 채용에 나섰다. 임금 협상 중인 국내 유일 원양사 HMM 노동조합 쪽은 임금 인상이 필요한 근거로 경쟁사의 채용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18일 에이치엠엠과 이 업체 해상노조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스위스 국적 세계 2위 원양 해운사 엠에스시(MSC)는 최근 한국 해운사 소속 선원들을 대상으로 한 경력 선원 채용 공고를 냈다. 공고문을 보면, 모집 대상은 대형 컨테이너선 운항 경험이 있는 해기사로, 거제도 조선소에서 건조 중인 2만3천TEU 컨테이너선에 탑승할 수 있어야 한다. 4개월 계약직이나 조정이 가능하다. 급여는 일항사의 경우 1만3천~1만4천달러, 갑판장은 7800달러로 책정돼 있다.
전정근 에이치엠엠 해상노조위원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에이치엠엠 초대형 선박 승선 경험자를 겨냥하고 있다. 엠에스시가 에이치엠엠 선원들을 접촉해 채용조건을 설명하고 입사지원서를 건넨 사례도 있다”며 “엠에스시 채용공고에 명시된 선원 직급별 월 급여는 에이치엠엠 동급 급여 수준과 비교하면 더 높다”고 주장했다.
회사 쪽은 엠에스시의 채용 공고를 인력 빼가기로 간주했다. 이 회사의 노지환 홍보부장은 “수에즈운하의 에버그린호 좌초 사태에서 보았듯이 초대형 선박 운항은 선원들의 경험이 중요하다. 엠에스시는 공개적으로 선원 빼가기를 하고 있고, 선박 대형화와 스마트십화를 추진 중인 다른 해운사들도 암암리에 움직이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며 “급여 등 모든 면에서 훨씬 나은 조건을 제시하는만큼, 우리 선원들을 대상으로 구인활동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외에는 대책이 없다”고 말했다.
에이치엠엠 해상노조는 이런 상황을 회사 쪽과 공유하며 임단협 지렛대로 활용하는 모습이다. 해상노조는 18일 열린 중앙노동위원회 1차 조정을 앞두고 언론에 배포한 자료에서 “배에서 내리는대로 떠나겠다고 말하는 선원들이 많다. 정기적으로 가족을 만나는 것조차 박탈당한 채 노예처럼 하루 10시간 이상씩 일하고 있으니, 다 버리고 엠에스시로 떠날 채비를 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상황을 (HMM 최대주주인) 산업은행과 정부가 떠밀고 있는 꼴”이라고 주장했다. 산은은 HMM 정상화에 공적 자금이 3조원 이상 투입된 점을 들어 임금 대폭 인상 주장에 난색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재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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