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 자회사로 공기업의 장점과 사기업의 장점을 합친 안정적이고 좋은 회사’
직장인들의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서 남해화학을 검색하면 이런 소개 글이 나온다. 그러나 이 회사가 한때 국내 최대 요소(요소수 원재료) 생산 업체였다는 건 잘 알려지지 않았다.
요소수 수급난은 유독 한국에서 그 파장이 컸다. 일본, 유럽 등과 달리 국내에는 요소 생산 회사가 없어서다. 남해화학도 17년 전 관련 사업을 접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도 요소를 직접 생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요소수 사업을 하는 한 중견그룹 최고경영자(CEO)는 “남해화학은 요소 생산 경험이 있는 데다 농협이 최대 주주인 사실상 공적 성격을 가진 회사”라며 “국내 수급 안정을 위해 요소 생산을 일정 부분 담당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남해화학은 과거 연간 생산능력 66만 톤(t)에 달하는 요소 생산 공장을 갖고 있었다. 지난해 기준 국내 요소 수입량(83만5천t)의 약 80% 규모다. 이 설비를 지금도 유지했다면 이번 같은 요소수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이 공장을 한 미국 기업에 800만달러에 통째로 매각한 건 지난 2004년이다. 제조원가가 수입 요소 가격보다 높아져 2년간 공장 가동을 중단한 뒤 내린 결정이다.
이는 회사의 민영화 이후 단행한 체질 개선과 구조조정 방안의 하나였다. 남해화학은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최대 주주가 공기업인 한국종합화학공업에서 농협중앙회로 바뀌었다. 정부 재정 부담을 줄이고 공기업에 시장 경제 체제를 도입한다는 당시의 민영화 바람에 따라서다.
한국비료협회 관계자는 11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요소 공장은 고온·고압의 가스가 파이프라인을 통과하는 화학 공정 특성상 하루 이틀만 가동을 멈춰도 부식이 생겨 재가동이 어려워지는 등 유지 비용이 매우 큰 게 특징”이라며 “남해화학의 설비 규모가 워낙 커서 민간 기업이 된 뒤엔 그 손실액을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요소 생산 대신 뛰어든 신사업은 주유소와 기름 판매업이다. 국내에 직영 주유소를 개장하고 정유사에서 휘발유·경유 등을 사 와 농협 계열 주유소에 다시 납품하는 사업이다. 안정적인 내수 소비 시장을 겨냥한 성장 전략이다.
재무적 시각에서만 보면 남해화학의 민영화는 성공적이라 평가할 만 하다. 2002년 창사 이래 처음으로 400억원대 적자(당기순손실)를 내고 그 뒤 18년간 단 세 해를 빼고 모두 순이익을 달성했다. 이 기간 누적 영업이익은 약 4천억원, 순이익은 2800억원가량이다. 한 공기업 부서장은 “남해화학은 알짜 기업으로 유명한 회사”라고 귀띔했다.
코스피(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한 엄연한 민간 기업이지만 실상 사업 구조는 그렇지 않다. 남해화학의 지난해 매출액은 1조98억원으로 비료·화학 사업이 62%, 유류 사업이 38%를 차지한다. 매출의 45%에 이르는 4500억원 정도가 최대 주주인 농협경제지주와의 거래에서 발생했다.
국내 농가에 비료 공급을 전담하는 농협을 핵심 거래처로 확보해 내수 비료시장의 독점 업체(시장 점유율 45%) 자리를 보장받고 있다. 최대 주주가 정부에서 농협으로 바뀌었지만 안정적인 사업 기반 자체는 크게 바뀌진 않은 셈이다. 다만 남해화학 쪽 관계자는 “국내 비료 판매에서는 이익이 거의 나지 않고 수출이나 화학 제품 판매 쪽에서 순이익을 남긴다”고 말했다.
재무 여력은 다른 비료회사보다 훨씬 우량하다. 남해화학이 보유 중인 현금 등 1년 이내에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은 올해 6월 말 기준 5047억원으로 이 기간 갚아야 할 빚(2306억원)의 2배가 넘는다. 보통은 이 비율(유동부채 대비 유동자산)이 1.5배만 되도 재무 상태가 안정적인 회사로 평가한다. 부채 비율(자기자본 대비 부채)도 불과 54%다. 국내에서 요소 자체 생산 여력이 있는 회사 중 하나로 남해화학이 유력하게 거론되는 배경이다.
정부는 요소수 수급난을 잠재울 방안으로 국내 요소 직접 생산보다는 일단 정부 직접 구매를 통한 물량 비축과 수입처 다변화 등을 추진하고 있다. 재정으로 국외에서 요소를 사 와 정부 창고에 쟁여놓겠다는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국내 자체 생산도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으나 현재는 급한 불을 끄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남해화학 쪽 관계자는 “요소 자체 생산을 사업 다각화 방안의 하나로 고려할 수도 있어 보인다”면서도 “우리가 요소 생산을 중지한 뒤 지금 같은 수급난이 발생한 게 20여 년 만에 처음인 만큼 이런 사태를 대비해 평소 적자를 감수하며 자체 생산을 하는 게 맞을지는 따져볼 문제”라고 했다.
박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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