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 가전업체 엘지(LG)전자가 자동차를 만든다?’
사실이다. 다만 실제 굴러가지는 않는 맛보기 차(콘셉트카)다.
엘지전자는 카카오모빌리티 주관으로 오는 10일 열리는 테크 콘퍼런스에서 자율주행 전기차 ‘엘지 옴니팟’의 실물을 처음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앞서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정보기술(IT) 전시회 ‘시이에스(CES)’에서는 영상으로만 맛만 보여줬던 차다.
엘지전자가 사전 공개한 영상·사진 등을 보면 옴니팟은 자동차라기보다 ‘작은 집’에 가깝다. 현대차 스타렉스를 닮은 네모 반듯한 승합차는 성인이 똑바로 서도 머리가 천장에 닿지 않을 만큼 차고가 높다. 빙그르르 돌아가는 운전석에 앉으면 대형 엘지 모니터가 아래에서 올라오고, 그 주변엔 옷을 건조·살균하는 스타일러와 냉장고가 있다. 자동차 가운데 있는 전신 거울 모양의 대형 화면 속 가상 인물을 보며 운동을 하거나 쇼핑을 할 수도 있다.
엘지전자 관계자는 “앞으로 자율주행 시대가 되면 자동차는 움직이는 집이 될 것”이라며 “기존 생활가전과 스마트홈(똑똑한 집) 기술을 가진 우리가 스마트카(똑똑한 차)도 잘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엘지 옴니팟은 자동차의 변신 방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차가 단순 이동수단을 넘어서 일하고 즐기는 생활공간으로 바뀌는 셈이다. 특히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개인 차량 이용이 늘고 차에 머무는 시간도 많아지면서 이런 변화의 요구도 커지고 있다. 내연기관 엔진과 변속기가 사라진 넓은 실내 공간과 전자제품처럼 변해가는 전기차, 통신·자율주행 기술이 새로운 흐름을 뒷받침한다.
일본 전자업체 소니가 추구하는 방향도 자동차의 변신과 맞물려 있다. 소니는 올 봄에 ‘소니 모빌리티’를 설립해 전기차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계획이다.
요시다 겐이치로 소니 회장은 “자동차의 가치를 이동수단(모빌리티)에서 엔터테인먼트로 바꾸겠다”고 했다. 자율주행 전기차를 움직이는 게임방이나 영화관으로 만들겠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소니 헤드폰의 외부 소음을 차단하는 노이즈 캔슬링 기술을 적용한 차 안에서 무선으로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이나 소니엔터테인먼트의 영화·애니메이션 등을 즐길 수 있다.
소니는 이미 게임·음악·영화 등이 전체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는 콘텐츠·소프트웨어 기업으로 사업구조를 재편한 상태다. 이런 강점을 움직이는 거주 공간인 전기차에 접목해 서비스 수익을 얻겠다는 의미다.
차량 내 즐길거리에 주목하는 건 소니뿐만이 아니다. 전기차 판매 세계 1위인 미국 테슬라는 지난해 6월 출시한 ‘모델S 플레이드’의 인포테인먼트(정보·오락) 시스템에 에이엠디(AMD)의 고성능 라이젠 칩을 새로 탑재했다. 이를 통해 최신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5 수준의 게임 기능과 성능을 제공한다고 회사 쪽은 설명한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완전 자율 주행차에선 영화를 보고 게임을 하고 인터넷을 사용하는 등 엔터테인먼트가 점점 중요해질 것”이라고 했다.
기존 완성차 업체의 접근은 더 현실적이다. 현대차는 크라우드펀딩(불특정 다수로부터 온라인 투자금 모집) 업체 와디즈와 전기차에서 쓸 수 있는 생활가전 제품을 발굴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현대차는 심사를 통과한 기업을 대상으로 마케팅·홍보·판로 등을 지원하고, 개발된 제품을 전기차 아이오닉5·6 등에 실제 적용할 계획이다. 전기차 배터리에 저장한 전력을 이용해 차에서 쓸 수 있는 이색 가전 아이템을 찾고 있는 것이다.
현대차 내장디자인팀은 1980∼1990년대 인기를 끈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갤로퍼를 캠핑과 원격근무 등을 할 수 있는 콘셉트카로 개조하고 있다. 자동차 스스로 운전하는 자율주행 시대를 앞두고, 오래 전 출시한 차량의 실내 공간을 현대적으로 바꿔놓겠다는 취지다. 미국의 신생 전기 픽업트럭 제조사 리비안은 야외에서 쓸 수 있는 이동식 부엌을 전기차에 탑재해 눈길을 끈 바 있다.
고급 차도 집의 안락한 응접실이나 방을 본뜬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벤츠코리아가 최근 국내에서 최초로 실물을 공개한 고가 전기차 ‘마이바흐 이큐에스(EQS)’ 콘셉트카는 뒷좌석 가운데의 고급 찬장을 닮은 팔걸이 부분에 꽃병을 둔 게 특징이다. 그 아래엔 접이식 탁자와 냉장고, 식기, 샴페인 잔 등을 보관할 수 있다. 현대차의 고급 차 브랜드 제네시스는 차량 바닥에서 열이 올라오는 전통 온돌 기술을 차용한 온열 시스템 기술을 선보였다.
차 형태 자체를 바꾸는 시도도 한다. 현대모비스가 지난해 내놓은 콘셉트카 ‘엠비전 엑스(X)’가 대표적이다. 이 4인승 차량은 여러 명이 함께 이용하는 자율주행 공유 차를 목적으로 만들었다. 차량 중심에 있는 사각기둥을 통해 차의 기능을 제어하고, 360도 유리창 전체를 탑승자가 각자 대형 화면으로 쓸 수 있다. 프랑스 르노는 1961년 출시한 자동차 ‘4L’ 60주년을 기념해 복고풍 차체 아래에 프로펠러 4개를 달고 하늘을 나는 차 ‘에어4’를 지난해 말 깜짝 공개했다. 실제 양산 계획은 없지만 60년 뒤 자동차의 미래상을 반영했다고 한다.
최근엔 전기차 충전소 역시 서비스 공간으로 변화하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내연기관 차 주유소와 달리 전기차는 운전자가 배터리 충전을 위해 장시간 머물러야 하는 하는 점을 노리는 것이다. 자동차의 움직이는 거주 공간으로의 변신이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시각도 있다. 완전 자율주행 기술의 발전이 예상보다 더디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