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관련 공공기관 대다수가 금융배출량(투자·계약한 기업이 내뿜는 온실가스 배출량) 측정을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기관의 사회적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투자 기업의 배출량까지 측정해야 한다는 게 세계적인 기후대응 흐름인데, 한국 금융 관련 공공기관들은 이런 흐름을 거스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4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장혜영 의원이 발간한 ‘금융관련 공공기관 기후 공시 현황 및 과제’ 보고서를 보면, 총 17개 금융기관 중 스코프3(금융배출량)을 측정한 곳은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두 곳뿐이었다. 장 의원은 경제개혁연대에 맡겨 한달 반 동안 연구를 진행했다. 17개 금융기관은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 등 13개 기금관리형 준정부기관과 산업은행·수출입은행·기업은행 등이다.
스코프(scope)란 기업들의 탄소배출량을 단계별로 측정하는 것으로, 3단계로 구분한다. 스코프1은 제품 생산 단계에서 발생하는 직접 배출, 스코프2는 사업장에서 사용하는 전기와 동력을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간접 배출, 스코프3은 직접적인 제품 생산 외에 협력 업체와 물류는 물론 제품 사용과 폐기 과정에서 발생하는 외부 배출을 의미한다. 스코프3까지 측정한다는 것은 기업 활동으로 야기되는 모든 온실가스 배출량을 공개하고 이를 기록한다는 의미가 있다.
17개 금융 관련 공공기관. 장혜영 의원·경제개혁연대 ‘금융 관련 공공기관 기후공시 현황 및 과제’ 정책 보고서 갈무리
전 세계 기업들은 기후대응 압력에 스코프3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측정하는 장기전략을 수립해 자체 측정과 외부 기관 인증을 받아가는 추세이다. 특히 금융부문에 대해서도 투자 기업의 탄소배출량을 측정해 과배출 산업의 좌초자산 우려 등 리스크 관리를 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케이비(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금융그룹이 지난해 기준으로 이미 금융배출량을 측정하고 있는 것과 비교해 금융 관련 공공기관들의 금융기관의 기후대응 속도가 늦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후변화 위험을 인식하고 있다고 답변한 금융 관련 공공기관은 7곳에 불과했다. 이런 배경에서 정책금융기관들의 기후위기 대응을 유도하기 위한 금융정책이 부족하다는 분석도 이어진다.
기업은행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관련 채권 비중은 전체 발행 채권의 17%였다. 기업은행은 중소기업과 고상공인 지원이 주 업무이다 보니 사회적 채권 비중이 높다. 반면 대기업 등 산업계의 온실가스를 감축할 수 있도록 금융 유도를 하는 역할을 하는 산업은행은 4%에 그쳤다. 수출입은행은 9%로 분석됐다.
연구를 진행한 노종화 변호사는 “산업은행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재생에너지나 친환경 사업에 투자를 많이 해야 하는 정책금융기관이다. 그런데 이런 역할을 사실상 하지 않고 있음이 확인됐다. 또한 한국투자공사는 아예 의원실에 자료 제출을 하지 않았고, 국민연금도 자료 제출이 충분하지 않은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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