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2018년 3월 중국 시안공장의 새 메모리 제2라인 기공식을 갖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와 에스케이(SK)하이닉스가 중국공장 내 반도체 생산시설에 필요한 장비를 향후 1년 동안은 미국 상무부 허가 절차 없이 반입할 수 있게 됐다. 미국이 최근 중국 대상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를 강화하면서 국내 기업들도 미 상무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1년 유예를 받은 것이다.
12일 워싱턴 소식통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는 최근 이런 방침을 삼성전자와 에스케이하이닉스에 통보했다. 에스케이하이닉스는 이날 보도자료를 내어 “중국 내 반도체 생산시설에 필요한 장비를 1년 동안은 미국의 별도 허가 없이 공급받기로 미국 상무부와 협의가 됐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공식 입장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같은 내용을 통보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미국 상무부는 첨단 시스템반도체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기업의 주력 생산품인 메모리반도체에 대한 통제도 강화했다. 디(D)램은 18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 낸드플래시는 128단 이상 생산 장비를 중국 내 업체에 팔려면 허가를 받도록 했다. 미국 장비 제조업체들의 원칙적으로 중국 업체에 판매할 수 없고, 중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은 건별로 심사를 받도록 했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서 낸드플래시를, 에스케이하이닉스는 우시와 다롄에서 디램과 낸드플래시를 생산하고 있다. 삼성전자 시안공장의 낸드플래시 생산량은 회사 전체 공급량의 40%를 차지한다. 에스케이하이닉스 우시공장과 다롄공장은 각각 디램 생산량의 절반과 낸드플래시의 20∼30%를 맡고 있다.
미국 상무부의 이번 조처로 삼성전자와 에스케이하이닉스는 1년 동안은 별도 심사·허가 없이 중국 생산시설에 장비를 반입할 수 있게 됐다. 미국 조처는 한국 반도체 회사들의 중국 생산시설 업그레이드 일정을 반영해 마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내 반도체 공급이 원활하지 않을 경우를 감안한 조처라는 뜻이다.
삼성전자와 에스케이하이닉스는 1년간은 별 문제없이 장비를 들여올 수 있게 됐지만, 불안감은 더 커졌다는 반응이다. 1년 뒤 허가·심사 기준과 방식을 어떻게 할지는 전적으로 미국 상무부의 결정에 달려있어 중장기적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1년만 보고 수백억 내지 수천억원에 달하는 장비를 들여올 수는 없다”며 “불확실성이 큰 상황인만큼 향후 투자도 더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미국 현지 소식통은 “당장은 한국 기업들이 수출 통제 대상에서 벗어났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이에 미국 상무부를 직접 상대하는 우리 정부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는 한 증권사 분석가는 “1년 유예를 받았다지만, 우리 기업의 중국 내 반도체 생산시설의 기술 수준을 미국이 결정할 수 있게 된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며 “미 상무부 조처에 대한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는 것은 개별 기업이 아닌 우리 정부가 할 일”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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