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 한남동 ‘승지원’ 앞을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다. 삼성은 이병철 전 회장의 거처를 개조해 영빈관으로 활용 중이다. 선대 회장의 뜻을 잇는다는 의미로 ‘승지원’이라고 이름지었다.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삼성그룹의 영빈관 격인 ‘승지원’에서 일본 주요 부품 협력사들과 모임을 가졌다. 아버지 고 이건희 회장 시절 이어져왔던 ‘승지원 경영’이 재개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22일 삼성전자 설명을 종합하면, 이 회장은 21일 서울 한남동 승지원에서 삼성의 일본 쪽 협력회사 모임 ‘이건희와 일본인 친구들’(LJF·Lee Kunhee Japanese Friends)과 모임을 가졌다. 이건희와 일본인 친구들은 고 이 전 회장이 일본 내 반도체·휴대폰·가전 쪽 부품·소재 기업들과 협력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1993년 제안해 이어져온 사적 모임이다. 이 모임엔 티디케이(TDK), 무라타제작소, 알프스알파인 등 일본의 전자 쪽 부품·소재 기업 8곳이 참여하고 있다.
삼성은 이번 모임에 대해 “삼성과 일본 부품·소재 업체 간 지속적인 협력 관계를 유지하려는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이번 승지원 모임에서 “삼성 성장에 일본 협력사들이 큰 힘이 됐다. 지난 30년 동안 한·일 관계 부침에도 서로의 협력에 흔들림이 없었다. 삼성과 일본 업계가 미래 산업을 선도하기 위해 ‘천리길을 함께 가는 소중한 벗’ 같은 협력 관계를 이어가자”고 말했다고 삼성전자는 전했다.
삼성과 일본 협력사 대표들은 이번 모임에서 미-중 무역 갈등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글로벌 위기 상황에서 인공지능(AI)과 4차산업혁명의 핵심 기술 구축을 위한 전략 등도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모임에 삼성 쪽에선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 노태문 삼성전자 모바일경험(MX)사업부장, 최주선 삼성디스플레이 사장, 최윤호 삼성에스디아이(SDI) 사장, 고정석 삼성물산 사장 등이 배석했다.
재계에선 이건희 선대 회장의 ‘승지원 경영’이 부활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승지원은 이병철 전 회장의 거처를 개조한 장소로, 선대 회장의 뜻을 이어받는다는 취지로 이름이 지어졌다. 이건희 선대 회장이 1987년 아버지 이병철 회장의 거처를 물려받아 집무실 겸 영빈관으로 개조했다.
삼성전자 쪽은 “일본 협력사와 승지원에서 모임을 한 것은 선대의 유지를 계승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재용 회장이 부회장 시절 병상에 있는 아버지를 대신해 국내 기업 총수들과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등과 승지원 모임을 연 바 있지만, 삼성전자 회장 자격으로 공개적인 승지원 행사를 연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 회장은 지난해 8·15 특별사면으로 복권된 뒤 삼성전자 회장에 취임한 1년 동안 글로벌 기업 대표 등과 관계 복원에 집중하고 있다. 미-중 갈등으로 글로벌 경영 여건이 악화하는 상황에서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사업을 확장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 회장은 지난해말부터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 존슨 황 엔비디아 대표 등 거물급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기업 대표들과 만남을 이어왔다.
이 회장은 5천억달러(670조원) 공사비가 들어가는 사우디 네옴시티 수주전을 위해 21일부터 윤석열 대통령의 사우디아라비아 순방 경제사절단의 일원으로 동행 중이다.
옥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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