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롯데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일본롯데홀딩스(롯데홀딩스)의 공동대표인 신동빈(63) 롯데 회장이 대표 자리에서 물러난다. 이로써 ‘원 롯데’를 표방하던 경영 체제에 큰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롯데지주는 21일 오후 열린 롯데홀딩스 이사회에서 최근 뇌물공여죄 1심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구속된 신동빈 회장의 대표이사직 사임 건이 승인됐다고 밝혔다. 롯데지주는 “신동빈 회장의 사임은 이번 사태를 무겁게 받아들여 롯데홀딩스의 대표권을 반납하겠다는 신 회장의 의지에 따른 것”이라며 “롯데홀딩스 이사회는 관련 내용을 신중히 검토한 결과, 신 회장의 제안을 수용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일본은 경영진이 비리 등의 이유로 실형을 선고받았을 때 공식 직함을 내려놓고 사임하는 관행이 있다. 신 회장도 재판 결과가 나오기 전 ‘본인에 대해 예외 규정을 둘 필요는 없다’는 의견을 롯데홀딩스 경영진 쪽에 밝혀왔다.
신 회장의 공동대표 사임으로 롯데의 경영 체제 변화는 불가피하다. 먼저 지배구조를 봤을 때 일본 롯데가 한국 롯데를 지배하고 있다. 재계에서는 “신 회장이 일본에서의 경영권을 잃게 되면 한국 롯데가 일본 경영진의 지배를 받는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롯데그룹은 신격호 총괄회장 등 총수일가→광윤사→일본롯데홀딩스→호텔롯데→롯데 계열사 등으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 일본롯데홀딩스는 호텔롯데를 지배하고, 호텔롯데는 국내 주요 계열사를 지배하는 식이다.
이에 따라 롯데홀딩스가 한국 롯데 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롯데지주는 “신 회장의 사임으로 양국 롯데의 협력관계는 불가피하게 약화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도 “그러나 황각규 롯데지주 부회장을 중심으로 일본 롯데 경영진과의 지속적인 소통으로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고자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신 회장의 형인 신동주 전 부회장과 경영권 다툼도 다시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신 전 부회장은 일본 롯데홀딩스의 단일 최대주주인 광윤사 대표 자격으로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 복귀를 시도할 가능성도 있다. 신 전 부회장은 광윤사의 지분 50%+1주를 보유한 최대주주이자 대표이사다. 신 전 부회장은 오는 6월로 예정된 일본 롯데홀딩스 정기주주총회를 앞두고 물밑작업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롯데 안팎에서는 일본 경영진의 한국 롯데에 대한 영향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롯데홀딩스가 지배구조 연결고리의 정점에 있기는 하지만 기업 규모 등을 고려하면 한국 롯데가 훨씬 커 쉽게 경영 간섭을 하기 어려우리라는 것이다. 롯데지주 고위 임원은 “고용 규모로만 봐도 일본 롯데그룹은 5천명에 불과한데 한국 롯데그룹은 13만명에 이른다”며 “한국 롯데는 일본 롯데에 견줘 성장을 꾸준히 지속해 와 기업 규모를 크게 성장시킨 점을 일본 경영진들이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신동주 전 부회장과 경영권 다툼에 대해서는 “신동주 전 부회장은 한국 롯데그룹 계열사의 지분을 거의 정리했고, 일본 롯데홀딩스의 이사 등 공식 직함에서도 해임된 상황이라 경영권을 다시 가져갈 수단이 없다시피 하다”며 경영권 분쟁 재점화 가능성을 일축했다.
해임안이 주주총회서 통과되면 단독 대표이사가 되는 쓰쿠다 다카유키 롯데홀딩스 사장은 신동빈 회장의 측근으로 분류된다. 신 회장도 대표이사직에서는 물러나지만, 롯데홀딩스 이사직과 명예직인 부회장 자리는 유지한다. 금융권에서도 신 회장의 한국 롯데그룹 장악력이 지난해부터 꾸준히 확대돼 일본 경영진의 움직임에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조용선 현대차투자증권 연구원은 “1심 판결 하나로 신 회장 쪽에 선 일본 경영진이 태도를 바꿀지는 의문”이라며 “롯데홀딩스가 수직적 출자구조의 정점에 있으나 실제로 롯데지주 등 한국 롯데그룹에 대한 신 회장의 경영권·지배력은 탄탄한 편이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 롯데그룹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을 시도하면서 신 회장의 주요 계열사에 대한 지분율이 높아졌다. 그게 신 회장이 롯데홀딩스에 자신을 ‘실형 시 해임’의 예외 규정으로 두지 않아도 된다는 의견을 전달한 자신감의 배경이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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