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부터 올해 9월까지 5년9개월 동안 국내 24기 원자력발전소가 통상적인 정비가 아닌 이유로 가동을 멈춘 까닭을 모두 조사했더니, 납품 비리, 불량 자재가 사용된 핵심설비 교체, 부실시공된 부분의 보수·정비 탓이 대부분인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이유로 원전이 서 있었던 날수는 5568일에 이르며, 원전 가동을 못 해 전력을 팔지 못한 손실과 원가가 비싼 엘엔지(LNG·액화천연가스) 발전 전력을 추가로 구매하는 데 쓴 비용을 합치면 17조원으로 추산됐다.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5년9개월 동안 원전 가동이 멈춘 날 가운데 납품 비리, 부실시공, 불량 자재 탓으로 드러난 부분을 분리해 한국수력원자력과 한국전력이 입은 손실을 산출한 결과 16조9029억원에 이르렀다고 9일 밝혔다. 국민 한사람당 33만원을 부담한 꼴이자, 최신 모델(APR-1400)의 원전 2기를 새로 건설할 수 있는 금액이다. 이는 한수원과 전력거래소에서 2013년부터 원전 24기의 불시 정지 기간·사유, 계획예방정비 지연 기간·사유, 비리로 납품된 불량 부품 교체 비용, 시기별 원자력·엘엔지 정산단가(한전이 발전사에 지급하는 전력구매 비용) 자료를 제출받아 분석한 결과다. 손실은 원전 업계가 ‘원전 대신 엘엔지 발전소 가동 시 늘어나는 국민부담’을 산출하는 방법(엘엔지 정산단가-원전 정산단가)으로 계산했다.
2013년 납품 비리 적발로 드러난 불량 케이블 등을 교체하느라 생긴 손실은 한수원 2조193억원, 한전 3조2389억원, 부품 교체비용 106억원 등 총 5조3639억원으로 추산됐다. 검증서가 위조된 부품을 찾고 총 1245㎞에 이르는 불량 케이블을 교체하느라 2013년 3월부터 이듬해 10월까지 원전 10기가 7∼365일 동안 멈췄다. 대표적 불량 자재 ‘인코넬 600’ 때문에 든 비용은 5조246억원(한수원 1조4680억원, 한전 3조1705억원, 교체비용 3860억원)에 이르렀다. 이 자재는 균열 등에 취약해 증기발생기와 원자로헤드 등의 고장을 일으켜왔다. 2002년 증기발생기 안 세관이 파열돼 방사능 냉각수가 누출됐던 게 대표적이다. 미국과 프랑스는 이미 30여년 전에 이 자재 사용을 멈췄다.
최근 1∼2년 사이에는 원전 9기에서 격납건물 콘크리트 공극(빈 공간)과 방호철판 부식이 잇따라 발견돼 원전 가동률이 떨어졌다. 고리 3·4호기는 기준치보다 얇은 철판 부위가 각각 2077곳과 2158곳 발견돼 478일과 374일 동안 가동정지 상태로 점검과 정비를 받았다. 한빛 4호기는 증기발생기에서 망치가 발견되고, 격납건물 콘크리트벽(현대건설 시공)에서는 최대 38㎝짜리 대형 공극이 여럿 발견돼 지난해 5월부터 500일 넘게 멈춰 있다. 이러한 부실공사 때문에 지금까지 생긴 손실은 6조5144억원(한수원 3조7513억원, 한전 2조7631억원)에 이른다. 격납건물 안전성 조사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더 진행될 예정이어서 손실은 더 불어날 것으로 보인다.
김성환 의원은 “원전 업계가 과거 자신들이 저지른 납품 비리와 부실시공 같은 잘못에는 눈을 감은 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원전 가동률 하락의 주범인 것처럼 흠집내기를 하고 있다”며 “적반하장은 그만두고 철저하고 투명한 원전 운영 및 안전 관리에 집중할 때”라고 지적했다.
최하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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