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가까이 경기가 내리막을 타고 있는 가운데 재벌그룹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 경제가 ‘장기 침체’에 빠져들고 있는 것 아니냐는 재벌 총수의 진단까지 나왔다.
재계 순위 8위 지에스(GS)그룹을 이끄는 허창수 회장은 16일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등 그룹 임원 150여명이 참석한 자리에서 “장기적인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허 회장은 분기(3개월)마다 그룹 임원 회의를 열어, 경기 흐름과 대응책, 대·내외용 메시지를 내왔다. 그가 최근 1년간 내놓은 경영 메시지를 살펴보면 ‘사업 환경 급변’, ‘불확실성 확대’와 같은 표현은 있었지만 국내 경제의 장기 침체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장기 침체’는 현재의 경기 둔화 흐름이 단기간에 바뀌기 어려운 구조적 요인 탓에 이른 시기에 반등하기 어려운 상황을 가리킨다.
이런 진단은 최근 3년 새 0.3~0.4%포인트 하락(한국은행 추정)한 잠재성장률 변화를 염두에 두면 타당성이 있다. 잠재성장률은 한 나라의 경제가 무리하지 않고 달성할 수 있는 최적의 성장률을 가리킨다. 경제 환경에 구조적 변화가 있을 때 오르거나 내린다. 허 회장의 시각은 최근 이호승 청와대 경제수석이 2년간 경기 하강의 이유로 반도체·건설 업황 부진 등 경기 순환 요인만 강조한 것과는 결이 다르다. 허 회장은 구조적 배경에, 이 수석은 일시적 이유에 좀 더 무게를 실었다는 뜻이다.
허 회장은 이런 판단의 근거를 국내외 요인으로 구분해 제시했다. 그는 “안으로는 낮은 출산율과 고령화 등 구조적 문제가 있으며 (밖으로는) 일본의 수출 규제와 미-중 무역분쟁 장기화에 따라 (세계) 경기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경기 상황이 녹록하지 않다는 진단은 여러 곳에서 나오고 있지만 허 회장의 ‘장기 침체’ 가능성 언급은 그만큼 재계에 긴장감이 한껏 고조돼 있기 때문이라는 풀이가 나온다. 다만 지에스그룹 쪽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최근 경제수석의 발언을 염두에 두고 나온 (허 회장의) 메시지는 아니다”라며 확대해석은 경계했다.
김경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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