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 거대 기업이 방송 시장에 본격 진출하면서 유료방송 시장에 일대 격변을 예고하고 있다. 넷플릭스와 유튜브 등 글로벌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이용이 크게 늘어나는 점을 염두에 두고 정부 당국이 대형 통신사와 유료방송 업체의 합병을 승인했기 때문이다. 한편에선 통신과 유료방송 시장의 과점 흐름이 굳어지게 된다는 우려가 나오지만 다른 쪽에선 단기적으로는 거대 회사들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소비자들의 콘텐츠 선택 폭은 넓어지고 가격 부담은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6일 전원회의를 열어 에스케이브로드밴드(SKB)와 티브로드의 합병 안건과 엘지유플러스(LGU+)와 씨제이(CJ)헬로의 합병안을 조건을 걸어 승인했다고 10일 밝혔다. 두 합병안은 각각 지난 5월과 3월 공정위에 신고됐으며, 그간 공정위는 유료방송 시장의 구조 재편을 가져올 수 있는 등 사건의 중대성이 크다고 보고, 전담팀을 꾸려 기업결합 심사를 진행해왔다. 이번 기업결합은 통신사업자와 방송사업자 간 국내 첫 합병으로, 지난 30여년 방송과 통신은 각자의 길을 걸어오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두 영역의 칸막이가 희미해지는 상황에서 이뤄졌다.
특히 넷플릭스와 유튜브 등 글로벌 콘텐츠 업체의 성장과 국내 영향력 확대도 이번 합병에 영향을 줬다. 2016년 에스케이텔레콤(SKT)과 씨제이헬로의 합병을 승인하지 않았던 공정위가 이번에 판단을 달리한 것도 이런 배경을 깔고 있다. 공정위 쪽은 “혁신 경쟁을 촉진하고 방송·통신 사업자가 급변하는 기술과 환경 변화에 제때 대응할 수 있도록 두 기업결합을 승인했다”며 이런 맥락을 숨기지 않았다. 이번 합병은 올해 안에 이뤄질 방송통신위원회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심의를 통과하면 최종 확정된다.
이에 따라 내년부터 유료방송 시장 판도는 기존 아이피티브이(IPTV)와 케이블티브이(TV)의 1강4중 체제에서 통신사가 주도하는 3강 체제로 바뀌게 된다. 현재는 1위 사업자 케이티(KT)와 케이티스카이라이프가 합산 점유율 31.1%로 월등히 앞선다. 2~6위가 에스케이브로드밴드(14.3%), 씨제이헬로(12.6%), 티브로드(9.6%) 순으로 20%를 넘는 경쟁사업자가 없다. 그러나 앞으로는 ‘엘지유플러스+씨제이헬로’(24.5%)와 ‘에스케이브로드밴드+티브로드’(23.9%)의 1위 사업자(케이티+케이티스카이라이프)와의 점유율 차이가 6%포인트대로 좁혀지면서 유료방송 시장은 경합 시장이 된다. 점유율 경쟁을 치르면서 서비스 품질과 가격 변화를 기대할 수 있는 시장 여건이 조성되는 셈이다. 이 과정에서 통신과 방송 분야 투자와 고용이 확대되는 부수효과도 예상된다.
긍정적 요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유료방송 시장의 과점화 현상과 통신 시장 절반을 점유하는 에스케이텔레콤의 지배력이 유료방송 시장까지 확대(지배력 전이)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런 과점화나 독점 사업자의 영향력 확대는 시장 경쟁을 저해하고 소비자들의 편익을 줄이는 부작용을 발생시킬 수 있다. 공정위가 이번 합병을 승인하면서 ‘조건’을 단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공정위는 이런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2022년까지 합병 이후 케이블티브이 수신료 인상률이 소비자물가상승률을 넘지 않도록 하고, 케이블티브이의 전체 채널 수와 소비자에게 인기 있는 채널을 임의로 줄이지 못하도록 했다. 또 고가형 상품으로의 전환 강요나 저가형 상품 구매자와의 계약 연장 거절도 금지했다. 이밖에 유료방송 시장의 파생 시장인 방송채널 전송권 거래 시장에서 나타날 수 있는 중소 피피(PP·방송채널사용사업자)에게서 받는 프로그램 사용료나 홈쇼핑 송출수수료 인상 등의 부작용을 막기 위한 대책은 따로 마련하기로 했다.
한편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8일 두 합병안 심의 결과를 언론에 설명하며 “방송·통신 사업자에게 혁신의 인센티브를 주려고 (승인)했다”고 말했다가 이를 철회했다. 혁신이 가져올 수 있는 부작용인 ‘시장 경쟁 저하’를 제어해야 할 공정위의 본분에는 어울리지 않는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김경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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