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중공업이 과거 미국의 석유시추선 수주 과정에서 뇌물을 건넸다가 미국 법무부에 덜미가 잡혔다. 국내 조선사가 국외에서 뇌물죄로 처벌받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특히 기소를 피하기 위해 900억원의 벌금을 내기로 한 터라 대외신인도 훼손은 물론 재무적 부담도 떠안게 됐다.
24일 미 법무부와 삼성중공업 발표를 보면, 삼성중공업은 지난 2007년 미국 시추선사인 ‘프라이드’(현재 밸라리스) 자회사가 발주한 드릴십 수주 과정에서 발생한 뇌물 제공 혐의로 인해 벌금 7500만달러(약 900억원)를 내는 조건으로 미 법무부와 기소유예에 합의했다. 버지니아주 연방법원에서 열린 심리에서 미 연방검찰은 “삼성중공업의 미국 내 직원들이 시추선 인도계약을 성사시키고자 중개인과 뇌물 공여를 공모했다”고 밝혔다. 해당 시추선은 브라질 석유 공기업 페트로브라스가 사용할 예정이었다.
삼성중공업은 이 합의에 따라 부과된 벌금 중 50%는 미국에, 나머지 50%는 브라질 정부에 내야 한다. 브라질 정부는 현재 삼성중공업과 합의 조건을 별도 협상 중이다. 만약 브라질 정부에 벌금 납부가 이뤄지지 않으면 미 정부에 전액 귀속된다. 이와 관련해 삼성중공업은 “미국 법무부 조사 결과에 따르면 드릴십 건조계약 중개인이 삼성중공업으로부터 받은 중개수수료 일부를 브라질 에너지 업체인 페트로브라스 인사에게 부정하게 제공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확인했다.
이번 사건은 2000년대 들어 브라질 정치권과 재계를 뒤흔든 국영 에너지회사 페트로브라스의 ‘뇌물 스캔들’의 연장선 위에 있다. ‘페트로브라스 스캔들’은 브라질 정·재계 유력 인사 수십명이 거대 에너지 기업의 사업 수주와 납품을 대가로 뇌물을 받은 혐의로 줄줄이 처벌받은 초대형 권력형 부패 사건이다. 여기에 연루된 글로벌 에너지 기업 상당수가 뇌물 공여 혐의로 처벌받았다. 삼성중공업도 그중 하나인 셈이다.
국내 조선사가 국외에서 뇌물죄로 처벌받기는 드문 일이다. 미 검찰은 시추선 인도계약을 성사시키고자 뇌물을 주려고 중개인과 삼성중공업 직원들이 공모했다고 봤다. 이는 미국의 ‘외국 부정행위법’ 위반에 해당한다. 미 법무부와 최종 합의가 이뤄졌고 벌금을 내는 대신 기소를 면제받는 것이라 삼성중공업 쪽도 해당 혐의를 순순히 인정하고 있다. 회사 쪽은 누리집을 통해서도 관련 사실을 알렸다. 앞서 삼성중공업은 이 문제가 불거질 2014년 당시 브라질 검찰의 조사가 시작되자 “합리적 수준의 중개수수료를 중개인에게 준 것”이라고 해당 혐의를 부인한 바 있다.
삼성중공업은 “미 법무부는 삼성중공업의 성실한 조사 협조와 부정방지 정책·준법 프로그램 운영 등 노력을 참작해 기소유예 합의를 결정했고 3년 유예기간 내 합의가 준수되면 기소 없이 종결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남준우 삼성중공업 대표이사는 “10년도 지난 과거의 일이고 연루된 임직원도 모두 퇴사한 상황이지만,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돼 깊은 유감”이라고 말했다.
이번 뇌물 사건은 삼성중공업의 경영 실적에도 적잖은 타격을 주고 있다. 미 법무부와의 합의에 대비해 삼성중공업은 지난 3분기 실적에 900억원을 충당부채로 설정한 바 있다. 삼성중공업은 연결 기준으로 올해 3분기 매출(1조9646억원)을 전년 동기보다 50% 가까이 늘리고도 3120억원의 영업손실을 봤다. 적자 폭은 지난해 같은 기간(-1273억원)보다 크게 확대됐다. 그러나 아직 충당금에 반영하지 않은 우발부채가 많은 데다 업황도 좋지 않아 재무적 어려움은 지속될 전망이다.
홍대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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