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0월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뇌물공여 사건 파기환송심 첫 공판에 출석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18일 삼성전자는 삼성물산과 공동명의로 과거 계열사 노조 활동을 방해한 것 등에 사과의 뜻을 담은 입장문을 낸 가운데, 삼성전자 등 삼성그룹 핵심부는 국정농단 사건과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 사건 수사 및 재판과 관련해 이재용 부회장을 보호할 방안을 중심으로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보다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요구한 ‘준법 경영’ 방안 모색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 부회장이 노조 와해 사건은 물론 최근 잇단 사태에 대해 직접 메시지를 낼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인다.
현재 삼성전자가 가장 큰 공을 들이는 것은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관련 준비다. 이달 초 파기환송심 세 번째 공판에서 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정준영) 재판부가 이례적인 주문을 해서다. 재판부는 당시 “앞으로도 정치 권력자로부터 똑같은 요구를 받을 경우 뇌물을 공여하겠느냐. 그런 요구를 받더라도 기업이 응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답변을 다음 재판 기일 전까지 제시해달라”고 주문했다.
이에 삼성전자는 핵심 경영진과 외부 법률회사(로펌) 등과 함께 ‘준법 경영’ 관련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은 파기환송심에서도 원심이 유지될 경우 특정범죄가중처벌법(특가법)의 취업 제한 조항에 걸려 삼성전자와 유사 계열사에서 재직할 수 없게 된다.
이상훈 이사회 의장 등 핵심 임원의 무더기 법정 구속을 낳은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조합 활동 방해와 관련한 상급심 준비도 이어지고 있다. 이날 삼성전자·삼성물산이 내놓은 입장문에 실마리가 있다. 200자 원고지 1장이 채 안 되는 짧은 분량이지만 ‘재판부의 판단을 겸허히 수용한다’거나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에 사과한다’ 등의 문구는 담기지 않았다. 특히 “노사문제로 많은 분들께 걱정과 실망을 끼쳐 드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대상도 ‘많은 분들’로 모호하게 규정했다. 상급심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표현을 쓰지 않은 것이다.
삼성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감사위원회 등의 검토를 거쳐 입장문 문안을 정리했다. (1심 선고) 하루 뒤 입장문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이 최근 잇따른 사태에 대해 입을 열지도 관심을 끈다. 지난해 5월 공정거래법상 동일인(그룹 총수) 지위에 오른 뒤 총수 행보를 해온 터라 일각에선 삼성전자 핵심 임원들이 구속되는 이례적인 상황에 대해 직접 의견 표명에 나설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그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자신과 직접 관련되거나 관련된 것으로 의심받는 재판과 수사가 진행 중인데다, 삼성그룹은 총수가 직접 사과 의견을 내지 않는 것이 관례이기 때문이다. 2006년 ‘안기부 엑스(X)파일 사건’과 2008년 ‘비자금 사건’ 당시 나온 대국민 사과문은 당시 2인자이던 이학수 전략기획실장(옛 미래전략실장)이 이건희 회장을 대신해 읽었다.
김경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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