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의 글로벌 가치 사슬(GVC)이 변화하면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한국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중간재 수출이 전체의 70%를 차지할 만큼 글로벌 가치 사슬 의존도가 높다. 중국과 미국이 만드는 스마트폰과 티브이(TV), 노트북, 전기차 등에 핵심 부품을 공급한다. 제품을 생산할 때도 일본(소재)과 중국(조립)의 도움을 받는다. 생산부터 판매까지 주변 나라에 의존하는 형태다.
정부와 학계는 단기적으로는 생산지를 여러 곳으로 흩어 위험을 관리하고 장기적으로는 생산 품목을 고급화해야 한다고 본다. 김종섭 서울대 교수(국제대학원)는 “잇단 변수로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글로벌 가치 사슬이 침체될 가능성이 있다”며 “중국을 소비시장으로 남겨두되 핵심 부품 생산기지는 동남아시아 국가로 다변화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7월 ‘새로운 통상질서와 글로벌산업지도 변화’라는 내부용 전략 보고서를 통해 “중국이 이미 우리나라 주력 수출제품인 철강, 석유화학 부문에서 자급 생산체제를 갖췄다. 중국에 중간재를 공급하던 한국-일본-대만-중국 간 분업 구조가 깨지면서 무한경쟁에 직면할 것”이라고 봤다. 산업부는 “한국의 조립·부품산업이 일본의 소재·장비를 공급받아 성장했듯 한국도 중국에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짚었다.
그러나 두 가지 제안 모두 당장 현실화하기는 쉽지 않다. 수천개 부품을 국가별로 나눌 경우 공급 비용이 불어나는 데다 핵심 소재를 대체할 가능성이 작아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일본 수출 규제 강화 조치로 반도체 소재를 국산과 미국산 등으로 대체하려 했지만 비슷한 품질의 대체재를 찾지 못했다. 에스케이(SK)이노베이션 등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도 제조에 쓰이는 일본산 파우치 필름을 다른 국가 제품으로 대체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조철 산업연구원 산업통상연구본부장은 “결국 한국이 겨냥해야 할 분야는 일본이 수출 규제했던 소재·부품 및 장비인데 이런 분야는 반도체, 디스플레이와 달리 수요자가 적고 규모의 경제로 승부하기도 어렵다”며 “품질 높이긴 어려운데 투자 대비 수익이 확실치 않다 보니 대기업 투자가 적고 기술 발전도 더뎠다”고 했다. 조 본부장은 “최근 반도체 소재·부품을 국산화하려는 움직임이 보이는데 얼마만큼 효과를 낼지가 관건이다. 흐지부지되면 현행 구조가 그대로 고착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