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가구업체인 ㅎ기업은 지난 2015년부터 2년여간 판촉행사 비용을 대리점에 떠맡겼다. 본사가 전국 30여곳에 부엌이나 욕실가구 등 전시매장을 차린 뒤, 대리점을 이곳에 입점시켜 제품을 팔면서 사은품이나 전단제작 비용을 대리점에 내게 하는 방식이었다. 본사가 주도하는 판촉행사 비용이 매달 9500만원에서 1억원 넘게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이 비용을 대리점들이 나눠서 냈는데, 점주들은 사실상 본사가 진행하는 판촉행사의 자세한 내용이나 규모조차 모른 채 돈을 내기도 했다. 이에 대해 당시 공정거래위원회는 대리점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대리점법)을 적용해 시정명령과 함께 11억원대 과징금을 부과했다. 2016년 ’남양유업 방지법’으로 알려진 대리점법이 시행된 뒤, 첫 제재를 ㅎ업체가 받았지만 가구업계를 비롯해 본사와 대리점 사이에 불공정행위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공정거래위원회가 20일 공개한 가구·출판·보일러 업종 대리점 거래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불공정거래 경험이 없다’고 답한 대리점은 열에 일곱 정도였다. 가구업계 대리점에서 75.3%를 비롯해 도서출판 74.4%, 보일러 74.2%이 각각 ‘불공정거래를 겪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번 실태조사는 공급업자 전체와 1379개 대리점(32.4%)가 참여해 인터넷과 어플리케이션, 방문조사를 병행해 설문에 응답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불공정거래는 주로 이른바 ‘물량 밀어내기’로 알려진 판매목표 강제 행위가 많았다. 특히 불공정행위를 경험한 대리점주 가운데 보일러 업계에서 판매목표 강제행위(19.5%)가 가장 많았고, 제품 구입강제(7.6%)가 뒤를 이었다. 도서출판과 가구 분야도 상황이 비슷해 나란히 판매목표 강제 행위 경험 사례가 각각 17.1%, 8.5%에 이르렀다.
업종별로도 불공정거래 관행에 차이가 있어서 가구와 보일러의 경우, 팔리지 않는 제품에 대해 본사가 반품을 받지 않는다는 응답이 각각 15.4%, 27.7%나 됐다. 그나마 대리점 쪽이 제품값을 제대로 받지 않는 조건을 받아들이면 반품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는 응답도 공정위 조사에서 나왔다. 가구 쪽에서는 전시매장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아 본사로부터 특정한 인테리어를 요구받았던 사례(49.7%)가 절반에 가까웠고, 일부는 시공업체까지 본사로부터 지정받는 경우(19.8%)가 있었다.
대리점들은 많은 대리점들이 비슷한 갑질 피해를 입은 경우, 당국이 피해구제를 위한 제도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꼬집었다. 특히 불공정행위에 대한 교육·법률 지원이나 모범거래기준 제정을 비롯해 본사가 대리점들의 영업지역을 특정하는 ‘영업지역침해’를 금지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공정거래 정착을 위해 주로 활용되는 본사-대리점간 표준계약서에 대해서는 3개 업종평균 43.1%가 ‘어떤 것인지 잘 모른다’는 대답을 내놨다. 이번 조사는 29개 공급업자와 계약한 4258개 대리점을 대상으로 했다.
공정위는 “가구의 경우 매장 전시가 중요해 본사의 인테리어 간섭을 비롯한 불공정행위 발생우려가 있는 등 유통구조 및 대리점 거래 방식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현실을 반영해 다음달 중 업종별 표준계약서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홍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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