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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산업·재계

담합기업은 1조원대 챙겼는데…“공정위, 소비자배상 위해 제품별피해값 공개해야”

등록 2020-11-04 11:45

‘비료담합’ 피해농민들, 소송보다 힘든 피해규모 산정
“제품별피해액 밝혀 소비자 배상소송 도와야” 지적
지난 2012년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소속 농민들이 서울 서대문 농협중앙회 앞에서 비료 제조업체들의 입찰 담합에 항의하며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이들이 내건 플래카드에 “농민들의 피땀을 빼앗은 비료 담합 주범 농협중앙회 규탄 및 농민 집단소송 선포 기자회견”이라고 쓰여 있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지난 2012년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소속 농민들이 서울 서대문 농협중앙회 앞에서 비료 제조업체들의 입찰 담합에 항의하며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이들이 내건 플래카드에 “농민들의 피땀을 빼앗은 비료 담합 주범 농협중앙회 규탄 및 농민 집단소송 선포 기자회견”이라고 쓰여 있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1심 판결까지 무려 8년이 걸렸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말하는 소비자보호가 이런 건가요?” 이무진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정책위원장에게 지난달 30일 비료값 담합 사건 손해배상 재판 1심 승소 뒤 남은 감정은 답답함이었다. 이 위원장은 4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8년이나 걸린 소송 탓에 피해자 일부가 이미 돌아가시거나, 농촌을 떠나 연락이 닿지 않는 분들도 있다. 그나마 소송에 참여해 배상받는 농민은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비료담합사건은 남해화학·삼성정밀화학 등 13개 화학비료업체가 1995~2010년까지 15년간 짬짜미로 비싼 값에 농민들에게 비료를 공급하다가 적발된 사건이다. 공정위가 2012년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828억원을 부과했다.

곧바로 농민 4만5천여명이 피해배상 소송에 나서 8년 소송끝에 우선 1만8천여명이 1심에서 승소판결을 받아냈다. 하지만 당시 비료업체들의 부당수익이 1조6천억원에 이르는데, 법원이 농민에 매긴 배상액은 58억원(원금 39억·이자 19억)에 불과하다. 업체들은 공정위 과징금과 피해액을 토해내고도 불법행위로 1조5천억원짜리 남는 장사를 한 셈이다.

비료담합 사건은 공정위가 기업의 불법행위을 확인해도, 피해자들은 실질 배상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기업 쪽이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 ‘모순’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무엇보다 소송기간이 무려 8년이나 됐다. 농민들이 직접 피해 규모를 증명하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뺏겼기 때문이다.

피해 농민들은 공정위의 소극적인 태도를 문제 원인의 하나로 꼬집는다. 공정위의 전문인력들이 대규모 담합사건을 조사하면서, 막상 제품별 소비자 피해단가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평범한 소비자들은 당국 발표로 불법행위를 확인하고도, 피해액을 증명하지 못해 배상받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실제 비료담합의 경우, 피해농민들이 1995년부터 2010년까지 일일이 비료구입 영수증을 모은 뒤, 경제분석 전문가에 의뢰해 담합값과 정상값의 차이(피해액)를 뽑은 뒤에야 소송에 나설 수 있었다. 여기에 들어간 비용만 1억5천여만원이다. 이 과정에서 소송 소멸시효가 지난 피해자들은 아예 피해구제 대상에서 제외됐다.

사건 당시 공정위는 2010년 기준 짬짜미한 가격과 정상값과 차이가 1022억원(21%)라는 사실을 확인하고도 피해자들이 소송에 쓸만한 정보를 산정해 공개하지 않았다. 법조계에서는 공정위가 ‘피해구제 지원’을 위해 과징금액 뿐 아니라 기업의 제품별 부당이득액을 산출·공개해 소비자들이 배상소송에 손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지적한다. 소송을 맡았던 송기호 변호사(정부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위원)는 <한겨레>에 “공정위가 담합·독과점사건에서 제품단위당 피해액을 산정·공개하지 않으면서, 소비자는 소송을 통한 피해구제가 힘겨워지는 반면 불법행위를 한 기업들은 소멸시한(3년)을 버틴 뒤 막대한 부당이익을 챙기는 구조가 정당화되는 모순을 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공정위 관계자는 <한겨레>에 “공정위의 기업 짬짜미 제재는 답합행위 자체가 핵심이고 소비자 피해액은 부차적인 부분인데다, 현실적으로 제한된 조사·경제분석 인력이 일부 사건에만 개별제품 피해액을 산정해주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기업이 영업비밀이라고 주장하면 갖고 있는 자료도 내줄수 없는 등 현행 제도나 인력 개선이 필요한 부분도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에선 이번 사건이 대규모 소비자피해를 구제할 집단소송법 제정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는 평가도 나온다. 당시 비료담합 기업들이 당시 시장을 100% 가까이 지배했던 만큼, 이번 사건의 실제 피해 농민은 100만명을 훌쩍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기업을 상대하는 소송에 대한 부담감과 불확실한 승소 가능성 탓에 소송 참여 농민은 4만5천여명에 불과했다. 집단소송법이 있었다면 50명 넘는 피해자가 승소한 뒤 나머지 농민들은 남김없이 배상받을 수 있었다. 송 변호사는 “이번에 소송을 제기하지 못한 농민들은 3년 소멸시효가 지나 단 1원도 배상받지 못하게 됐다”며 “피해 소비자의 손해배상이 지나치게 어려워 결과적으로 기업의 독과점 담합을 조장하는 현행 구조를 깨야한다”고 말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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