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집단 소속기업 이사회가 올해도 상정 안건의 99%를 원안 그대로 통과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총수 일가가 이익 챙기기 좋은 회사의 이사를 맡는 경우가 많아 책임경영을 감시할 이사회 구실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정거래위원회가 9일 낸 ‘2020 공시대상기업집단 지배구조 현황’을 보면, 지난해 5월 이후 1년 동안 대기업집단 58곳 소속 상장사 266곳의 이사회 상정 안건 6271건 가운데 6240건(99.5%)이 원안 가결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99.6%)보다 0.1%포인트 줄어든 수치다. 특히 계열사끼리 대규모 일감을 몰아주는 내부거래 안건은 692건 가운데 691건(99.9%)이 원안대로 통과됐다. 한해 이사회로부터 단 한건의 안건도 제동이 걸리지 않은 대기업집단이 27곳이나 된다.
그나마 사외이사 제도나 전자투표제를 비롯한 경영진 견제수단은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 올해 대기업집단에서 사외이사의 이사회 참석률은 96.5%였다. 지난해(95.0%)보다 1.5%포인트 높아진 수치로, 최근 5년을 비교해도 가장 높다. 감사위원회가 202곳으로 지난해보다 11곳 늘어나는 등 내부위원회 설치도 법적 기준을 훌쩍 넘었다. 하지만 경영진의 이사회 최종 의사결정 때는 정작 실질적인 구실을 못하면서 ‘99% 거수기 이사회’ 논란이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
이사회가 제대로 구실을 못하는 상황에서 총수일가가 사익 챙기기 좋은 주력기업 등의 이사로 참여하는 비율은 높아지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 총수일가가 이사로 있는 회사는 전체 주력회사 123곳 가운데 49곳(39.8%), 사익편취 규제대상 회사는 195곳 가운데 107곳(54.9%)이었다. 경영진이 사익을 우선하지 못하도록 이사회 구실을 강화해야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경제 공정위 기업집단정책과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총수일가 등이 주력회사 이사로 경영책임과 이익을 함께 챙기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이들이 사익을 챙기지 못하도록 이사회가 구실을 해야한다”고 설명했다.
홍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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