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초기인 ㅈ씨는 진료를 위해 병원을 찾았다가 의사로부터 처방전과 별도의 ‘건강식품 지침서’를 받았다. 태아 뇌발달을 돕기 위해 임신부의 엽산제 복용이 필수적으로 권장되는데, 지침서에는 특정 회사 건강기능식품이 ‘V’(브이)자로 체크돼 있었다. 지침서 상단에 의사 이름과 환자명까지 적혀 있는 터라, 다른 제품을 선택하기도 어려웠다. 산부인과처럼 아이 건강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제품 구매에서 병·의원에서 제시하는 의견을 거부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ㅈ씨는 병원과 거래를 맺은 특정 건강기능제품의 구매를 유도하는 이른바 ‘쪽지 처방’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5일 산부인과 등 병·의원과 거래를 맺고 ‘쪽지처방’을 유도해 제품을 팔아온 건강기능식품 전문유통업체 에프앤디넷에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7200만원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에프앤디넷은 2011년부터 8년여간 소비자들이 자사 제품을 구입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거래중인 병·의원 100여곳에서 쪽지처방을 내도록 유도했다. 병원 등에서 ‘쪽지처방’을 내도록 해 병원을 찾은 환자들이 자사 제품을 구매하는 게 더 좋은 것처럼 오인시킨 것이다. 처방전과 별개로 의사나 간호사들이 ‘쪽지 처방’을 주면, 건강기능식품도 웬만해서 병·의원쪽 의견을 따른다는 점을 노렸다.
업체 쪽은 ‘쪽지 처방’에 대한 대가로 판매수익 일부를 병·의원 쪽에 돌려줬다. 병·의원과 제품 공급계약을 맺으면서, 판매수익의 50%를 보장하는 조건으로 병·의원 내 매장에서 경쟁사 제품을 취급하지 않는 독점 판매 조항을 넣었던 사실도 확인됐다. 일반적으로 의약품은 의사 처방이 필요하지만, 건강기능식품은 의사 처방없이 필요한 성분이 들어간 여러 제품 가운데 소비자가 선택하면 된다. 다만 에프앤디넷은 공정위가 조사에 착수한 뒤인 2019년 8월부터 제품명이 포함된 쪽지처방 양식을 없애고, 일반적으로 환자들에게 필요한 ‘영양소’만 기재한 지침서로 문제를 시정했다.
이지훈 공정위 제조업감시과장은 “병·의원에서 의료인이 특정 제품명을 적어 쪽지처방을 내면, 소비자는 다른 제품보다 더 좋은 것이어서 추전한 것이라고 오인할 우려가 있다”며 “의료인이 소비자에게 특정 회사 제품을 추천하도록 한 영업방식이 소비자의 선택권을 침해할 수 있는 불공정행위라고 봤다”고 설명했다.
홍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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