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웨이항공이 중장거리 노선 공략을 위해 내년 2월부터 들여오기로 한 에어버스 A330-300 기종. 티웨이항공 제공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직격탄을 맞은 저비용항공사(LCC)들이 ‘포스트 코로나’ 시장을 겨냥한 차별화된 전략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큰 항공기를 도입해 대형 항공사 몫으로 간주하던 중거리 시장에 도전하거나 효율성을 끌어올려 가격 경쟁력 강화에 힘을 쏟는 곳도 있다. 항공 여객 상품이 무지갯빛처럼 다채로워지고 있다.
5일 항공업계 말을 종합하면, 국내 최대 저비용항공사 제주항공의 김이배 대표는 ‘최근 회사 주요 이슈에 대한 고찰’을 주제로 한 영상 브리핑을 통해 “저비용항공 사업모델은 단일 기종으로 단거리 노선에 집중해 효율성과 저비용을 극대화하는 것”이라며 “대형 항공기 도입은 기종 다양화에 따른 초기 투자, 복잡화로 인한 비용(Complexity cost) 등을 극복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뒤에나 고민할 거리”라고 밝혔다.
김 대표는 이어 “당장은 연료 효율성과 운항 거리가 강화된 차세대 소형 항공기 맥스 도입 준비에 만전을 기해 달라”고 덧붙였다. 맥스는 제주항공이 운항 중인 ‘보잉 737 엔지’의 업그레이드 기종이다. 기존 항공기와 같은 기종이라 조종사 훈련 및 정비 교육 부담이 커지지 않으면서 효율성은 높다. 큰 비용이 뒤따르는 과감한 투자보다 비용 효율성을 높여 재무적 안정을 꾀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김 대표의 발언은 경쟁사들이 대형 항공기와 중거리 노선 쪽으로 눈을 돌리는 전략을 내놓는 데 대한 대응 성격이 짙다. 앞서 티웨이항공은 지난달 “큰 비행기를 도입해 중·장거리 국외 노선 운항에 도전하겠다”며 중대형 기종(A330-300) 3대를 내년 2월부터 순차 도입하는 임대차 계약을 에어버스와 맺은 사실을 공개한 바 있다. 도입키로 한 기종은 승객 300명 이상을 태우고 최대 1만1750㎞까지 비행할 수 있다. 현재 이 항공사는 최대 189명까지 태울 수 있는 소형 항공기 27대만 운항 중이다. 티웨이항공 쪽은 “새로 도입할 항공기는 싱가포르, 하와이 호놀룰루, 크로아티아, 호주 시드니까지 운항할 수 있다”며 “코로나19 방역 상황에 따라 중장거리 쪽으로 노선을 확대해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티웨이항공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기종 다양화와 복잡화에 따른 비용 상승에 대해 “항공기 운항 경험이 10년 넘었다. 투 타입 운영(두 가지 기종 운항)한다고 비용이 크게 더 들지 않는다. 오히려 중장거리 노선을 추가해 영업전략을 다양화할 수 있는 장점이 크다”며 “공격적으로 노선·영업 차별화에 나서는 것으로 봐 달라”고 말했다.
이르면 오는 6월말께 첫 운항에 나서는 신생 항공사 에어프레미아는 한술 더 떠 ‘탈’ 저비용항공사를 앞세운다. 스스로를 ‘하이브리드 항공사’라고 구별 짓는다. ‘풀서비스항공사’(FSC·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와 ‘저비용항공사’(진에어·제주항공·티웨이·에어서울·에어부산 등)로 형성된 항공 시장 틈새를 공략하겠다는 취지다. 회사 쪽은 “항공기 모두 복도가 2개 있는 중대형이다. 좌석도 비즈니스석(PE급) 56석과 이코노미석 250석으로 구성된다. 이코노미석은 대형 항공사 항공기보다도 넓다”며 “3시간 넘는 비행 때는 기내식을 제공하고, 수화물도 대형 항공사 수준으로 제공된다”고 말한다. 이 업체는 보잉사의 중대형 항공기 ‘드림라이너 787-9’ 3대를 도입하기로 계약을 맺었고, 지난달 2일 1호기를 인천국제공항으로 들여와 시험비행에 투입한 바 있다.
아시아나항공 인수로 국내 유일 국적 항공사가 된 대한항공의 항공기들. 한겨레 자료사진
지난 4월2일 신생 항공사 에어프레미아가 인천국제공항에서 1호 항공기(보잉 드림라이너 787-9) 도입 행사를 하고 있다. 에어프레미아 제공
항공사들의 차별화된 전략은 이용자 입장에선 여객 상품 다양화와 가격 인하로 이어질 수 있다. 중장거리 노선 항공기를 종전보다 싼 값에 이용하고, 기존 단거리 노선도 더욱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뜻이다. 대형 항공사도 저비용 항공사들의 ‘도전’에 맞불을 놔 기존 상품 가격을 더 내릴 수도 있다.
문제는 코로나19 대유행이 언제쯤 종식돼 하늘길이 활짝 열릴 수 있느냐이다. 이 시기가 늦어지면 공격적인 변신을 꾀하는 항공사들이 새 전략 추진을 뒤로 늦추거나 자칫 구조조정 회오리에 휘말릴 수 있다. 에어프레미아의 경우 코로나19 대유행이 오래 갈 것을 염두에 두고 당분간은 국내 단거리 노선에 집중하는 쪽으로 사업모델을 수정하거나 화물 운송에 집중하는 등의 비상 시나리오를 마련해 두고 있다.
김재섭 선임기자
js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