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오후 부산신항 4부두에 위치한 에이치엠엠피에스케이신항만(HPNT) 야적장 모습. 수출 화물을 담은 컨테이너들이 가득 쌓여 있다. 항만 관계자는 “장치율(컨테이너 적재능력 대비 적재량)이 90% 후반대”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 대유행 이전에는 70%대에 그쳤다.
“절대 안 됩니다.”
마스호에 화물 컨테이너가 레고 블록 쌓아지듯 높게 실리는 모습을 좀 더 가까이서 보기 위해 차(직원들이 터미널 부두 작업 상황을 돌아볼 때 쓰는 승용차)에서 내리려고 하자 안내 직원이 다급히 손사래를 쳤다. 하역장과 원양 선박은 코로나19 방역에 남다른 신경을 쓰고 있는 곳인 데다 최근 부산신항 배후 물류센터에서 노동자 사망 사건이 발생한 터라 외부인은 하역장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하고 있단다. 안내 직원은 “하역장이나 정기 노선 선박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와 폐쇄되면, 이곳 야적장과 하역장이 마비 상태에 빠지는 것은 물론이고, 국내 기업들의 수출물량 운송 길이 막히게 된다”고 다시 한 번 다짐시켰다.
지난 25일 오후 찾은 부산신항 4부두에 자리 잡은 에이치엠엠피에스에이신항만(HPNT) 터미널에는 전날 밤 10시 들어온 1만TEU(24피트짜리 컨테이너·긴 컨테이너는 2TEU)급 선박 ‘에이치엠엠 마스호’ 등 컨테이너선 3척이 일렬로 서서 싣고 온 화물을 부리고 싣고갈 화물을 싣느라 분주했다. 급증한 물동량을 소화하기 위해 항만은 전례 없이 컨테이너로 꽉꽉 들어차고 노동자들의 손길은 바삐 움직였지만, 코로나19의 흔적은 짙게 드리우고 있었다.
우선 정기 노선 선박 선원들의 고충이 말이 아니란다. “정기 노선에 투입된 배는 2개월(미주 노선)~3개월(유럽 노선) 간격으로 부산항을 들려요. 코로나19 대유행 이전에는 부산항에 정박해 화물을 부리고 싣는 동안(보통 이틀 정도) 선원들은 가족들을 만나지만. 코로나19 대유행 이후에는 이게 금지됐어요. 6~7개월 단위로 교대해 2개월 휴가를 가기 전에는 전 세계 어느 항구에서든 배에서 내리지도 못합니다.”
지난 25일 오후 에이치엠엠(HMM)이 ‘디 얼라이언스’ 해운동맹 정기 노선에 투입한 1만TEU급 ‘에이치엠엠 마스호’가 부산항에 들어와 화물을 싣고 있다. 이 배는 부산항서 3629TEU 분량의 화물을 싣고 26일 새벽 미국 엘에이(LA)항을 향해 출발했다.
항만 터미널 운영사 직원은 “정기 노선 선박은 코로나19 청정 구역으로 관리되고 있다. 항만 직원이 배에 올라 서류에 서명할 때도 방호복으로 완전 무장하고, 내린 뒤에는 이동하거나 머물렀던 장소를 모두 꼼꼼히 소독한다”고 말했다. 이에 정기 노선 투입 선박들은 말 그대로 노선버스가 정류장을 지나듯이 부산항을 거쳐 간단다. 마스호도 화물을 부리고 싣는 작업이 끝나자마자 26일 새벽 5시 미국 엘에이항을 향해 출발했다.
사실 미주 쪽 수출물량 운송이 병목현상을 빚는 것 역시 물동량 증가 요인도 있지만, 미국 일부 항구 터미널서 확진자가 나와 하역장이 폐쇄되면서 하역 작업이 지연된 탓이 크다고 한다. “터미널 야적장의 컨테이너 적재능력이 5만3755TEU인데, 오늘 기준 장치율(적재능력 대비 실제 적재량)이 90%대 후반입니다. 코로나19 대유행 이전(장치율 70%대)에 견주면 컨테이너 1만개가량이 더 쌓여 있다는 얘기죠. 인근 한진 터미널과 건너편 1·3·5부두 쪽 사정도 다르지 않아요.”
지난 25일 오전 에이치엠엠 부산지사 ‘선박 종합상황실’ 모습. 지난해 9월 문 연 이곳에서는 에이치엠엠 원양 선박 가운데 스마트십 기능이 탑재된 배들의 운항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고, 유사시 선박 원격 조종도 할 수 있다. ‘디지털 트윈’ 선박 구현에 필요한 선박 운항 빅데이터 수집 업무도 하고 있다.
그럼에도 폭증한 물동량 해소는 해운업체의 1차 과제였다. 특히 가격 협상에 상대적 열위인 수출 중소기업들의 볼멘소리는 갈수록 커지는 상황이다. 앞서 해양수산부는 에이치엠엠·중소기업중앙회 등과 대책회의를 열기도 했다.
해운업체 관계자는 “중소 화주 쪽의 얘기를 들어보면, 배 부족 문제보다 글로벌 해운사들의 덤핑이 사라진 데 따른 체감 운임 부담 상승 해소를 요구하는 쪽에 가깝다”고 말했다. 해운 불황기 시절 중소 화주들의 스폿(spot) 화물을 대상으로 삼던 덤핑 운임이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사라지면서 급등한 운임이 수출 중소기업들의 부담을 키우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 관계자는 “중소 화주들이 ‘왜 한진해운을 죽여 이런 상황을 초래했느냐’며 정부를 압박하면서 에이치엠엠에 임시선박 투입을 요구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에 에이치엠엠은 지난해 8월 이후 25차례에 이르는 임시선박 전부를 부산항에서 띄워 국내 중소기업들의 스폿 화물을 우선 싣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글로벌 대형 해운사들은 임시선박을 중국에서 띄운다. 중국은 선복 부족 현상이 더 심해 운임 마진이 좋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돈벌이를 잠시 뒤로 미뤄두고 국내 중소기업의 애로에 대응하고 있다는 항변이다. 실제 이 회사는 5천~6천TEU급 선박과 특수화물 운송 때 쓰는 다목적선까지 임시선박으로 편성했다. 29일에도 1800TEU급 다목적선 ‘에이치엠엠 두바이호’를 미주 쪽으로 투입했다. 이 배는 다음달 30일 미국 뉴욕항에 도착할 예정이다. 앞서 24일에는 6300TEU급 컨테이너선 ‘에이치엠엠 오클랜드호’를 미주 쪽으로 투입했다.
다만, 에이치엠엠 쪽은 임시선박 투입 때 받는 운임 할인 폭은 공개하지 않았다. “한국 해운사가 운임을 싸게 받는 게 소문나면 글로벌 해운사들이 배를 부산항에 대지 않으려고 해 선복량 상황이 악화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만 말했다. 부산신항/글·사진 김재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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