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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산업·재계

독수리처럼 ‘전술비행’ 내리박자 기자는 할 말을 잃었다

등록 2021-06-15 14:30수정 2021-06-15 15:13

첫 국산 기동헬기 ‘수리온’ 시승기
조종사 만세 자세로 선보인 ‘자동비행’은 야간·악천후 때 유용
뒤집어지고 진땀 줄줄 나는데 “사천만 경치 좋죠?” 농담 건네
성능·결함 개선했다지만…수출·민간 쪽 반응은 ‘글쎄, 아직은’
육군에 납품된 첫 국산 기동헬기 ‘수리온’ 모습.
육군에 납품된 첫 국산 기동헬기 ‘수리온’ 모습.

지난 4일 오후, 경남 사천시 한국항공우주(KAI·이하 카이) 헬기 이착륙장.

‘해병대’ 문구가 선명하게 박힌 독수리 날개 색깔 헬기 한대가 힘찬 날개짓으로 세찬 바람을 일으키며 앉아 있다. <한겨레> 취재진을 태우고 시범 비행에 나설 첫 국산 기동헬기(KUH) ‘수리온’ 시제(양산에 앞서 시험 제작) 3호기다. 수리온은 독수리의 ‘수리’에 숫자 100을 의미하는 순우리말 ‘온’을 더한 말로, ‘완벽한 헬기’란 뜻을 갖고 있다.

 악천후 때도 침투·구조작전 가능하게 해주는 정지·자동 비행

헬기 이착륙장 옆 컨테이너 건물 안 브리핑장에서 시승 일정·경로와 주의사항을 듣고 안전장비를 착용한 뒤 헬기에 오르는데, 내부가 완전 ‘생얼’이다. 시제기라 내부 인테리어를 안해, 헬기 속 뼈대와 그 사이를 신경망처럼 지나가는 전원·신호제어 케이블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조종석과 탑승객 좌석 역시 거칠기 그지없다.

수리온 시제 3호기는, 수리온에 해병대 상륙작전 지원 기능을 더한 파생 헬기 ‘마린온’ 시제기로 만들어졌다. 조종사 2명, 기관총 사수 2명, 완전군장 병력 9명 등 총 13명이 탑승할 수 있게 설계됐다. 지금도 마린온 기능·성능 개선 테스트용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날 시승에는 <한겨레> 취재진, 카이 홍보실 직원, 엔지니어, 조종사 등 총 10명이 탑승했다.

“이륙하겠습니다.” 근처 공군부대 관제탑으로부터 이륙허가를 받은 조종사가 헤드셋을 통해 이 말을 하며 조종간을 조작하자 날개가 더욱 요란하게 돌며 헬기가 떠올랐다. 첫 단계 시범비행은 지상 정지비행이다. 잠시 떠오르는가 싶더니 그 자리에서 꼼짝도 않고 서 있다. 조종사는 만세 자세로 조종간에서 손을 완전히 뗐다는 포즈를 취했다. “자동 정지비행 모드”라고 설명했다.

조종사가 다시 조종간을 조작하자, 헬기가 300m 높이로 상승하며 사천만 바다를 향해 날아간다. 위성항법장치(GPS)에 미리 입력해둔 노선을 따라 목표 지점을 향해 자동으로 날아가는 기능도 시연했다. 조종사는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야간이나 악천후 속에서도 침투·구조 작전을 가능하게 해주는 기능”이라고 설명했다.

“저 아래 사천만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첫 출전시켜 왜군 함선들을 격퇴한 바다입니다. 저 옆으로 오션 뷰 골프장이 보이시죠. 저 골프장 속 리조트는 배우 배용준씨가 신혼여행을 왔던 곳입니다.” 화창한 날씨 덕에 고사리밭이 바둑판 모양으로 조성된 섬들과 그 사이를 잇는 대교 등 다도해 경치가 발밑으로 펼쳐지는 가운데 조종사의 400여년 역사를 넘나드는 달달한 ‘서비스’ 멘트가 이어졌다.

제주도 소방청에 납품돼 구조용으로 사용중인 수리온 모습
제주도 소방청에 납품돼 구조용으로 사용중인 수리온 모습

경찰에 납품된 수리온이 독도 상공을 날고 있다.
경찰에 납품된 수리온이 독도 상공을 날고 있다.

 사천만에 갑자기 적의 대공포 기지?

“앗! 앞에 보이는 섬 뒷편에 적의 대공포 기지가 있다는 정보가 입수됐습니다. 적의 대공포 공격을 피하기 위해 이제부터는 전술비행을 하겠습니다.” 조종사 말이 끝나기 무섭게 헬기가 바다를 향해 곤두박질치더니 수면에 붙어 섬 속으로 스며든다. 이어 계곡 속과 능선 옆으로 붙어 비행하고, 계곡을 벗어나거나 능선을 넘은 뒤에는 다시 건너편 계곡과 능선 허리춤을 따라 미끄러지듯 날기를 반복했다. 그 때마다 탑승자들의 눈에 보여지는 창 밖 장면은 내동댕이쳐진 카메라에 찍힌 영상 화면처럼 급변했다. 동시에 탑승자들은 속이 뒤집어지고 진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임진왜란 때 거북선을 맞닥트린 왜군들이 이러지 않았을까. 이런 긴장된 비행이 서너 차례 반복된 뒤에야 전술비행 시범이 끝났다.

“괜찮으십니까? 사천만 경치 좋죠?” 헬기가 ‘전술비행으로 적 대공포 기지에 접근해 기관총으로 초토화’시킨 뒤 다시 바다 위로 나선 뒤 조종사가 뒤를 돌아보며 웃는 얼굴로 묻는다. ‘너 같으면 괜찮겠냐?’라는, 감정 섞인 반문이 목까지 올라왔으나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 전술비행을 다시 했다면 그 때는 아마도 큰 소리로 내뱉었을 거다. 출발 지점으로 복귀할 때는 전술비행 대신 바다 수면 위에서 자동으로 정지비행을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조종사는 “바다에서 헬기를 이용해 조난자를 구하거나 해병대가 침투 작전을 수행할 때 유용한 기능”이라고 설명했다.

헬기가 출발지에 착륙하면서 30분 가량의 시승은 끝났다. 헤드셋을 벗고 헬기에서 내려 서로의 얼굴을 보니 ‘할 말이 많지만 할 수 없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나이 순으로 얼굴 빛이 노랬는데, 중간쯤 나이의 기자도 전술비행 멀미로 속은 뒤집어졌고, 등과 얼굴에는 식은 땀이 흘렀다. 동승했던 카이 홍보팀장은 “오늘 전술비행은 실제 군 작전 때 만큼이나 강도가 셌다. 조종사가 기자들을 싫어하거나 무슨 기분 나쁜 일이 있었던 것 같다”는 농담을 건넸다.

첫 국산 기동헬기 수리온 조립라인 모습.
첫 국산 기동헬기 수리온 조립라인 모습.

 수리온 ‘명품’서 ‘깡통’으로 전락?

헬기 시승에 앞서 수리온 개발 과정 비리에 대한 감사원 감사 결과를 전하는 <한겨레> 기사(2017년 7월18일치 ‘‘명품’에서 ‘깡통’으로 전락한 수리온’)를 봤다. 기사 내용을 보면, 수리온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6월부터 6년간 1조2950억원을 투자해 이명박 정부(2012년 6월)에서 개발이 완료된 최초의 국산 기동헬기다. 노후화된 군용 헬기를 대체하고 국내 헬기 개발 역량을 확보하기 위한 사업이었다.

하지만 ‘명품 헬기’를 표방했던 수리온은 감사원 감사 결과 ‘깡통 헬기’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프로펠러가 동체에 부딪히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고, 결빙 환경에서 비행 중 표면이 얼어붙을 수 있는 결함 등이 발견됐다. 하지만 방위사업청은 2009년 1월 사업 일정 촉박 등을 이유로 체계 결빙 성능시험 등을 나중에 하기로 하고 시험평가를 생략한 채 수리온을 납품받았다. 이에 2015년 세 차례나 헬기가 추락하기도 했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은 각각 수리온을 직접 시승하면서 ‘국가영토 수호’, ‘항공산업 발전’ 등의 찬사를 보냈다. 정부는 ‘명품무기’, ‘수출 동력’, ‘기술 자립’ 등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수리온의 개발과 실전 배치를 홍보해왔다. 하지만 감사원 조사로 드러난 수리온의 부실과 관련 기관들의 비리는 이러한 극찬들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결국 수리온의 ‘추락’은 방위산업 비리 전반에 칼을 대는 결과로 이어졌다. 감사원 보고를 받은 문재인 대통령은 “방위산업 비리는 단순 비리가 아니라 안보에 구멍을 뚫는 이적행위에 해당한다”며 “방산비리 척결은 보수·진보의 문제가 아닌 애국과 비애국의 문제로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적폐청산 과제”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개별 사건 처리로 끝내지 말고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그 결과를 제도개선과 연결시키는 국가적 노력이 필요하다”며 방위산업 비리 전반을 개선하라고 지시했다.

카이가 개발 중인 소형 무장헬기가 시험비행 전 점검을 받고 있다.
카이가 개발 중인 소형 무장헬기가 시험비행 전 점검을 받고 있다.

카이가 개발 중인 소형 무장헬기 옆 모습.
카이가 개발 중인 소형 무장헬기 옆 모습.

카이가 개발 중인 소형 무장헬기가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카이가 개발 중인 소형 무장헬기가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카이 “성능 개선”…수출·민수 쪽 반응은 “글쎄”

카이는 수리온의 이런 ‘흑역사’와 관련해 “수리온은 지금 4차 양산 단계다. 감사원 감사는 개발 과정과 1·2차 양산 단계를 대상으로 삼았는데, 지금은 모두 개선된 상태이다. 지금은 다양한 민수용 파생상품들까지 만들고 납품하고 있다”고 밝혔다. 2018년에도 해병대 작전 중 마린온이 추락하며 인명사고까지 낸 것에 대해서는 “분명한 인재였다. 프랑스 부품회사가 수냉식 부품을 공냉식이라고 보내와 발생한 사고였다. 이후 부품을 프랑스 정부가 보증하고, 카이가 장착 전 전수검사하기로 절차를 바꿨다”고 설명했다.

수리온은 지금까지 육군·해병대 납품물량을 포함해 총 160여대가 만들어졌다. 일부는 경찰·해양경찰·소방청·산림청 등 민수용으로 공급됐다. 지금은 경남소방청과 중앙119 등에서 주문받은 것들을 만들고 있다. 하지만 민간기업 주문과 수출은 아직 한 건도 없고, 국가·정부기관과 지방자치단체 주문도 소량에 그친다.

카이는 <한겨레>에 “국가기관·정부기관마다 다른 헬기 기종을 운용해 유지비용이 많이 든다. 국산 기동헬기 수리온의 민수용 파생상품이 다양하게 만들어지고 있지만, 구매 담당자들이 국산 선택 용기를 내지 못하는데다 외산을 구매해야 외국 출장이라도 가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배제되고 있다. 외산 기종에만 있는 기능을 고집해 수리온을 제외시키는 사례도 있다”고 밝혔다.

카이는 수리온 성능 개량과 파생형(주문에 따라 수리온 기능 변경·추가) 상품 제조와 함께 ‘소형 무장헬기(LAH)’와 ‘소형 민수헬기(LCH)’도 개발하고 있다. 기어박스와 동력전달장치 등 핵심 부품 국산화와 차세대 고기동 헬기 개발에도 나서고 있다. 전기 항공기 실증기를 개발해 도심항공교통(UAM) 사업에 참여할 계획도 갖고 있다.

사천/글 김재섭 선임기자 jskim@hani.co.kr, 사진 카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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