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서초구 일대의 모습. 연합뉴스
“‘이제야 제값 받기 시작한 집값이 이 연구 때문에 다시 떨어졌다’는 원색적인 비난에 직면할까 두렵다.”
연구 결과대로만 하면 집값이 떨어질 것이라는 자신감이 보이는 대목인데, 도대체 어떤 ‘비법’을 찾았기에 집값 하락까지 걱정하는 것일까. 최근 ‘국책연구소마저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을 비판했다’고 보도된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의 ‘부동산 시장질서 확립을 위한 중점 대응전략’ 보고서 얘기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주관으로 국토연구원·한국주택금융공사 주택금융연구원의 연구진 20여명이 참여한 이 연구는 보고서 분량만 700여쪽에 달할 정도로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언론 보도 뒤 주관연구기관인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은 설명자료를 내어 “해당 연구의 주된 목적과 내용보다는 결론 부분의 일부 내용과 표현을 지속적으로 인용 및 재인용하여 보도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표시”한다는 뜻을 밝혔다. “해당 보고서가 부동산 가격폭등의 원인이 현 정부 부동산정책에 있다고 결론을 내린 것으로 오해할 수 있도록 보도”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부동산 정책상 한계의 원인이 특정 정부의 부동산 정책 내용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전 정부부터 누적되어 온 공공부문의 총체적·구조적 부패를 주된 원인으로 진단”했다는 것이다. 사실상 ‘부동산 적폐’를 찾아냈다는 것인데 정말일까. 그래서 이렇게만 하면 ‘집값이 하락한다’고 자신한 것일까. 700여쪽에 달하는 보고서를 뜯어봤다.
“기획재정부 부동산 정책에서 배제해도 할말 없다”
해당 보고서는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이 주도한 만큼 부동산 정책을 법제적으로 접근한 부분이 가장 돋보인다. 국토연구원과 주택금융연구원이 담당한 부분은 ‘전문가 인터뷰’ 방식으로 연구가 진행되었기 때문에, 연구 내용 자체가 시장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단순히 전달·반영한 수준에 불과해 사실상 연구자들이 연구를 통해 결론을 내렸다고 보기 어려운 수준이다.
보고서의 ‘제18장 부동산대응법제의 형사정책적 맹점’을 보면 한국 부동산 정책의 난맥상은 법적 체계에서부터 시작된다. “부동산 정책의 핵심이 주택법에 있는지조차 명확하지 않”고 “100여개의 부동산정책 관련 법률 간에 특별한 체계성을 찾기 어렵”다며 “법제부터가 체계없는 혼돈(chaos) 속에 빠져있는데 이를 ‘부동산’이라는 임의의 범주로 묶은 정책이 체계적으로 추진될 것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생산·공급·유통·소비 등 네 부문에서 정부, 학계, 시민단체, 업계 각각 전문가 4명씩 16명과 진행한 토론회를 텍스트 분석한 결과 “공급 부문을 제외하고는 ‘주택’이라는 단어의 비중이 높지 않았고 ‘주거’나 ‘복지’ 등의 단어는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며 “주택정책이 아니라 부동산정책이라는 용어가 현 정부 정책을 대표하게 된 배경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부동산정책이 주택정책을 압도하게 된 원인으로는 ‘기획재정부’가 몸통으로 지목됐다. 보고서는 “부동산 조세정책 전담 부처가 총괄 역할을 수행하니 부동산 조세정책부터 전면에 내세울 수밖에 없고, 소관법률인 종합부동산세 과세의 정당성을 ‘굳이’ 강조하다보니 1주택 이외의 모든 주택 소유자를 ‘부동산 종합대책 전반에 걸쳐 규제해야할 다주택자’로 취급하는 상식 밖의 접근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추정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나아가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지만, 재경직 공무원들이 부동산정책 수립의 전면에 나선 시기마다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다”며 “이 정도로 불안한 상황이라면 총괄 역할이 아니라 아예 부동산정책 일선에서 배제해도 할 말이 없을 상황”이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다주택자를 판별해내 대응할 수 있다는 주장은 허구”
해당 보고서의 방대한 내용 중에서 특히 언론이 주목했던 대목은 ‘다주택자 규제’를 비판한 대목이었다. 실제 이 보고서는 결론 부분에서 “실정의 책임을 일반국민의 탓으로 전가하고, 부동산을 통한 개인의 불로소득부터 바로잡겠다고 국민들을 향해 징벌적 과세 수준의 애먼 칼을 빼든 것”이라고 적었다. ‘징벌적 과세’는 보수·경제지가 종부세 등 보유세 강화 정책을 비판할 때 쓰는 단골 표현이라, 사실상 보고서가 보유세 부담 완화를 주장하는 시장의 입장을 수용한 것처럼 읽힌다.
하지만 보고서가 다주택자에 대한 세금 규제를 비판한 맥락은 시장의 접근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우선 보고서는 ‘다주택자’라는 개념이 법률적으로나 현실적으로도 성립하기 어려운 “허구”라고 주장한다. 당장 단독명의로 소유된 주택보다 소유자가 복수인 공동명의가 훨씬 많다. ㄱ이라는 사람이 A주택은 2분의 1, B주택은 4분의 1, C주택은 16분의 1씩 가지고 있는 사례를 들어 “지분만으로는 주택 1채를 온전히 소유하고 있지 않은데 다주택자로 봐야할까? 냉정히 말하자면 16분의 13, 0.8채 정도를 소유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무주택자라고도 말할 수 있다”는 아이러니를 지적하기도 했다.
특히 보고서는 ‘징벌적 과세’라는 조세 부담 문제보다 조세형평성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 “보유주택 수에 따라 차등과세하면서 과세대상 주택에서 법인·기업 소유 주택을 사실상 제외하는 종합부동산세법”이나 “20호 이상의 단독주택 또는 20세대 이상의 공동주택을 임대하려는 임대사업자에 대해서는 주택을 우선공급하는 특혜를 부여하면서 기준과 산출근거도 부족한 2주택을 기준으로 중과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보고서는 이런 사례에 대해 “스스로 과세의 공정성을 침해하는 동시에 부동산 시장의 왜곡을 가져올 수 있다”, “대규모 다주택자에게는 그 자체가 특혜일 수 있고, 2주택자의 관점에서는 징벌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대안으로는 부동산 소유 실태 및 부동산 계수 산식을 법무정책적으로 검증하자고 제안했다. “공공과 민간, 법인과 펀드, 개인과 법인, 단독소유와 공동소유를 분간하기 어려운 이상, 다주택자를 판별해내 대응할 수 있다는 주장 역시 허구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막연하고 정확하지 않은 정보와 통계를 바탕으로 정책을 수립해 무리하게 강행한다면 그 정책이 성공하기란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시장 왜곡 현상의 배후에는 금융회사와 금융공기업이 있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은 부동산 전문 기관은 아니다. 이때문에 당초 고유사업으로 추진하던 부동산 시장질서 교란 관련 연구의 경우 ‘국토연구원도 아닌데 왜 부동산을 연구하냐’는 비판을 받거나 예산이 삭감되는 등 연구가 좌초되는 일도 있었다.(제1편 총론 중 제2절 연구추진의 경과 및 방법)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은 지난 6월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으로 개칭되었고 사업범위가 기존 형사정책에서 법무정책 전반으로 확대됐다. 지난해 8월 국토연구원 등과 함께 착수한 이번 연구에 대해 “연구원이 형사정책뿐만 아니라 법무정책 분야까지 아우를 수 있게 된만큼…우리 사회에 만연한 고질적인 부동산부패의 사슬을 끊어내고 부동산 관련 제도의 정상화를 도모할 필요가 있음을 환기하고자 한다”는 목표를 밝히고 있다.
보고서 곳곳에는 부동산 시장 안에 갇힌 ‘내부자들’은 지적할 수없는 한국 부동산의 모순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나온다. 최근의 부동산 시장 과열이 전세대출을 고리로 일어난 것이라고 보는 대목이 대표적이다. “전세자금대출이 가능한 이상, 자본이 부족한 세입자조차 전세자금재출에 편승해 전세매물을 찾게 되면서 전세수요도 늘어날 수밖에 없고 전세시장도 자연스럽게 높은 가격대를 형성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주택매매가격과 전세보증금액이 크게 차이나지 않는 수준에서 형성되면서 갭투자도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또 “이러한 시장왜곡 현상의 배후에는 은행 등 금융회사나 금융공기업이 있다”고 지목했다. “역대 정부는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등에 의한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실시하여 금융대출자금의 부동산시장 유입을 억제해왔는데, 금융회사들은 이러한 규제를 우회하여 부동산 시장에 대한 자금 지원을 더욱 확대해 왔”다며 정부의 대출규제가 시장에서 실패한 이유를 금융회사와 금융공기업이 주도한 전세대출 확대 정책에서 찾았다.
보고서는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의 ‘금부분리’(금융과 부동산의 분리)를 언급하면서, 금융자본이 투기자본으로 변질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주택소유자나 갭투자자 등 개인을 상대로 한 규제가 아니라 “실제 수익자”인 금융회사 등에 대한 부동산대출규제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금융권은 국민은행이 공시하는 ‘국민은행부동산시세’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들이 공시하는 정보는 현장의 정확한 시세정보가 아니라 금융대출의 전제가 되는 대출정보이기 때문에…금융권이 대출을 통해 투자해야할 지역과 주택의 종별을 금융회사 간에 공유하는 것”이라며 “금융회사가 실질적인 가격결정력을 가진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주식시세판처럼 주택 가격을 중계하는 케이비(KB)주택가격동향에 대한 비판도 부동산 시장 내부자들은 시도하지 않았던 접근이다.
재건축은 무조건 공공임대로?…현실과 동떨어진 제안은 한계
기존에 보도된 해당 보고서의 내용은 공공 주도 공급의 한계를 짚은 부분이나 임대차3법의 부작용 등 주로 시장주의자들의 ‘입맛’에 맞는 것들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20여명의 연구진이 개별적으로 작성한 보고서는 특정 부분에서는 시장에 대한 규제를 더욱 강화해야한다고 주장한 부분도 적지 않다. “잦은 부동산 거래 시 손해가 발생할 수 있어야 부동산 시장이 안정화될 수 있는데, 한국은 부동산 거래비용이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 지나치게 낮은 상태”라며 “토지초과이득세 부활 내지 부동산 조세 강화 및 관련 세제 간의 유기적 재조정, 디에스아르(DSR) 등 금융 대출 관련 규제의 강화 문제, 정부의 토지 비축은행 별도 설치와 평생주택 등 공공임대주택의 확대 강화 등”으로 논의의 지평을 넓혀야 한다고 제안했다. 아파트 위주 공급을 하는 재개발·재건축을 비판하면서 특히 재건축의 경우 이 과정에서 대지지분이 크게 줄어들기 때문에 공공이 대지지분을 전량 매입해 재재건축이나 2차 재건축은 공공임대로 전량 공급하자고 주장하는 대목도 있다. “아파트 공급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공공주택으로서의 사업추진과 임대주택으로서의 공급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시장의 저항이 불보듯 뻔한 ‘과격한’ 주장이다.
보고서에는 한국부동산원 폐지론도 나온다. 한국부동산원이 공개하는 실거래가 정보 등이 “오히려 부동산시장을 교란하고 있다”며 “부동산시장의 조속한 정상화를 위해서는 이 공기업 및 소관 업무의 전면 폐지 논의부터 시급히 진행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대해서도 월세에는 적합하지만 전세까지 규제하는 것은 부작용이 많으므로 민법 상 ‘전세등기’ 제도를 정상화하는 것으로 풀었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세권 등기의 경우, 최장 10년까지 거주가 보장되는데 주택임대차보호법이라는 미봉책을 썼다는 것이다.
참여연대와 민변, 민달팽이유니온이 공동으로 참여해 오는 30일 창립총회를 여는 ‘주택세입자법률지원센터’의 초대 센터장을 맡은 이강훈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실행위원(변호사)은 “전세권 설정은 매매 등 처분에 제약이 생기기 때문에 소유자들이 합의해주는 사례가 극히 드문 것으로 민법 상 전세권 설정이 주택임대차보호법보다 낫다는 주장은 거래 실정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주택 가격 급등기에 전세가 갭투자에 활용되는 문제를 보지 않고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잘못되어 문제를 키웠다고 보는 건 엉뚱한 데다 화풀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진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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