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가 연 ‘전세사기 피해지원위원회 내부 심의기준·회의록 등 정보공개청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 가구 가운데 70% 이상이 보증금 일부를 다른 담보권자에 앞서 우선 변제받을 수 있는 ‘최우선변제’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또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민간 등록임대사업자 보유주택 대부분이 법상 의무인 전세보증금 반환 보증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 기초적인 임차인 안전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한국도시연구소와 주거권네트워크가 전세사기·깡통주택 피해 1490가구의 등기부등본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분석 대상 가구의 71.2%인 1061가구가 주택임대차보호법상 소액임차인 우선변제(최우선변제 제도) 대상자가 아니었다. 주택 임대차시장에서 임차인 보호를 위한 핵심 제도에서 피해자 10명 중 7명은 비켜나가 있는 것이다.
특히 인천(431가구), 대전(238가구), 부산(338가구) 등 3개 지역의 피해자들의 평균 보증금이 각각 9245만원, 1억969만원, 9605만원으로 1억원 안팎의 비슷한 규모이지만, 최우선변제 대상자 규모에서는 큰 차이가 있었다. 인천은 피해 가구 중 60.1%(244가구)가 최우선변제 대상인 반면에, 대전은 9.7%(23가구)과 부산은 14%(47가구)였다. 이밖에 서울(246가구·피해 보증금 평균 2억921만원)은 최우선변제권 가구 비중이 25.2%(62가구)였고, 경기(123가구·2억21만원)는 10.5%(13가구)에 그쳤다. 최우선변제를 받기 위해선 지역마다 정하고 있는 보증금 상한보다 보증금액이 적어야 한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최우선변제권 대상 보증금 상한이 지역별 시세 등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며 “상당수 피해자들에게 제공된 중소기업청년대출이나 버팀목 등 정책 대출의 한도가 1억원 이상으로 최우선변제 보증금 상한을 넘어서는 것도 정책 엇박자”라고 지적했다. 현행 주택임대차보호법 시행령상 최우선변제 임차인 보증금 상한은 서울은 1억6500만원, 경기와 인천 일부지역 등 과밀억제권역은 1억4500만원, 대전·부산 등 대부분 광역시는 8500만원, 그밖의 지역은 7500만원이다.
민간임대주택 특별법에 따라 양도세 등 세제 혜택을 받는 대신 보증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등록임대사업자 대부분은 해당 보증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 조사 대상 임대사업자 보유 주택 483가구 중 92.3%(446가구)가 여기에 해당했다. 미가입시 지방자치단체가 보증금의 최대 10%를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지만, 실제 단속 등이 거의 이뤄지지 않아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 보증보험 미가입자는 임대주택 등록을 원천 차단하는 법 개정이 이뤄진 바 있다.
도시연구소 등이 전세사기·깡통주택 피해가구를 대상으로 지난 8월24일∼9월17일 진행한 온라인·전화·면접조사에 응답한 1569가구 가운데 17.6%(276가구)는 전세대출 상환 불가능 등을 이유로 개인 회생, 파산, 신용 회복 절차를 진행 중이거나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최 소장은 “최우선변제권, 보증보험, 6월부터 시행 중인 전세사기 특별법 등 임차가구의 피해를 방지하거나 구제해야 하는 안전망이 전반적으로 제 기능을 못한 것이 확인된다”고 말했다.
최하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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