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롯데그룹과 관련해 총수 일가의 부동산 거래 실태도 수사하고 있다고 알려집니다. 대기업의 토지 보유는 오랫동안 논쟁거리였습니다. 1995년 시행된 부동산실명제 21주년을 맞아 대기업의 토지 보유 실태를 과거 기록을 입수해 다시 한번 분석했습니다.
대기업의 토지 보유 면적과 가액이 아이엠에프(IMF) 구제금융 시기를 지나면서 크게 늘어난 사실이 <한겨레>가 입수한 과거 정부의 대기업 토지보유 현황 자료를 통해 다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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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부자 법인 기업 토지 소유 증가
1996년 11월 당시 내무부(현 행정자치부)가 만든 ‘30대 대기업 그룹 및 그 소속 임원의 토지소유현황 자료’를 보면, 1996년 11월 시점 공시지가 기준 토지 보유 1~10위 법인이 소유한 토지의 면적보다 2014년 토지 보유 1~10위 법인이 소유한 토지 면적이 18년 사이에 14.65배 증가했다. 땅부자 상위 10개 법인이 보유한 땅의 공시가격 총액도 14.86배 늘었다. 1996년 땅부자 10개 법인 중 파산한 기업은 2개뿐이다. 나머지 ‘땅부자 법인’은 지금도 여전히 재벌그룹의 핵심 법인으로 존속하고 있다.
공시지가 기준 토지 보유 1위는 동아건설산업㈜으로 2469만9067㎡(747만1467평)를 보유했다. 공시지가로 7조9289억800만원에 해당했다. 여의도 면적 290만㎡의 8.5배 규모다. 2위 선경건설㈜(현 에스케이건설)과 3위 삼성종합화학(현 한화종합화학)은 각각 1101만8789㎡와 1855만2851㎡를 소유했다. 이들 기업을 포함해 1996년 땅부자 10개 법인이 소유한 토지 면적은 모두 1억3038만9153㎡였다. 이들 토지의 전체 가격은 24조8733억2400만원이었다.
요즘은 어떨까. 국세청이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의원 쪽에 공개한 2008~2014년 법인별 토지보유현황 자료를 살펴보자. 2014년 공시지가 기준 토지보유 상위 10개 법인의 토지 면적은 19억1022만㎡(5억7784만1550평)다. 공시가액으론 369조6602억원에 이른다. 다만 법인별 소유 현황은 알 수 없다. 국세청이 국세기본법을 근거로 구체적 법인명은 공개하지 않고 1~10위 법인 소유 토지를 총합한 수치만 공개한 탓이다.
땅부자 법인 20위로 비교 대상을 확대해도 마찬가지다. 1996년과 2014년 땅부자 법인 20곳의 소유 토지 면적은 2억6048만4303㎡에서 31억446만8926㎡로 11.91배 증가했다. 대기업들이 아이엠에프를 거치면서 토지를 집중 매입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96년 땅부자 10개 법인 가운데 6개 법인이 그대로 재벌그룹 핵심 법인으로 존속하고 있다. 나머지 4개 법인 가운데 토지 자산을 처분했을 가능성이 큰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파산 절차를 밟은 기업은 2곳이다. 1996년 땅부자 11~20위 기업 중에도 6개 법인이 존속하고 있다.
‘제곱미터당 땅값’도 흥미롭다. 1996년 땅부자 법인 20곳 중 전체 순위 15위 ㈜호텔롯데와 14위 롯데쇼핑㈜의 제곱미터당 가액이 각각 1083만7440원과 282만2791원으로 1, 2위를 차지했다. 상대적으로 알짜배기 땅을 소유한 것이다. 업종 특성상 도심에 자리잡은 토지가 많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전체 순위 5위의 삼성생명 토지의 제곱미터당 가격이 115만3317원으로 3위였다. 노태우 정부가 ‘5?8 조치’ 등 강력한 재벌 부동산 규제를 편 1990년 당시에도 재벌그룹 소유 부동산 가운데 업무상 토지를 보유할 필요가 낮은 보험사와 금융계열사의 대규모 토지 보유가 특히 비판을 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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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목적 부동산 비율은 해석 갈려
대기업이 토지를 많이 구매해온 점은 분명하게 드러나지만 이 가운데 도덕적 비난 가능성이 있는 ‘비업무용 부동산’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선 해석에 시각차가 있다. 재벌의 토지 투자가 사업과 무관한 ‘비업무용 부동산’이 상당 부분이라는 추정이 다수다. 이찬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공개한 자료를 보면, 30대 그룹 계열사 1065곳이 보유한 토지 면적이 2005년에 견줘 54.3% 늘었다. 문제는 30대 그룹 토지 가운데 지목이 ‘임야’인 땅이 전체의 33.1%로 가장 많았고, 다음이 공장용지(19.9%), 농경지(15.9%) 등의 순서였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한겨레>는 당시 사설에서 “임야와 농지는 비업무용 부동산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투기성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한편 국토교통부 자료를 보면, 전국의 ‘공장용지’ 지목 토지는 1996년 4억1255만6959㎡에서 2014년 8억4734만6230㎡로 약 2배 증가했다.
1990년 보도를 보면, 노태우 정부는 기업의 비업무용 부동산을 처분하도록 하는 ‘5·8 조치’를 추진했다. 당시 국세청은 정책 추진을 위해 기업 부동산 보유 현황을 조사한 뒤 현대·삼성·대우·럭키금성(현 엘지와 지에스)·한진 등 5대 재벌그룹의 비업무용 토지 비율을 전체 보유 토지의 11.4%로 발표했다.
기업의 부동산 투자는 늘 논란의 대상인데, 과학적 분석은 어렵다. 노태우 정부가 지방세법에 도입한 ‘비업무용 부동산’ 중과세 조항이 1998년 아이엠에프 구제금융 시기를 지나며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에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이다. 현재 행정적·법률적으로 ‘비업무용 부동산’ 개념은 법인세법 부칙에만 존재하는데 중과세 조항이 사라져 유명무실하다. 법인과 개인의 토지 보유 정보는 국세청과 국토교통부 두 기관이 알고 있으나 국세기본법 등을 근거로 개별 법인의 토지 보유 현황은 공개하지 않는다. 개별 법인이 보유한 토지 면적과 가액이 알려진 것도 <한겨레>가 확보한 이 자료가 처음이다.
김영주 의원은 “몇몇 소수 대기업의 토지 보유가 아이엠에프 이후 급증한 것은 내부유보금으로 비업무용 토지 보유를 대폭 확대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특히 부동산 감세 정책이 본격화된 2008년 이후 상위 기업들의 토지 보유, 보유 토지 가격이 폭증한 점을 감안해, 기업의 부동산 자산에 대한 과세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