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공급대책이 백지화된 정부과천청사 유휴부지의 모습.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정부과천청사에 주택 4000호를 공급하려던 정부 공급대책이 과천 주민들의 거센 반발에 밀려 백지화되면서 3040 젊은 실수요자들이 원하는 직주근접의 도심에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정부 정책 기조가 퇴색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지자체 반대로 난항을 겪고 있는 다수의 부지가 집값 폭등 지역에 속해 있다는 점에서 공급계획에 차질이 생길 경우 집값 안정도 요원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정부과천청사 일대는 4호선 정부과천청사역과 과천역을 끼고 있는 역세권으로 과천시 내 노른자땅으로 꼽힌다. 이곳에 위치한 아파트들은 올 들어 매매가격(전용면적 84㎡ 기준)이 초고가주택 기준인 15억원을 훌쩍 넘어서는 등 과천시 아파트값 과열을 주도하고 있다. 3000여세대 규모로 과천시 대장주로 꼽히는 원문동 래미안슈르의 경우 지난해 초 13억원 대에서 거래되다 6월에 이미 15억원(16층)에 거래된 사례가 나왔으며 12월에는 16억원(15층)을 찍었고 올 들어 3월에는 16억5천만원(6층)으로 신고가 경신 사례도 나왔다. 650여세대 규모의 중앙동 래미안에코팰리스도 지난 4월 17억3천만원(10층)에 거래돼 최고가를 찍었으며 지난해 4월 입주한 1600여세대 규모 신축 아파트인 중앙동 과천푸르지오써밋의 경우 입주 직후 19억원에 거래되던 매물이 최근 20억5천만원(24층)에 거래됐다.
특히 강남 접근성이 좋아 ‘준강남’으로 불리는 과천은 3040 실수요자들의 선호가 높아 부동산 시장 과열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청약을 실시한 과천 푸르지오 오르투스(435세대)는 경쟁률이 534.9대 1에 달했다. 한국부동산원 자료를 보면 과천의 아파트 평균매매가격은 2017년 5월 7억7994만원에서 4년만인 올해 5월 13억4929만원으로 73.0% 폭등했다.
특히 과천 주민들이 과천시장 주민소환을 추진하면서 요구하고 있는 정부과천청사 부지 공원화도 간단치 않은 문제다. 부동산 시장 과열 상황에서는 공원 조성이 도시계획 측면의 공익보다는 공원과 인접한 일부 주택의 가격 상승을 부추겨 개발이익이 사유화되는 부정적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임재만 세종대 교수(공공정책대학원 부동산학과)는 “부동산 시장에서 공원이 주택가격에 미치는 영향이 점점 커지고 있다”며 “주거 밀도가 높다고 하지만 수도권 상황은 거의 다 비슷하고, 더구나 과천은 서울대공원이나 관악산, 청계산이 있어 녹지가 그리 부족하지 않은데 무조건 공원화를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토교통부는 기존 과천 지구 등 대체부지를 확보해 4300호를 공급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정부과천청사와 같은 노른자땅에 직접 공급되는 것에 견주기는 어렵다. 정부과천청사를 개발해 공공주택 4000호가 공급됐을 경우 기대할 수 있었던 주택 가격 안정 효과가 사실상 물건너간 것이다.
문제는 주민들의 거센 반발로 정부의 공급대책이 좌초하면서 과천과 유사하게 지자체 반발이 이어지고 있는 다른 도심 내 공급 부지에서도 백지화 사례가 추가로 나올 수 있다는 점이다. 정부과천청사를 포함해 노원구 태릉골프장(1만호), 마포구 서부면허시험장(3500호), 용산구 용산캠프킴(3100호), 서초구 서울지방조달청(1000호) 등 지난해 8·4 대책 발표 당시 실수요자들의 관심을 끌었던 도심 내 공급부지 가운데 지자체 협의를 완료한 뒤 인허가 단계에 들어간 곳은 한 곳도 없다.
진도가 안 나가는 제일 큰 이유는 지자체 반발이다. 태릉골프장은 노원구의 일부 주민단체가 그린벨트 해제에 반대하며 과천처럼 노원구청장의 주민소환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시가 소유하고 있는 마포 서부면허시험장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대한항공 송현동 부지를 사들여 서울시와 맞교환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단계까지 나아갔으나 4·7 재보선 과정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이 상암동 개발계획을 밝히면서 지역에서는 여전히 주택 공급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다. 서초구 조달청 부지에 대해서는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해 8월 대책 발표 직후 ‘로또 분양 문제가 없도록 일반분양을 하지 않고 장기공공임대 방식으로 검토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서초구청이 공공연히 반대의사를 밝힌 바 있다. 용산캠프킴 부지는 최근 용산구청이 용산 관련 지구단위계획 변경안을 고시하면서 ‘일반상업지역’으로 용도를 지정해 정부 공급대책에 엇박자가 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국토부는 정부과천청사 공급처럼 백지화되는 사례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 장담하면서도 지자체 협의 과정에서 당초 공급계획의 변경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는 실정이다. 당장 태릉골프장의 경우 노원구청이 요구하고 있는 5000호까지는 아니지만 애초 계획인 1만호에서 공급물량이 축소될 여지가 있다. 서부면허시험장이나 조달청 부지는 주택공급방식에 있어서 공공임대비율 조정이 있을 수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전체 공급물량에 손실이 없도록 하겠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일부 조정 가능성이 있다”며 “다른 곳은 과천처럼 반발이 전면화되고 있는 상황은 아니며 협의가 진척되고 있기 때문에 하반기에 공급 일정이 가시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박근혜 정부 시절 행복주택 공급이 목동에서 반발에 막혀 실패했고 이어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 행복주택 공급이 실제로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며 “녹지공간 확보, 고밀 개발에 대한 도시계획 차원의 반발은 늘 있는 것이다. 정부가 그런 것보다 공급이 더 중요하다고 공급대책을 발표해놓고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나쁜 선례를 남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진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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