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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 기술탈취땐 3배까지 배상…새 상생협력법 17일 공포

등록 2021-08-10 10:59수정 2021-08-10 11:07

시행령·시행규칙 마련 거쳐 내년 2월18일 시행
비밀유지계약 체결 의무화·징벌적 손해배상 도입
중소기업 “‘악마는 디테일’에…후속 작업 지켜봐야”
한 중소기업 생산라인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한 중소기업 생산라인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중소기업 ㅂ사는 자동차 페인트 도장 과정에서 발생하는 물질의 악취를 미생물을 이용해 정화시키는 기술을 개발해 ㅎ자동차와 14년 동안 거래를 해오던 중 기술자료를 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납품업체의 요구라 거절하지 못하고 제공했는데, ㅎ사는 이렇게 받은 자료를 산학과제 계약을 맺은 대학에 무단으로 제공하고 유사 특허를 등록해 다른 협력업체와 공유한 뒤 납품단가 인하를 요구하고 납품 물량을 축소했다. 중소기업기술분쟁조정위원회가 ㅎ사의 ㅂ사 기술탈취 사실을 인정해 3억원의 피해보상 안을 제시했으나 ㅎ사는 소송으로 대응했다.

대기업의 납품업체(중소기업) 기술탈취 사례 가운데 하나이다. 우월적 지위를 활용해 기술자료를 요구해 다른 협력업체와 공유하는 방식으로 납품업체를 이원화한 뒤 기존 납품업체의 단가를 깎거나 발주를 중단한 것이다. 2018년 중소기업중앙회의 ‘대·중소기업 간 기술탈취 실태 및 정책 체감도 조사’ 결과를 보면, 중소기업 94.1%가 계약체결 전에 기술자료 제공을 요구받고, 76.5%가 별다른 대응책이 없어 요구대로 기술자료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기술탈취는 대기업과 거래하는 중소기업의 생존을 위협하는 가장 악질적인 불공정거래행위로 꼽힌다. 정부가 이를 근절할 정책을 지속적으로 내놓고 있지만 ‘땜질식’이라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대기업은 납품계약 체결 전부터 기술자료를 요구하고, 중소기업은 계약 체결을 거부당하거나 계약 후 물량 축소 우려 등의 이유로 거절하지 못하는 상황이 암암리에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새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이하 상생협력법) 시행 일정이 확정돼,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탈취 행위가 근절될 지 주목된다. 중소벤처기업부는 10일 보도자료를 내어 “정부 입법으로 추진돼 지난달 23일 국회를 통과한 새 상생협력법 공포안이 오늘 오전 열린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며 “오는 17일 공포돼 내년 2월18일 시행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새 상생협력법에 따르면, 대기업이 납품업체에 기술자료를 요구할 때도 비밀유지계약 체결이 의무화된다. 이행하지 않으면 최대 1천만원의 과태료 처벌을 받는다. 중기부는 “선진국에선 기술자료 보호를 위한 비밀유지계약(NDA) 체결이 문화로 정착되어 있으나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아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탈취에 취약했다. ‘표준비밀유지계약서’를 마련하는 등 후속 지원 조치를 통해 비밀유지계약 체결 문화가 자리잡게 하겠다”고 밝혔다.

대기업의 기술탈취 행위에 대한 중소기업 쪽의 입증책임 부담도 완화된다. 중소기업이 대기업의 기술자료 탈취·유용 행위 사실을 구체적으로 주장하는 경우, 대기업이 이를 부정하려면 구체적 ‘행위태양’(행위의 여러가지 형태, 범주, 행위에 대한 증거자료 등)을 제시하도록 했다. 중기부는 “기술자료 유용행위 증거의 대부분은 위탁기업의 사업장에 존재하는 반면 피해를 입은 수탁기업은 전문지식이나 경제적 여건이 열악하여 위반행위를 입증하기 어려웠다. 그결과 기술탈취 관련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수탁기업이 패소하거나 피해보상액이 낮게 산정되는 등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었다”며 “이 부분은 법원행정처 의견이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도입됐다. 피해액의 3배까지 배상하게 하는 규정이 신설됐다. 하도급법, 특허법, 부정경쟁방지법 등 유관 법률에는 징벌적 손해배상 규정이 도입됐으나 위·수탁 거래에서 발생한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자료 유용행위에 대해서는 이런 규정이 없었다.

중기부 관계자는 “새 상생협력법은 제도적으로는 완결에 가깝다고 할 정도로 강력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중소기업들은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점을 들어 우려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중기중앙회에 딸린 한 공업협동조합 임원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새 상생협력법 입법 과정에서 전경련 등 대기업 쪽의 반발이 컸고, 이 때문에 20대 국회에 발의됐다가 폐기되기도 했다. 앞으로 시행령과 시행 규칙·기준 마련 과정에 대기업의 입김이 작용해 효과를 반감시킬 수 있는만큼 법 취지가 훼손되지 않는지 잘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재섭 선임기자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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